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독자 치료지정병원 90%가 "마약환자 안받아요" 왜?
"옛날엔 저희 병원장님이 마약 환자 진료를 하셨는데 지금은 안 계십니다. 80개 병상이 있지만 주로 알콜이나 도박중독 환자들이고 지금 병원에 마약 환자는 없습니다.(○○병원)"
"저희가 지금까지 한 번도 마약 환자는 받아본 적이 없어서요. 마약중독센터에 한번 전화해서 물어보실래요? 부곡병원엔 자리가 없던가요?(국립□□병원)"
"저희가 마약 치료를 딱히 하진 않아요. 보통 마약환자는 입원치료를 요하는데 저희가 입원치료는 안 되거든요. 따로 갖춰둔 시설이 없어서요.(국립△△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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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마약공화국⑦]마약 환자 거부하는 마약치료 지정병원
중앙일보가 전국 21곳의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지정병원' 가운데 일부 병원들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10대 환자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본 결과다. 대부분 지정병원이 전문 의료진과 시설·병상 부족을 이유로 마약환자 치료를 거부한 것이다.
대통령령인 '마약류중독자 치료보호규정' 및 관련 규칙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과 전국 시·도지사 등이 지정한 이들 병원은 검사나 중독자 본인·가족의 치료보호 의뢰·신청을 받으면 심의를 거쳐 최대 1년까지 무상 치료(입원치료 및 외래진료)를 해야 한다. 각 지정병원은 지자체에 치료비를 청구하고, 지자체는 이를 보건복지부와 절반씩 부담해 병원에 지급한다. 치료를 필요로 하는 마약류 중독자가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은 막자는 취지에서 이런 제도가 도입됐다. 그 대표적인 수혜자가 10대 청소년이다.
문제는 이들 지정병원 중 상당수가 사실상 마약류 중독 환자에 대한 치료 행위를 멈춘 상태라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1곳 지정병원 중 지난해 단 한 사람의 마약류 중독 환자도 받지 않은 병원은 13곳(62%)에 달했다. 나머지 8곳 지정병원 가운데서도 6곳(28.5%)이 1년 동안 한두 명의 중독 환자만 받는 데 그쳤다. 인천의 참사랑병원, 경남의 국립부곡병원 등 단 두 곳(9.5%)만이 1년간 100명 넘는 마약류 중독 환자에게 치료를 제공해 '제 역할'을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21곳 지정병원에서 치료보호를 받은 마약류 중독자는 280명이다. 지난해 검거된 청소년 마약류 사범 450명에도 한참 못 미친다. 지난해 전체 투약 사범이 8522명이라는 점과 국내 마약류 범죄의 평균 암수율(검거 대비 실제 발생범죄 수를 계산하는 배수) 28.57배 등을 고려했을 때 한 해 24만여명의 마약류 중독자가 치료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최다 환자 받는 병원장도 "고생은 고생대로, 돈은 안 줘"
지정병원조차 중독자를 외면하는 상황은 왜 벌어졌을까. 2019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가장 많은 마약류 중독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인천 참사랑병원의 천영훈 원장은 치료 강도와 빈약한 예산지원 등 2가지 이유를 들었다. 8개의 지정 병상을 가지고 한 해 164명(지난해 기준)의 마약류 중독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그 역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제대로 못 받은 일이 반복되다 보니 되도록 마약 환자는 입원치료를 안 받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천 원장은 "마약류 환자는 반사회성인격장애가 있는 경우가 상당수인 데다 위험해서 의사들 사이엔 '조현병 환자 10명 몫을 알코올 환자가 하고, 알코올 환자 10명 몫을 성격장애(Antisocial) 환자가 하고, 성격장애 환자 10명 몫을 마약 환자 1명이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런 마약 환자를 받아 입원 치료를 하면 치료비 절반을 부담해야 할 지자체가 예산 부족을 핑계로 승인해주지 않으면 병원 입장에선 치료비를 떼이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지정병원에 배당된 전체 전체 예산은 2억800만원이다. 보건복지부와 각 지자체가 절반씩 부담한다. 그런데 마약류 중독 환자 한 명의 1개월간 입원치료 비용은 최소 500만원. 예산을 전부 입원치료에 투입하면 환자 40여명을 한 달 치료하는 것만으로 연간 예산이 바닥나는 구조다.
