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었다고 해서..' 이렇게 대하면 안 됩니다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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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철]
지난 5월 대법원 판결로 임금피크제가 이슈다. 그동안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서 2019년 대법원 판결과 여러 번의 하급심 판결이 있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임금피크제 내용과 관련해 판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고령자라는 이유로 임금을 차별하는 임금피크제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해서 무효"라는 것이다. 보충하면, 기존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일한 일을 하는데도 일정 연령을 넘었다고 해서 노동자의 임금을 차별하는 것은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 지난 5월 대법원은 “정년연장 없이 임금만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취지로 판결해 파장을 일으켰다. |
ⓒ 셔터스톡 |
이번 판결 이후 노사 양측은 현재 각 사업장에서 적용하고 있는 임금피크제가 적법한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향후 대응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정년을 일정 기간 연장하면서 임금을 감액하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법성과 무관하게 임금피크제는 그 자체로 여러 가지 문제와 논란이 있는 제도다.
임금피크제가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기 전에 먼저 임금피크제가 탄생한 배경부터 알아보자. 임금피크제가 생긴 이유는 임금제도의 근본문제와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임금은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 지급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노동자가 재화와 서비스 생산(성과)에 기여한 몫인 것이다. 이는 대부분 공감하는 사실이다.
직무급제 발달한 서구에는 없어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그것은 바로 "과연 임금인상의 기준은 무엇이 돼야 합리적인가"의 문제다. 상식적으로 보면 임금인상분은 생산성(성과) 향상분이라고 할 수 있다. 생산성(성과) 향상에 기여한 만큼 임금인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생산량에 비례해서 임금을 지급하는 '단순성과급' 외에는 이를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맞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임금체계를 통해 임금인상 기준을 설정하여 생산성 향상분만큼 임금을 인상한다. 주로 사용되는 임금체계는 다음과 같다. 직무급은 직무의 가치(난이도)를, 역량급은 직무역량을, 직능급은 직무능력을, 연공급은 근속기간을 기준으로 삼아 해당 조건을 충족한 노동자에게 임금을 인상해준다.
그런데 이 중 연공급은 논란이 많다. 다른 임금체계와 달리 연공급은 평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인상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신입 노동자는 일정기간 직무가치와 능력, 숙련 등이 해마다 상승하기 때문에 초기에는 어떤 임금체계든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연공급은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해가 갈수록 생산성 향상과 관계없이 임금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사용자의 임금부담이 가중된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일정 연령에 이르면 임금을 감액하는 임금피크제는 이런 이유로 탄생했다. 그래서 임금피크제는 한국이나 일본처럼 연공급체계가 주류를 이루는 나라에만 있고, 직무급체계가 주류인 유럽이나 미국에는 있을 이유가 없는 제도다. 직무급체계는 기본적으로 직무가치에 따라 결정되는 임금등급(수준)을 기준으로 여기에 숙련이나 자격, 경력 등을 보완적으로 활용해서 임금수준과 임금인상 기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임금피크제는 바로 연공급이라는 배경에서 탄생했다. 그렇다고 임금피크제가 합리적인 것으로 미화되거나 정당화된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임금피크제는 치명적인 근본문제가 있고 시행상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금피크제 지침 폐기 및 노정교섭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6.8 |
ⓒ 이희훈 |
첫째,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임금피크제의 타당성 문제다. 임금인상분이 생산성 향상분이 돼야 합리적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업종별·직종별·직무별·개인별로 생산성 향상이 어느 시기까지 지속되는가를 측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 연공급체계의 생산성곡선과 임금곡선(임금피크제 찬성론자 논리) "A영역=B영역" 시점, 즉 C영역의 시작 시점과 이 시기의 생산성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개인마다 다르다.(통제하기 어려운 다양한 변수 존재) |
ⓒ 박용철 |
하지만 실질적으로 일부 단순노동을 제외하고는 생산성 저하의 문제는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연속공정체계에서는 연령이 전혀 문제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무직의 경우에도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충분히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연공이 높아질수록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생산성 곡선과 임금 곡선이 만나는 전환시점(A와 B가 만나는 지점)이 개인별, 직무별로 다르다. 이 지점에서 전후의 생산성을 판단하는 것, 즉 A영역과 B영역의 크기가 같아지는 시점(C영역의 시작 시점)을 판단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임금피크제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논리를 획일적으로 임금삭감의 논리로 사용하는 것은 제도의 타당성 면에서나 현실성 면에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임금삭감률의 타당성 문제다. 임금피크제를 불가피하게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임금삭감률의 근거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위에서 제시한 대법원 판례처럼 임금피크제 시행 전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데도 정당한 이유 없이 임금을 삭감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전과 다른 업무를 하는 경우에도 해당 업무가 이전 업무에 비해 업무량이나 업무강도, 난이도 측면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사업장(기관)의 예산에 맞춰 적당히 임금을 삭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셋째, 2015년 이후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는 공기업의 경우 시행상 여러 문제가 있다. 당초에 임금피크제 시행과 신규채용을 연계했지만 신규채용 인원의 급여와 임금피크 대상자 급여 절감분이 일치하지 않았다. 또한 해당 기관이 정년연장자 급여를 부담하게 해 신규채용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게 되기도 했다.
