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IP 확보가 K-콘텐츠 급선무

이종길 2022. 7. 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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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시대와 IP 상생의 길은..
스토리 연계·상품화 등 IP역할 중대, 플랫폼·제작사 치열한 확보전
라이선싱 IP, 수익 크지만 어렵고 복잡..전문 시스템·사업화 환경 필요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영상 콘텐츠가 극장과 TV에서만 소비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플랫폼과 디바이스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용 드라마·영화가 제작되고 스토리텔링과 지적재산(IP)을 기반으로 웹툰·게임·공연·NFT 등도 만들어진다. 이러한 다변화로 기획·제작·유통 형태도 파이프라인에서 네트워크로 바뀌었다. 일련의 과정이 순차적 절차를 벗어나 가치 사슬로 전이됐다. 다수의 영상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흥행해 벌어진 현상이다.

◆미디어의 유동성, IP라는 구심점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작품은 ‘오징어 게임’이다. 올해는 ‘지금 우리 학교는’이 3위, ‘사내맞선’이 7위다.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응답하라 1988’, ‘슬기로운 의사생활’, ‘빈센조’, ‘갯마을 차차차’ 등은 장기간 시청 순위 10위권에 들었다. 일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가 아니다. 다른 배급·방송사와 IP를 공유하거나 글로벌 IP를 독점하는 형태로 송출한다. 창작자·제작사 등에 새로운 수익 창출과 IP를 확장할 여지가 남아 있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달 29일 광화문 콘텐츠코리아랩(CKL)에서 진행한 ‘문화 매력 국가 선도 K-콘텐츠·OTT 진흥 포럼’에서 "근래 이야기 IP와 라이선싱 IP의 중요성이 한층 커졌다"고 말했다. 전자는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이야기 연계·확장, 세계관 구축 등이 실현된다. 가장 주목되는 분야는 웹소설과 웹툰. ‘사내맞선’은 웹툰과 영상 글로벌화 연계 전략, ‘시맨틱에러’는 웹소설 영상화로 각각 큰 성과를 거뒀다. ‘그 해 우리는’은 드라마 프리퀄의 웹툰화로 재미를 봤다.

후자는 상품화(머천다이징)를 통해 IP 경험이 일상으로 뻗어 가는 추세다. 굿즈 생산, 다른 기업과 협업 등으로 브랜드화 기회를 넓혀간다. 이 교수는 "콘텐츠 IP의 가치는 팬덤으로부터 나온다"며 "참여와 놀이의 욕망을 읽어내고 현실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팬덤이 자부심을 갖게 하는 브랜딩 전략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IP 확보와 불리한 수익 구조

황동혁 감독과 제작사 싸이런 픽처스는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흥행에도 많은 수익을 챙기지 못했다. 넷플릭스는 제작사에 일정 금액만 지급하고 향후 IP 이용을 통해 얻는 수익을 모두 독점하는 매절계약을 한다. 제작사는 제작원가 회수와 5~10%의 수익 배분에 만족해야 한다. 대신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손실을 떠안지 않는다. 작품이 흥행해 속편이 제작되면 계약 조건은 달라진다. 영화계 관계자는 "일부 작품이 미국 할리우드 수준의 수익을 보장받았다"고 전했다.

IP 확보는 방송가에서도 화두다. ‘스페인 하숙’, ‘강식당’, ‘삼시세끼’,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을 만든 에그이즈커밍은 3년 전부터 제작비를 직접 투자한다. 고중석 에그이즈커밍 대표는 "IP를 가져오기 위해 규모가 큰 작품에는 20%, 적은 작품에는 50%를 책임진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사가 광고 수익을 모두 가져가서 안정적 수익 구조 창출에 어려움이 있다"며 "내부 역량 강화 차원에서라도 이르면 2025년부터 (나영석 등) CJ ENM PD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탁훈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는 "제작사가 플랫폼에 IP를 넘기거나 공동으로 소유해도 열악한 수익구조는 변하지 않는 실정"이라며 "온전히 영상만으로 거둘 수 있는 수익은 10~15%"라고 지적했다.

◆라이선싱 IP, 여전히 계륵

제작사에 IP는 불안한 수익 구조를 개선할 무한한 동력과 같다. 애니메이션·캐릭터 생산 업체라면 더욱 그렇다. 굿즈 등 상품화를 통한 수익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야를 막론하고 대다수는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고 대표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IP를 이용해 공연을 기획했으나 배우들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와 일정·초상권 등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며 "굿즈 제작 또한 또 다른 투자가 불가피해 현실화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1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어드벤처 가든스테이지에서 열린 '롯데월드 어드벤처 30주년 생일파티'에서 캐릭터 로티와 로리를 비롯한 뽀로로, 핑크퐁, 번개맨 등 캐릭터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생일 축하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영화 제작사 대표 A씨는 "이야기 IP와 라이선싱 IP의 확장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후자의 경우 국내에 전문 시스템이 없을뿐더러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전했다. 그는 "매니지먼트를 인수한 대기업조차 난색을 보인다"며 "정부가 사업화에 뛰어들 만한 환경을 구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넷플릭스 딜레마

정부 정책은 IP 확장보다 확보에 쏠려 있다. 강지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영상광고과장은 "제작사와 IP 공유를 전제로 한 지원, 세제 지원, 제작비 지원 펀드 등을 검토한다"며 "관련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부가가치 창출에 대해서는 "플랫폼과 제작사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 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원론적 수준의 답을 내놓았다. 사실 큰 효과를 기대할 만한 대상은 소수에 불과하다. 한류 확산에 기여할 만한 드라마 IP 상당수도 넷플릭스 등 해외 OTT 소유다.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 체험존이 설치돼 있다. 지난 19일 공개된 ‘지옥’은 하루 만에 전 세계 가장 많이 본 TV쇼(프로그램) 1위에 올랐다. /문호남 기자 munonam@

문제는 티빙·웨이브·왓챠·시즌 등 국내 OTT도 넷플릭스처럼 IP 확보에 열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고창남 티빙 사업운영국장은 "넷플릭스가 OTT 시장을 지배한다면 IP를 제작사에 양보한 경쟁사도 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다양한 플랫폼의 경쟁 체제가 유지되고 1조 원 규모의 콘텐츠 펀드 등이 마련돼야 OTT와 제작사 상생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요한 왓챠 마케팅 이사는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가성비’를 느끼지 못한다면 투자액은 쪼그라들 것"이라며 "한 회사의 정책 결정에 따라 콘텐츠 산업 전체가 위축되는 상황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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