결국 정부 지원 예산을 초과하는 환자는 오로지 개인 부담으로 값비싼 마약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정부에 5억 못 받자 문패 뗀 지정병원…국립병원 예산은 0
천 원장은 "지정병원 제도를 거창하게 도입해놓고도 준비된 예산은 없어 아무런 실효가 없다"며 "입원치료의 경우 아예 치료보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우리 병원도 한때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받아야 하는 미수금이 1억5000만원에 달할 정도였다"고 했다.
지자체가 소위 ‘매칭 펀드’ 제도를 탓하며 지정병원의 치료비 청구를 피하고 정부는 그런 사실이 있는 줄 몰랐다며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지정병원들은 마약 중독자 치료를 아예 포기해버렸다. 2017년 206명, 2018년 136명 등 과거 마약류 중독 환자를 가장 많이 치료했던 강남을지병원이 2019년부터 지정병원에서 빠졌다. 서울시와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지 못한 미수금이 5억원에 이른 뒤 내린 결정이었다.
21곳 지정병원 가운데 절반 이상인 국립정신병원들은 처음부터 마약 치료 예산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탓에 '개점휴업'하고 있다. 비싼 마약류 중독 환자 치료비를 병원 자체 예산으로 감당하다간 다른 환자들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이유다. 국립병원 각각의 경영평가만 놓고 봐도 가성비 떨어지는 마약류 중독 환자는 기피 대상이 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말 기준으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5년간 전체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의 지정 병상수는 330개에서 292개로, 의사 수는 170명에서 132명으로 감소했다.
"내 자녀 마약 땐 꼭 병원으로…비밀 1000% 보장"
마약류 환자를 가급적 안 받으려 한다는 천 원장이 "꼭 좀 데려 와달라"고 호소하는 환자가 있다. 10대 청소년 중독자다. 천 원장은 부모들이 자기 자녀의 마약 문제를 알게 됐을 땐 절대로 가정 안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병원부터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맹장이 터졌을 때 '낫겠다는 의지'만 가지고 꾹 참는다고 병이 사라지는 게 아니듯, 마약류 중독 역시 질병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즉각 치료를 받아야만 완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가족만 알고 싶은 비밀이 다른 데 새어나가는 것이 걱정된다면 21개 지정병원을 찾으라는 게 천 원장의 조언이다. 그는 "21개 병원만큼은 정부가 마약류 환자를 치료하라는 목적으로 지정한 곳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진료받아도 된다"며 "이마저 마음이 안 놓인다면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상담전화(1899-0893)에 전화해 방법을 물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천 원장은 "통상 한 국가 마약지수(Drug Index : 인구 10만명당 검거된 마약류 사범의 숫자)가 20을 넘으면 마약을 통제할 수 없는 사회에 진입했다고 보는데, 우리나라는 2015년 이미 20을 넘었고 최근엔 그 두 배에 가까워졌다"며 "내 자녀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하기보단 자녀에게 먼저 '주변에 마약 하는 친구가 있냐'고 질문해 대화를 터보라"고 조언했다.
■ 10대 마약공화국
「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청소년이 해외직구로 마약을 밀수하고 메신저 채팅앱으로 판매하는 세상입니다. 한때 마약청정국에서 시나브로 10대들의 마약공화국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중앙일보가 대검찰청ㆍ국가수사본부ㆍ식품의약품안전처ㆍ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가와 단속은 물론 치료ㆍ재활ㆍ교육예방 전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세계 마약 퇴치의 날인 6월 26일부터 중앙일보 10대 마약공화국(www.joongang.co.kr/series/11575)을 만나보시죠.
」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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