공공기관별로 정년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으로 60세로 맞춰서 정년이 낮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노동시간 단축형 임금피크제 등 다양한 형태의 임금피크제를 금지한 것도 문제였다. 노동시간 단축형 임금피크제는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만큼 임금을 비례하여 감액하는 제도로서 실질적으로 임금피크제는 아니다.
넷째, 우리의 논의에서 다소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 형평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있다. 공무원들에게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임금피크제 효과 역시 제한적이고, 제도의 수용성에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연공급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임금피크제임에도 불구하고, 연공성이 가장 강한 공무원을 제외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 연공급은 해가 갈수록 생산성 향상과 관계없이 임금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일정 연령에 이르면 임금을 감액하는 임금피크제는 이런 이유로 탄생했다. |
ⓒ 셔터스톡 |
2015년 정부는 임금피크제 권고안에서 임금피크제 도입 배경으로 공공기관의 연공급 급여체계로 인해 연령별 생산성 수준 등이 보수에 적절하게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것이 과연 정부에는 해당되지 않고 공공기관에만 해당되는 것인가?
참고로 일본의 경우는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하여 정부(공무원) 역할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공공기관들의 임금체계나 제도는 거의 대부분 국가 공무원의 제도를 그대로 도입했다. 일본은 공무원이 먼저 변하면 공공기관도 변화한다는 인식을 갖고 공무원이 먼저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상 임금피크제의 배경과 문제점들을 바탕으로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해 보자. 크게 임금피크제 폐지, 임금피크제 보완, 기반 마련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궁극적으로는 임금피크제를 폐지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임금피크제 자체의 타당성이나 임금삭감률의 근거 부족은 제도의 존립에 영향을 미치는 치명적인 한계다. 제도의 실행가능성이나 수용성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는 제도의 목적 달성에 이미 실패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대신 초고령사회에 대비할 수 있는 정년 연장 제도와 노동력 활용 제도를 폭넓게 활용하는 방향으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대법원 판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했다.
현행 임금피크제가 이런 판단기준에 얼마나 부합할 수 있는지 재고해야 한다. 물론, 임금피크제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연공급체계를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와 기반 마련이 필수적이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도입해야
둘째, 당장은 임금피크제 보완이 필요하다. 임금피크제가 더 나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되 임금을 감액하는 제도)가 아니라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여 고령사회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60세로 정년을 연장하면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시행한 것이라고 주장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반직 공무원의 정년은 2013년에 이미 60세로 통일됐는데도 임금피크제를 시행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공공기관별로 탄력적인 정년제를 운용했다는 사실도 상기해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만 유독 국민연금 수령 연령(현재 63세)과 정년(60세) 간에 불일치가 심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실질적인 정년연장 논의가 있어야 하고, 그에 부합하는 실효성 있는 임금피크제가 필요하다. 다만, 새로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수행하는 업무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셋째,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임금피크제를 폐지하든, 보완하든 향후 더 나은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직무중심 임금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한 다양한 적합 직무를 개발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직무의 가치를 기본으로 하면서 우리 현실에 맞게 연공적 요소를 가미한 형태의 직무급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단, 노사 공동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면밀한 직무평가와 하후상박형의 직무급 체계를 점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이는 현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직무성과급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아울러 고령자의 노하우와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직무를 개발해서 당사자가 직업의 가치와 보람을 느끼게 하고, 소중한 인적자원을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미래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고용을 유지하고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다. 생산성 향상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은 최대한 보전하면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형 임금피크제, 고령자 단시간 노동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 초고령사회를 대비한 다양한 정년연장 방안과 노동력 활용 방안, 일자리 보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 셔터스톡 |
이상의 세 가지 대안은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개별적으로 실행할 수도 있지만, 세 가지를 결합하고 연계해서 추진해야 더 완전해지고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궁극적인 목표는 임금피크제 폐지로 잡되, 이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제반 여건을 마련하면서 그 사이 임금피크제를 보완하는 형태로 연공급체계를 완화해야 한다.
나아가 노동력의 효과적인 활용 측면에서 정년연장 등 초고령사회와 환경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다양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임금피크제가 자연스럽게 그 역할을 다하게 되고, 미래사회에 대한 대응도 더 폭넓은 영역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임금피크제는 그 자체로 논란이 많은 제도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임금피크제는 제도의 취지나 타당성, 수용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문에서 보듯이 임금피크제를 본연의 취지에 맞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제도 자체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고,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 박용철 /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
ⓒ 박용철 |
* 필자소개: 이 글을 쓴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노사관계를 전공했으며, 현재 한양대 경영대학 겸임교수, 한국지역고용학회 부회장, 한국산업노동학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관심분야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지역거버넌스와 노동정책, 임금체계 등입니다. 주요 저서로 <한국 노동운동 위기 진단과 대안 모색>, <한국의 청년고용 Ⅱ>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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