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 前 한전 사장이 밝히는 '한전 적자' 해법
김종갑 한양대 특훈교수는 2018년부터 2021년 5월까지 한국전력 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임기 내내 한국전력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력 산업 정상화가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한국전력 최고책임자였던 김 교수가 생각하는 한국전력 대규모 적자 해결책은 무엇일까.
Q 2년 전만 해도 한전은 흑자를 보는 회사였다. 왜 갑자기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게 됐나.
A 한전은 도매로 전기를 사서 소매로 판매하는 회사다. 올해 1분기 적자는 발전 연료 가격이 급상승한 탓이 컸다. 한전이 구매하는 전력 도매가격은 대폭 올랐는데 한전이 판매하는 소매 전력요금은 오르지 않아 생긴 문제다.
한전의 수익성은 연료 가격이 상승하느냐 하락하느냐, 이를 얼마나 요금에 반영하느냐에 따라 들쭉날쭉한다. 연료 가격이 높았던 2019년에는 1조2000억원의 적자가 났고, 연료 가격이 낮았던 2020년에는 4조1000억원의 흑자가 났다. 당시 비상 경영을 통해 간접비를 줄이고 임직원 보수 일부도 반납했지만 이것 때문에 흑자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13년 이후 9년간 요금 조정을 하지 않았다. 한전은 기우제 지내듯 연료 가격이 안정되기만을 바라면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천수답 경영’을 해오고 있다.
Q 연료비 연동제 도입이 전기료의 급격한 인상을 불러온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전력 산업 생태계가 정상화된다. 전력 부문이 먹거리 산업으로 발전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각국은 전력요금을 연료비 또는 공급원가와 연동해 예측 가능성 있게 운영한다. 우리도 제도상으로는 그렇게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실행이 안 돼왔다. 2021년부터 보다 체계적으로 원가 연계 요금제를 시행하기로 했는데 지켜지지 않았다.
각국은 최근에도 연료비가 폭등한 만큼 전력요금을 인상하고 있다. 영국은 4월에 이어 10월에 추가 인상하는데, 그렇게 되면 한 해에 요금이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취약한 가계에 대해서는 전력요금을 깎아주는 것이 아니라 재정에서 현금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요금이 비싼 만큼 영국 국민은 전기를 덜 쓴다. 1인당 전기를 한국의 44%만 쓴다.
기후위기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전력요금 원가를 반영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너무 싸게 써온 만큼, 한꺼번에 원가만큼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소비자가 수용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총괄원가를 반영하면서, 큰 영향을 받는 취약 부문에는 재정에서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
A 원자력 발전 이용률이 낮았던 원인이 ‘탈원전’ 때문인가 ‘안전 관리’ 때문인가에 대한 이견이 있다. 발전원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자력 이용률을 높이면 한전 경영 개선에 도움이 되므로 한전 사장 재직 당시 이용률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올해 1분기 원자력 이용률은 84%로 과거 평균치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최대 규모 적자가 난 것은, 연료 가격이 최근 저점이었던 2020년 대비 무려 5~12배나 상승한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전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원자력 발전 역할이 중요하다. 신한울 3, 4호 건설을 조속히 재개하고, 안전 문제가 없는 한 기존 원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전력 생산지에서 소비가 가능한 소형 모듈 원전 연구와 사업화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OECD 최저 수준인 재생에너지도 최대한 확대해나가야 한다. 우리 여건에 맞는 최적의 에너지 믹스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조속히 형성돼 전력 수급 계획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
Q 한전의 전기 독점 판매 구조를 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A 소매 시장을 개방해 전기 소비자 편익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다만 독점 구조를 깬다 해도 소매가격이 도매가격보다 훨씬 싸서 지금은 아무도 소매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 원가 연계 요금 제도를 정착시켜야 가능한 내용이다.
한전과 더불어 발전사도 소매를 하고(발전 판매 겸업 금지의 폐지) 발전이나 송배전 시설 없이도 도매로 사서 소매하는 사업자가 많이 생겨나야 한다. 서로 품질과 가격 경쟁을 하도록 해야 한다. 도매도 경쟁 체제로 바꿔야 한다. 정부(전력거래소)가 가격과 물량을 결정할 일이 아니다.
에너지는 핵심 인프라지만, 핵심 먹거리 산업이기도 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20년간 100조달러 이상 투자가 이뤄질 최대 산업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원가 연계 요금 체계가 하루 속히 정착되고 도매와 소매 경쟁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Q 한전 경영 관련해 가장 급히 개선해야 할 점 ‘한 가지’만 뽑아달라.
A 전직 한전 사장으로서 오늘 한전이 처한 문제에 큰 책임이 있다. 역량이 부족해 많은 숙제를 남겨뒀다. 더 치열하게 원가 관리를 하고 더 적극적으로 고객 관리를 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원가 연계형 요금 제도를 도입했으나 정부가 이를 철저히 지키도록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세계은행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전력 공급 부문 경쟁력 1~2위로 평가받고 있듯 한전은 역할을 상당히 잘해온 편임을 국민들께서 알아주시면 좋겠다. 세계 주요 전력 유틸리티와 한전의 간접비 관리 실적을 비교해보면 사실이 드러난다.
Q ‘원가 연계형 요금제’가 가장 절실하다는 의미인가.
A 다른 곳에서도 CEO를 맡았지만 한전은 정말 어려웠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원가를 반영하는 요금 체계 정착은 기본이고, 많은 제도 혁신이 필요하다. 정부는 공공 부문 혁신을 주요 정책 과제로 삼고 있다. 이와 관련 한전을 포함한 상장 공기업에 ‘자율과 책임’ 원칙을 적용해줄 것을 건의한다. 정부가 기본 방향은 제시하되 일상적 운영은 경영진에 맡겨 잘하면 칭찬해주고 잘못하면 벌칙을 적용하면 될 것이다.
모든 주식회사가 그러하듯 상장 공기업은 이사회 중심 경영을 해야 한다. 대주주인 정부가 전문성 있는 CEO와 사외이사를 임명하고, 사외이사로 구성된 위원회가 경영진과 사업 실적을 평가하는 게 최선이다. 8개 상장 공기업은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공운법)이 아니라 상법을 적용하는 것이 맞다.
한수원 등 6개 발전사는 한전이 100% 소유했다. 그런데 불필요한 사업 중복이 있거나 서로 협업을 할 필요가 있어도, 사업 관리나 재무 관리와 관련해 한전이 의견을 반영할 길이 없다. 공운법에 따라 정부가 직접 지휘 감독하기 때문이다. 바꿔야 한다. 컨트롤타워를 정부가 아닌 한전으로 통합하는 것이 최선이다. 당분간 어렵다면, 우선 한전이 사외이사라도 파견해 전체 전력 그룹의 경영 최적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절실하다.
[반진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6호 (2022.07.06~2022.07.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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