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서훈 수사 나선 檢..'공무원 피살' '강제북송' 미스터리
국가정보원이 지난 6일 박지원·서훈 전 원장을 검찰에 고발함에 따라 관련 혐의의 계기가 된 '탈북 어민 강제 북송'과 '서해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이 재조명받고 있다.
두 사건은 모두 ▶북한과 관련한 사안이고 ▶제기됐던 여러 의문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으며 ▶그 결과 해당 의혹이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논란의 한 폭판에 서 있는 두 사건을 둘러싼 풀리지 않는 의문과 쟁점을 짚어본다.
비좁은 목선서 3명이 16명 살해
2019년 11월 강제로 북송된 어민 A(당시 22)·B(당시 23) 씨는 나포에 앞서 체포된 C씨와 함께 10월 말 어느 날 밤에 선장과 동료 총 16명을 어선에서 도끼와 망치로 살해했다. 이들은 먼저 경계 근무 중이던 선원 2명과 조타실에 있던 선장을 죽였다. 이후 잠자고 있던 나머지 선원 13명을 순차적으로 불러내 살해했다.
군은 특수정보를 통해 이들의 범죄 정황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의문점은 길이 15m가량의 17t급 소형 목선에서 '학살'에 가까운 범행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다. 범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소리 등을 고려했을 때 불가능에 가까운 범행 방식이란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이들이 북한에서 전과자이거나 특수 임무를 수행하던 요원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또 새벽에 조업하는 오징어잡이 배의 특성상 선원 전원이 잠을 자고 있었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와 관련, 탈북자단체인 '한국자유민주정치회의'는 "오징어잡이 배는 통상 3개 조로 8시간씩 해상작업을 진행한다"며 "한 조에 최소 6명이 투입되는데 3명이 한 명씩 불러내 살해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흉악범" 판단 근거는?
사건 당시 국가안보실장이었던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 "그 사람들은 흉악범이었다"며 "일반 탈북민과 구분돼야 하고 정부가 북송을 결정할 때는 고문방지협약 등을 모두 검토했다"고 말했다. 해당 선원들이 살인을 저지른 것이 강제 북송의 주된 근거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들의 진술만 있을 뿐 시신과 범행에 사용된 도끼와 망치 등 물증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 이는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규정한 헌법 12조 7항을 위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범행 장소이자 증거를 확인할 수 있는 목선을 소독한 것도 의문이다. 정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을 위한 조치였다는 해명을 했지만, 일각에선 사실상 증거 인멸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의적으로 '귀순 의사' 판단한 文정부
문재인 정부는 강제북송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귀순 의사에 진정성 없었다'는 판단을 내놨다. 탈북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힌 것은 사실이나 범죄 후 도주 목적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이유에서다.
사건의 의혹을 키우는 발언도 있었다. 당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상반된 진술들도 있었지만 '죽더라도 돌아가겠다'는 진술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사건 이후 행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으로 밝혀졌다.
또 해당 목선에선 마른오징어(40㎏ 포대 40개), 쌀 95㎏, 옥수숫가루 10㎏ 등의 식량이 발견됐다. 이에 대해 일부 탈북민들은 공해상에서 표류하며 탈북 과정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준비한 식량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조류' 반대 방향으로 38㎞ 헤엄?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뒤 해상에서 시신이 소각된 사건 역시 의문이 가득하다. 당시 군과 정보당국은 수집한 각종 특수정보 근거로 들며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으나 최근 당시 수사 결과를 뒤집었다.
핵심 쟁점 중 하나는 당시 해경이 '월북' 근거로 판단했던 조류다. 이씨가 피격된 곳은 북한 등산곶 인근 해상이다. 해경은 "조류를 고려했을 때 인위적인 노력없이 해당 위치까지 표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인근 해역의 조류를 월북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이런 조류 상황은 오히려 월북이 아니라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해수부 공무원으로 10년가량 어업지도선을 타며 주변 해역의 조류를 잘 아는 이씨가 조류를 역행하는 '위험한 월북 루트'를 구상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南·北 엇갈린 정황 설명
북한은 사건 사흘 만인 2020년 9월 25일에 보내온 대남통지문에서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지원 국정원장은 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관등성명(신상정보)을 북한에다 얘기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측의 주장이 한·미 특수정보와 일치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건 직후 강경했던 정부의 태도는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과 내용이 담긴 이 통지문을 받고 급격히 달라졌다. 또 양측의 엇갈린 정황 설명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당시 청와대는 "북측의 신속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강력 규탄", "책임자 엄중 처벌" 등을 주장했던 강경 기조는 "진상 규명을 위한 공동조사 촉구"로 바뀌었다. 결국 남과 북 모두 사실관계 규명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으면서 사건은 의혹만 남긴 채 흐지부지됐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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