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년전 팔아놓고 "美, 알래스카 내놔라"..러의 찌질한 으름장
러시아가 뜬금없이 155년 전에 미국에 판 알래스카 영토를 돌려받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해 러시아의 해외 자산을 몰수해 충당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헐값에 넘긴 알래스카 영토를 들먹거린 것이다.
러 하원의장 "우리 자산 압수? 美 알래스카 돌려줘"
6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내 강경파인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 의장은 이날 하원에서 "미국은 러시아 영토 일부인 알래스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미국 등 서방이 자꾸 우리 해외 자산을 압수하는데, 그전에 미국이 우리에게 돌려줄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표트르 톨스토이 러시아 하원 부의장은 알래스카에서 이를 두고 국민투표를 할 수도 있다고 지원 사격했다.
미국의 49번째 주(州)로 면적이 171만7856㎢에 달하는 알래스카는 원래 러시아 제국 영토였다. 알렉산드르 2세 시절인 1867년 미국에 720만 달러(현재 가치는 1억6000만 달러·2100억원)에 팔았다. 당시 알래스카는 러시아 제국에게 계륵이었다.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통치가 어렵고 관리비용도 많이 들었다. 또 오스만 제국과 크림 전쟁(1853~1856년)으로 국고가 바닥난 데다 영국이 무력으로 알래스카를 점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매각을 부추겼다.
1㎢당 겨우 4.19달러(현재 가치 92달러·12만원)에 샀는데도 당시 미국 내에선 비판이 거셌다. 계약에 서명한 윌리엄 슈어드 미국 국무장관은 "거액의 돈을 날리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비난받았다. 그런데 1899년에 알래스카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뒤이어 대규모의 석유와 가스 자원이 발견되면서 금싸라기 땅이 됐다. 이후 미국은 쾌재를 불렀지만 러시아는 배 아파했다.
알래스카에는 러시아 문화가 남아있다. 알래스카주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약 80여개의 러시아 정교회가 있고, 알래스카 대학교에는 다른 미국 대학보다 러시아인 학생이 많다. 그러나 전체 인구 74만명 중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은 1.4%에 그친다. 매각 당시에도 알래스카에 거주하고 있는 러시아인은 2500여명이었다고 한다. 톨스토이 부의장은 알래스카 영토 반환을 두고 국민투표까지 언급했지만 찬성표를 던질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서방, 러 자산 몰수해 우크라 재건비용 충당 고민
이런 황당한 주장이 나온 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제재로 동결된 러시아 해외 자산을 우크라이나 재건에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앞서 지난 4~5일 스위스 루가노에서 서방 40여개 나라와 유럽연합(EU),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가 모여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회의를 열었다. 우크라이나 측은 재건하는 데 7500억 달러(약 972조원)가 들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데니스 슈미갈 우크라이나 총리는 "이 중 3000억~5000억 달러(389조~648조원)는 전 세계에서 동결된 러시아 정부나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 자산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서고 있는 서방 국가들도 동조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교장관은 영국 내 러시아인들의 동결 자산을 몰수해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자들에게 나눠주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고 가디언이 지난 3일 전했다. 구체적인 영국 정부 구상안도 나왔다. 몰수된 러시아 자산은 배상금 형식으로 우크라이나 개인들에게 직접 주어지거나, 또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전달될 수 있다.
EU 집행위원회도 지난 1일 러시아 제재로 동결된 러시아 관련 자산을 몰수해서 EU 재원에 편입한 후 우크라이나 지원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지난 4월 이 같은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에 러시아가 알래스카까지 들먹이며 반발하고 있지만 러시아 해외 자산 몰수가 실제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이그나지오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은 "소유권과 재산권은 기본적인 권리이자 인권"이라며 "러시아 자산을 몰수하는 것은 위험한 선례를 만들 수 있다"고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지적이 있어서 헌법적 검토를 선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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