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하면 월급 줄인다"..얼마까지 괜찮으신가요?[찐비트]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재택근무를 한다는 조건에 ‘임금 삭감’이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미국을 비롯한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러한 일이 실제 벌어지고 있는데요.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실리콘밸리와 같은 물가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도시를 떠나 생활비가 비교적 적은 지역으로 이사가는 직원들이 임금 삭감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사무실 출근이 일상일 땐 본사 인근에 살아야 하는 만큼 높은 생활비를 회사가 임금으로 보상해줬던 것을 고려한 조치였죠.
대표적으로 구글이 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지난해 8월 한 주요 외신은 구글 직원들을 인용해 회사가 무기한 재택근무를 선택한 직원들의 급여를 최대 25%까지 삭감했다고 보도했는데요. 물가가 비싼 뉴욕에서 일하는 직원은 급여를 그대로 유지하지만 구글의 뉴욕 사무실에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코네티컷 스탬포드에 사는 직원의 급여는 15%, 실리콘밸리를 떠나 네바다주 레이크타호로 가는 일부 직원은 25%까지도 임금을 줄였다는 겁니다. 지역에 따라 지급되는 임금이 다르다는 것이죠.
BBC방송에 따르면 글로벌 로펌 스티븐슨하우드도 올해 상반기 중 정규직 직원들에게 재택근무의 조건으로 임금 20% 삭감 제시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했어요. 스티븐슨하우드의 본사는 영국 런던에 있는데요. 이 회사는 코로나19 기간 중 물가가 높은 런던을 피해 외곽에 거주하면서 재택근무를 하는 일부 직원을 새로 채용하면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 비해 더 적은 임금을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관련기사] '찐비트'
◆ 얼마면 급여 감축 재택근무 수용 가능?이러한 임금 삭감은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요소로 작용합니다. 하는 업무는 동일한데 사는 지역 만으로 임금을 줄이는 건 부당하다는 지적이죠. 직원들이 실제 일하는 위치를 일일이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출·퇴근의 부담이 없고 유연하게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업무 방식으로서의 장점이 있는 만큼 일부분 임금 삭감을 감수하겠다는 직원들도 다수 있어요.
미 인재채용 자문기업 굿하이어가 지난해 10월 미국 직장인 3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1%가 재택근무를 유지하기 위해 임금을 낮출 의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응답자 70%는 건강보험이나 유급휴가, 운동시설 이용, 퇴직연금 계좌도 포기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죠.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영국 채용 대행업체 리드의 설문조사에서는 영국 직장인 2000여명 중 35%가 영구적인 재택근무를 대가로 급여를 삭감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어요.
그렇다면 재택근무를 위해 임금을 어느 정도까지 낮출 수 있느냐가 중요하겠죠? 미 일간 USA투데이가 지난해 11월 보도한 컨설팅회사 글로벌워크플레이스애널리틱스(GWA)와 화상회의 솔루션 회사 오울랩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2000명 가량의 미국인 응답자 중 재택근무를 위해 5% 이하의 임금 삭감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46%였어요. 삭감률 10%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답변은 40%였고 응답자 37%는 삭감률 10% 이상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죠. 구글이나 스티븐슨하우드가 언급했던 20%대로 삭감률이 올라간다면 응답률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 재택하면서 임금 조정 안하는 게 ‘혜택’재택근무 도입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바로 IT 업계, 특히 스타트업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미국 보상관리 플랫폼 카르타가 2000개 가량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12만7000명의 기록을 분석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본사가 있는 주(州) 외부에서 신규 채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까지만 해도 35%였는데 빠르게 늘어 지난해 55%를 기록했습니다. 본사와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재택근무하는 직원들을 오히려 더 많이 뽑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죠.
이처럼 재택근무가 빠르게 확산한 상황에서 조사대상 기업의 84%는 재택근무자의 임금을 결정할 때 일하는 위치를 고려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기업가치가 낮은 스타트업일수록 지역에 따른 임금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더 컸고, 기업가치 5억달러 이상의 기업들은 4곳 중 1곳이 일하는 지역과 상관없이 동일한 임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카르타는 "지역에 따라 임금을 조정하지 않는 회사들은 직원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거나 새로운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혜택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어요.
실제 글로벌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와 미 소프트웨어 업체 옥타는 재택근무를 전격 도입하면서 근무지에 따른 임금 삭감은 없다고 선언했는데요. 에어비앤비는 지난 4월 이같은 방침을 발표하면서 직원들이 1년 중 최대 90일까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일해도 된다고 밝혔죠. 옥타는 인재 확보를 위해 지난해 당초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베이에어리어 외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급여를 삭감하던 정책을 중단했습니다.
◆ 학계 "재택근무 도입이 임금상승률 2%P 낮춘다"상황이 이렇다보니 학계에서도 재택근무 도입이 임금상승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요. 니콜라스 블룸 스탠포드대 교수와 브렌트 마이어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경제학자 등은 지난달 23일 논문을 통해 최근 1년 간의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재택근무 도입이 임금상승률을 2년에 걸쳐 2%포인트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어요.
연구진은 지난 4~5월 미국 기업 500곳 가량에 설문조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택근무 확대가 지난 12개월간 임금상승률을 얼마나 조정한 것으로 추정하느냐’는 질문에 중간값이 0.9%포인트로 나왔다고 밝혔는데요. 또 ‘향후 12개월간 얼마나 임금에 얼마나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느냐’는 추가 질문에는 임금상승률을 1.1%포인트(중간값) 낮출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를 누적하면 지난해 4~5월부터 내년 4~5월까지 2년간 재택근무가 임금상승률 2%포인트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본 것으로 해석됩니다.
연구진은 이렇게 되면 재택근무 증가가 임금상승 압력을 실질적으로 낮춰 현재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평가했는데요. 물가를 낮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등 통화 정책 당국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답니다. 다만 블룸 교수는 "이러한 분석이 단기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해 안심할 근거가 되진 못한다"면서 "그저 약간 완화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편집자주 - [찐비트]는 ‘정현진의 비즈니스트렌드’이자 ‘진짜 비즈니스트렌드’의 줄임말로 조직문화, 인사제도와 같은 기업 경영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외신과 해외 주요 기관들의 분석 등을 토대로 신선하고 차별화된 정보와 시각을 전달드리겠습니다.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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