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소식에 환호하는 누리꾼들, 이건 아니다

박광홍 2022. 7. 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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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테러 배격하고 대화로 문제해결 도모하는 게 민주주의.. 우린 그럴 수 있다

[박광홍 기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8일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선거유세를 하던 중 총격을 받고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 교도통신=연합뉴스
 
참의원 선거를 이틀 앞둔 7월 8일, 일본에서 경천동지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오전 11시 30분 경, 나라현(奈良県) 야마토사이다이지(大和西大寺) 부근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총격을 당하고 쓰러져 이송된 것이다.  

TBS 속보에 따르면,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왼쪽 흉부에 총탄을 맞았고, 목에도 한 발을 맞았다고 한다.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오후 12시 20분께 지역 병원으로 옮겨진 아베 전 총리는 심폐정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경찰은 아베 전 총리를 저격한 자위대 출신의 40대 용의자를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관련 기사: 아베 전 일본총리, 총 맞고 쓰러져... '심폐정지' 상태 http://omn.kr/1zq4x ).

아베 전 총리 총격 사건이 향후의 일본에 어떠한 파급력을 미치게 될까. 아베 전 총리가 21세기 일본을 주도했던 거물 정치인이었다는 것은 그를 지지하는 측도 반대하는 측도 모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러한 인물이 선거를 앞두고 '테러'로 인해 쓰러졌다. 일본에서는 1930년대에나 신문 지면을 장식했던 정치테러가 2022년의 현대에 벌어진 상황인 것이다. 여기에 놀란 일본 사회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될지, 지금에선 짐작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 급박한 정세를 한국 대중은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친구가 보내온 링크... "아무리 아베가 싫어도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 일본 생방송 댓글에서 조롱을 남기는 한국 누리꾼들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총격 사건에 일부 한국 누리꾼들이 일본 실시간 방송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보이고 있다.
ⓒ 유튜브 갈무리
  
아베 전 총리 총격 사건이 일어난 직후 한국어가 유창한 일본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그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고, 무엇보다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는 사건을 전하는 한국의 포털 뉴스들의 링크를 여러 개 보내주었다.

전송받은 링크로 가보니 해당 뉴스의 댓글 창은 놀랍게도 아베 전 총리의 총격 사건에 환호하는 한국어 반응들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한국인들이) 아무리 아베 씨가 싫다고 해도 어떻게 이런 일에까지 이럴 수가 있느냐"는 친구의 개탄에 나는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한국의 뉴스 댓글 창에만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는 일부 한국인 누리꾼들이 일본 방송의 댓글 창에서까지 가서 악담을 남기는 것을 보고 너무나도 놀랐다. 충격과 걱정을 남기는 일본인 누리꾼들 사이로, 아베 전 총리나 일본 시민들을 조롱하는 한국인 누리꾼들의 존재는 너무나도 선명해보였다. 한 유튜브 방송에서는 보다 못한 한 일본인 누리꾼이 "한국 분들은 조롱을 멈춰달라"는 글까지 한국어로 남겼으나, 한국인 누리꾼들의 악담은 멈추지 않았다.

폭력이 분쟁의 해결수단으로 선택되었고 이로 인해 인명에까지 위해가 가해진 상황에서, 테러를 예찬하고 일본인 전체를 조롱하는 혐일의 모양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부 한국 누리꾼들의 모습. 이런 언동이 매우 걱정되고 우려스럽다.

한일 간 갈등 있는 건 맞지만... 그와 아베 소식은 다른 문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8일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선거유세를 하던 중 총격을 받고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 교도통신=연합뉴스
 
현재 한일 간의 갈등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현실이고 아베 전 총리가 그 현실에 대해 갖는 책임에 대해 비판하는 것 또한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총으로 쏜다거나, 나아가 그런 소식에 환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민주사회에서 테러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이다. 이러한 상식이 단순히 아베 전 총리에 대한 호불호나 국가 간의 갈등을 이유로 무시된다면 그것은 파시즘과 다를 게 없다. 더구나 과거에 이미 정치테러의 끔찍한 폐해를 체험했던 한국 사회는, 상식을 무시하는 감정과 폭력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1945년 해방 직후 정치적 격동기에 빠졌던 한국 사회에서는 백색/적색테러가 횡행했다. 사상이 다르거나 혹은 다르다고 의심되는 상대를 향해, 좌우익 양측은 법적 제도는 물론 최소한의 윤리마저 무시한 채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주요 정객들은 물론 일반 민중들 역시 정치테러의 공포를 피할 수 없었다.

당시 현준혁, 송진우, 여운형, 김구 등의 저명한 정치지도자들마저 희생시킨 정치테러를 힘없는 일반 민중들이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치테러가 촉발시킨 불안과 분노는 제주4.3사건을 비롯한 대규모 유혈사태와 혼란으로 이어졌다. 이는 동족상잔의 참극으로도 불리는 한국전쟁으로도 연결됐다.  

타자에 대한 폭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음을 한국 사회는 이미 해방정국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정치테러의 소용돌이 속에서 체험했다. 그러한 한국 사회에서 아베 전 총리의 총격을 환호하고 테러를 예찬하는 여론이 감지되는 것은 매우 경계해야할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적'으로 설정된 상대를 폭력으로 제거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윤리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상호간의 불신과 갈등을 증폭시키며 여러 현안들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한국의 일부 누리꾼들이 스스로의 혐일 정서를 만족시키기 위해 테러까지 예찬하는 현 주소에 대해 사회적 성찰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상식에 입각해서 단호하게 테러를 배격하면서도, 대화와 소통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생산적인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다. 이러한 틀 안에서, 양국 대중이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한일관계를 검토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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