"가능성 배제 못해".. 의사들은 왜 꼭 부정적 표현 쓸까
진단 과정, 근거중심의학 반영한 표현들 사용
사례2) 젊을 때부터 리프팅 시술을 하면 피부가 처진다는 말을 들은 B씨. 정말인가 싶어 묻는 말에, 의사는 “이론적으로 젊을 때 해서 나쁠 건 없다”며 “젊을 때 시술하는 게 피부에 해롭단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답했다. B씨는 ‘근거가 없다’는 걸 보니 의사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언어 표현에 관한 인지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긍정형 보다 부정형일 때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기 더 어렵다. 게다가 긍정형 표현과 부정형 표현이 같은 의미를 담고 있어도, 사람에 따라선 뉘앙스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가령, ‘괜찮다’와 ‘나쁘지 않다’는 의미상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암 투병 중인 환자들은 ‘상태가 괜찮다’ 보다 ‘나쁘지 않다’는 말을 들었을 때 치료 경과를 비관하기 쉽다. 그런데도 의사들이 ‘배제할 수 없다’와 ‘근거가 없다’는 부정형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 ‘감별 진단’ 과정 반영된 표현 “배제할 수 없다”
부정형 표현은 ’의학의 방법론’이 언어에 투영된 결과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황승식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의사들의 사투리’라고도 할 수 있다.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은 ‘감별 진단(Differential diagnosis)’이란 의학적 판단과정, ‘근거가 없다’는 말은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이란 의학적 학문 체계를 반영한다.
감별진단은 쉽게 말해 ‘소거법’이다. 특정 증상이 특정 질환에서만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예를 들어, 기침이란 증상은 천식·결핵·위식도역류질환·감기 등 다양한 질환에서 관찰된다. 증상만 보고 곧바로 원인 질환이 무엇인지 알아낼 순 없다. 이에 의사는 환자의 증상을 미루어보아 원인으로 짐작되는 질환의 ‘후보군’을 만든다. 다양한 검사를 통해 이 중에서 ‘진짜’를 감별해내야 한다.
황승식 교수는 “감별은 ‘A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으니 B 질환은 원인이 아니다’ 하는 식으로 후보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과정”이라며 “끝까지 지워지지 않고 남은 후보가 환자의 ‘진단명’이 된다”고 말했다. 객관식 시험 문제를 풀 때를 떠올리면 쉽다. 정답이 뭔지 모를 땐 확실히 답이 아닌 선지부터 제쳐야 한다. 마지막까지 남은 선택지가 보통 답이다.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은 소거법으로 지워지지 않은 선택지에 쓴다. 원인질환으로 지목될 여지가 있단 뜻이다. ‘가능성이 있다’와 ‘배제할 수 없다’는 동전의 양면 같아 의미가 거의 동일하다. 다만, 의학적 판단 과정이 후자에 더 정확히 반영돼 의사들이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근거 없이 주장도 없단 생각 반영된 “근거 없다”
경제든 정치든 주장을 할 땐 ‘과학적 근거’를 대야 한다. 의학도 예외는 아니다. 의학적 판단 역시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뒷받침될 때만 신뢰를 얻는다. 이를 ‘근거중심의학’이라 한다. 이전에 의학 전문가의 말은 그 자체로 권위 있는 지식이었다. 그러나 근거중심의학이 대두하며, 전문가의 주장도 과학적 연구 결과를 인용할 때만 타당성을 인정받게 됐다.
경험에서 비롯됐더라도, 전문가 견해는 신뢰도와 유효성이 가장 낮은 근거로 취급된다. 가장 신뢰도 높은 근거는 ‘이중눈가림무작위대조연구(Randomized Controlled Double Blind Studies)’ 결과다. 간단히 말해 다양한 사람에게 진짜 약과 가짜 약을 ‘무작위’로 배정하고, 복용 후 경과를 ‘대조’하는 연구 방식이다. 누가 진짜 약을 받았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실험이 진행된다. 이런 ‘눈가림’이 연구 결과에 편향(bias)이 생기는 걸 막아준다.
과학적 연구 결과는 계속 갱신된다. 없던 지식이 새로 생겨나기도, 기존 지식이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아직 연구되지 않은 분야도 있다. ‘근거가 없다’는 말은 여기 사용된다. 증거 삼을 무작위대조연구 결과가 없단 뜻으로다. 황승식 교수는 “A가 건강에 좋은지 판단하려면 ‘A의 건강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가 필요하다”며 “연구한 사람이 없는 분야라 인용할 수 있는 무작위대조연구 결과가 없을 때 ‘그렇게 말할 근거가 없다’는 표현을 쓴다”고 말했다.
신뢰할 만한 근거가 없다면 A가 건강에 좋은지 나쁜지 확언할 수도 없다. 이럴 땐 의사도 임상경험과 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의사가 무능해서 확답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증거가 있을 때만 확언할 수 있다는 근거중심의학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 Copyrights 헬스조선 & HEALTH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헬스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다이어트 성공’ 박미선, ‘이 음식’ 먹고 도루묵 될까 걱정 태산… 대체 뭐길래?
- "'이것' 정말 꼼꼼하게"… 안재현, 직접 밝힌 '순백 피부' 비법은?
- 암은 유전? 식습관 고치면 막을 수 있는, 국내 두 번째로 많은 ‘이 암’
- '가랑가랑' 가래 끓을 때, '이것' 쪽 빨아보세요
- 두 달 뒤, '진짜' 숙취 해소제 가려진다
- "시선 강탈 근육, 비결 있다"… 민혁 '이 방법' 웨이트 중, 벌크업 지름길?
- ‘10살 이상 연하’ 사로잡은 스타 5명… 평소 실천하는 ‘동안 습관’ 뭔지 보니?
- ‘무면허 8중 추돌 사고’ 운전자가 복용했다는 약물의 정체
- 엄정화, 아침부터 '이 간식' 먹었다… 조금만 먹어도 살쪄서 위험?
- 안성재 셰프는 ‘고기 많이, 소스 적게’… 샌드위치, 쌓는 방법 따라 맛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