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게이트·거짓말.. 존슨 영국 총리, 끝내 '불명예 퇴진'
[윤현 기자]
▲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집권 보수당 대표 사임을 보도하는 영국 BBC 방송 갈무리. |
ⓒ BBC |
잇단 논란에 휘말린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결국 취임 3년 만에 불명예 퇴진한다.
존슨 총리는 7일(현지시간) 런던 총리실 앞에서 성명을 내고 여당인 보수당 대표직에서 사임하며, 차기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만 일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차기 총리가 올 때까지 새로운 정책을 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총리실이 있는 다우닝가 앞 대로변에서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야유하는 가운데 존슨 총리는 사임서를 읽어내렸다.
그는 "이렇게 성과가 많고, 할 일도 많은 상황에서 정부를 교체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보수당) 의원들을 설득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라며 브렉시트 완수, 코로나19 대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응 등을 업적으로 내세웠다.
이어 "구상과 정책들을 직접 해낼 수 없어서 고통스럽지만, 새로운 대표와 총리가 나와야 한다는 당의 의지가 분명하다"라며 "세계 최고의 자리를 포기하게 되어 매우 슬프고 국민이 준 엄청난 특권에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며칠간 퇴진 압박 속에서도 물러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그저 총리직을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에 아니라 2019년 총선에서 보수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에 스캔들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존슨 총리는 보수당이 여름에 경선을 치르고, 10월 연례 전당대회 전에 새 총리를 정할 때까지 과도 정부를 이끌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제1야당 노동당은 존슨 총리가 즉각 물러나지 않으면 신임 투표를 추진하겠다며 압박을 이어갔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존슨 총리가 완전히 떠나지 않고 임시 총리로 남으려고 한다면 신임 투표를 통해 물러나게 할 것"이라고 "보수당도 그가 총리로서 부적합하다고 결론 내렸다"라고 밝혔다. 보수당 내 존슨 총리 반대파를 규합해 당장 강제로 퇴진하게 만들겠다는 경고다.
전임 메이 총리 몰락시켰던 존슨... 같은 처지 되고 말았다
<더타임스>, <텔레그래프>에서 기자로 일했던 언론인 출신 존슨 총리는 보수당 하원의원, 런던시장, 외무장관 등을 역임하며 정치적 체급을 키웠다. 그리고 브렉시트 과정에서 영국이 무조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강경파를 이끌며 2019년 7월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 영국의 제77대 총리에 올랐다.
정권을 잡은 그는 브렉시트를 완수했고, 코로나19 백신 개발 정책을 주도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보였다. 하지만 임기 내내 스캔들의 연속이었다. 특히 사적 모임을 금지한 코로나19 방역 규정을 어기고 총리 관저 등에서 와인파티를 한 것이 드러났다. 이는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역 규정 때문에 홀로 남편의 장례식을 지켰던 장면과 대비되어 더욱 국민적 분노가 일었다.
▲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집권 보수당 대표의 사임 배경을 분석한 <가디언> 갈무리. |
ⓒ 가디언 |
그리고 불과 한 달 만에 결정타가 터졌다. 존슨 총리가 측근인 크리스토퍼 핀처 보수당 하원의원의 과거 성 비위 전력을 알면서도 원내부총무로 임명했고, 언론에 이를 몰랐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거짓말로 드러난 것이다.
그는 뒤늦게 "실수였고, 잘못된 일이었다"라고 사과했으나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급기야 이틀 만에 40명이 넘는 핵심 장관들과 참모진이 총리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며 줄사퇴했고, 언론과 여론조사도 퇴진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존슨 총리는 버티기에 나섰으나, 보수당이 신임투표를 하면 1년간 재투표할 수 없다는 규정을 바꿔 존슨 총리에 대해 다시 신임투표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압박을 최고 수위로 높이자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3년 전 브렉시트 과정을 매끄럽게 이끌지 못한 전임 테리사 메이 총리도 신임투표를 통과했으나 당내 장악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다시 신임투표가 추진되자 스스로 물러났었고, 이를 주도했던 존슨 총리도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임기를 정리한 <더 타임스> 갈무리. |
ⓒ 더 타임스 |
영국 언론은 혹평을 쏟아냈다. 공영방송 BBC는 "지루하고 기계 같은 정치인들의 시대에서 존슨은 재미있고 낙관적인 이미지와 강력한 공약으로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알아보게 하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 과거에 보수당이 도달할 수 없었던 유권자들까지 끌어들였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존슨은 다른 정치인이라면 진작 몰락했을 스캔들에 휘말리고도 계속 살아남을 것처럼 보였으나, 정치적 중력을 거스르던 그의 롤러코스터 같은 경력이 마침내 추락하고 말았다"라고 지적했다.
진보 성향의 유력지 <가디언>도 "한 사람의 인격적 결함이 당과 정부의 결함이 되어 국가 전체에 큰 피해를 입혔다"라며 "존슨은 보수당이 소중하게 여긴 가치에 등을 돌렸고, 노조를 위협하고 의회를 짓밟았으며, 심지어 군주제를 모욕하기도 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공적 신뢰를 고갈시켜 불신과 냉소주의 유산을 남겼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존슨 총리가 기자 시절 몸담았던 보수 성향의 <더 타임스>도 "존슨은 지도자를 교체하기로 한 보수당 의원들의 결정을 한탄했으나, 스스로 저지른 실수와 몰락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보수당은 존슨과 깨끗하게 결별하면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외국 정상들도 즉각 반응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과 영국의 특별한 관계는 강력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라며 "누가 새 총리가 되든 우크라이나 지원을 포함해 주요 우선순위에서 영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존슨 총리는 우크라이나의 진정한 친구였다"라고 감사를 전했다. 반면에 러시아 크렘린궁은 "존슨 총리는 러시아를 좋아하지 않았고, 우리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BBC 방송은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보수당원 7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6∼7일) 결과를 바탕으로 벤 월러스 국방장관, 페니 모돈트 국제통상부 부장관,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 등을 차기 총리감으로 전망했다.
장관들의 줄사퇴 속에서도 안보 공백은 막아야 한다며 사임하지 않은 월러스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으로 주목받고 있다.
반면에 수낙 전 재무장관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며 호평을 받았고, 이번 사태가 터지자 사지드 자비드 전 보건부 장관과 함께 가장 먼저 사임하며 존슨 총리를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또한 트러스 외무장관은 러시아, 중국에 대한 강경 외교를 펼치며 존재감을 키웠으나 존슨 총리의 최측근이라는 것이 약점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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