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서훈-박지원 고발.. 지지율 추락 때문이었나
[박소희 기자]
▲ 왼쪽부터 박지원,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
ⓒ 오마이뉴스 |
국가정보원이 전직 수장을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사상 초유의 일을 벌어졌다. 예사롭지 않은 징후다.
서훈 전 원장은 2019년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 당시 합동조사를 강제로 조기 종료 시켰다는 혐의다. 박지원 전 원장은 2020년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관련 첩보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했다는 혐의다. 검찰은 고발 하루 만인 7일, 두 사건을 각각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3부에 배당하면서 본격적인 수사를 앞두고 있다.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이나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모두 2~3년 전의 일이다. 서서히 잊혔던 사건들이 정권교체 한 달 만에 다시 여야의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됐고, 2주일여 만에 검찰의 수사대상이 됐다. 감사원이 지난 6월 해경 등의 '월북 판단' 번복 직후 감사 착수 의사를 밝혔던 것도 감안하면 권력기관들이 전임 문재인 정부의 대북 관련 사건들을 다시 꺼내서 흠결을 찾고자 하는 '사정 정국'이 형성된 셈이다.
지지율 추락-김건희 리스크 확산... 의심스러운 국정원의 선택
배경은 뭘까. "전형적인 이슈 바꿔치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집권 초반임에도 하락 중인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 '비선 보좌' 논란 등 다시 부각되고 있는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 논란 등의 정국을 전환시키기 위한 선택이라는 얘기다.
다음 두 개의 그래프를 보면 이러한 해석은 더욱 힘을 얻는다.
▲ MBC와 서울대 국제정치데이터센터가 현 시점에서 가장 신뢰도 높은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평가 여론조사값의 추정치를 나타낸 그래프. |
ⓒ MBC 홈페이지 갈무리 |
▲ 6월 20일~7월 6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김건희'란 단어의 검색어 트렌드. 최다 검색량을 100으로 놓고 검색 횟수의 상대적인 변화를 나타냈다. |
ⓒ 네이버 데이터랩 |
첫 번째 그래프는 MBC와 서울대 국제정치데이터센터가 통계적 방법을 이용해 현 시점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평가 여론조사값을 추정한 것이다. '긍정'은 꾸준히 하향 곡선을, '부정'은 줄곧 상향 곡선을 그리다가 6월 말 교차한다.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는 '데드크로스(Dead-cross)'다. 두 곡선의 간격은 점점 벌어져서 7일 현재 부정 48.4%-긍정 44.5%로 나타난다. 이미 부정평가가 50%를 넘어선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또 다른 그래프는 6월 20일~7월 6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김건희'란 단어의 검색어 트렌드를 나타낸 것이다. 해당 기간 최다 검색량을 기준점(100)으로 삼아 검색 횟수의 상대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김건희'란 단어의 검색량은 윤 대통령 부부의 첫 해외 순방 일정,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 급증해 6월 29일 정점을 찍는다. 이후 하향세를 탔던 그래프가 다시 머리를 치켜든 것은 지난 5~6일.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배우자 신아무개씨의 순방 동행 등 소위 '비선 보좌' 논란이 불거진 때다.
그리고 국정원은 지난 6일 서훈·박지원 전 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위 그래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윤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과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 논란이 맞물린 시기다. 이는 6월 중순 첫 문제제기 후 사실상 답보 상태에 접어들었던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등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다시 끄는 효과를 가져왔다.
여당도 이에 발을 맞추고 있는 중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7일 본인 페이스북에 "(2020년 북한해역에서 피격당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월북몰이'의 본질은 권력에 의한 진실의 은폐"라며 "권력의 속내는 무엇인가. 바로 북한에 대한 굴종, '종북공정'"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하루 전인 6일엔 당의 기존 관련 TF를 확대·계승하는 '국가안보 문란실태조사 TF'까지 발족하기로 했다.
기시감마저 느껴지는 과정이다. 국민의힘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를 약속했다는 회의록이 존재한다는, 이른바 'NLL회의록 사건'이었다. 국민의힘 인사들이 당시 회의록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관련 발언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참여정부에 '굴종적 대북정책' '종북 정권' 등의 이미지를 입히고자 했다. 그러나 2013년 7월, 여야 합의를 통해 열람·공개된 자료에선 국민의힘 측에서 주장했던 내용은 발견되지 않았다.
▲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은 실패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TF' 소속 윤건영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국민의힘 쪽에서 얘기한 내용 중에 사실로 드러난 게 하나라도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NLL회의록 사건 때는 사실 (대통령지정기록물 문제라 진상파악이 어려운) 깜깜이였는데, 서해공무원 사건은 당시 문 대통령이 거의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며 "국민의힘도 더 이상 덮어씌우지 못한다"고 했다.
윤 의원과 함께 TF에서 활동하는 황희 의원도 ▲정부 당국이 2년 전 월북 판단 근거로 사용한 SI(특수정보)자료를 새롭게 평가한 것도 아니고 ▲다른 증거가 새로 나오지도 않은 점 등을 거론하며 "(여권은) 사정정국으로 가고 싶겠지만, 앞뒤가 안 맞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윤 대통령 지지율은 떨어지고, 경제도 안 좋은 상황을 만회하고자 전 정부를 탓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이번 건은 판을 키워봤자 불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 역시 "전형적인 이슈 바꿔치기"라면서 "'(문재인 정부 방식의) 적폐청산'은 윤 대통령의 돌파구가 안 된다"고 봤다. 그는 "적폐청산이 효과를 보려면 지지율이 높아야 하는데 지금 같은 경우는 오히려 '기획 사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그러면 지지층이 더 이탈한다"고 진단했다. 또 이번 일이 오히려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전선을 무한 확대하는 역기능으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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