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일병 죽음은 왜 왜곡됐나.. 미심쩍은 군의 움직임 [김형남의 갑을,병정]
[김형남 기자]
2020년 8월 23일, 육군 제6사단에서 한타바이러스에 감염된 병사가 패혈성 쇼크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 한타바이러스는 설치류의 배설물을 통해 감염자에게 옮겨가는 바이러스로, 야외 활동이 잦은 군 장병들의 특성을 고려해 국방부가 유의하며 관리하는 감염병 중 하나다.
▲ 2020년 8월 23일, 육군 제6사단에서 한타바이러스에 감염된 병사가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다. 사망일로부터 이틀이 지난 8월 25일 SBS는 저녁 뉴스에서 이 사건을 단독 보도했다. |
ⓒ SBS |
기사에도 유가족에 대한 언급이 없고, 유가족에게 연락도 없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단독 보도를 한 기자는 육군 관계자만 취재한 것으로 보인다. 보도 직후 다른 언론사도 육군 관계자만 취재해 유사한 내용의 기사를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감염병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최고조에 달해있던 시기였는데, 이러한 까닭으로 백신을 맞았는데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보도 내용에 주목도가 높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유가족은 보도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된다. A일병은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 동안 제초작업에 투입되었고, 백신은 11일 오전에 맞았다. 백신을 맞고 제초작업에 투입된 것이 아니고, 작업하다 뒤늦게 백신을 맞고 다시 작업에 투입된 것이다.
잘못된 보도는 엉뚱하게도 여론의 향방을 백신 접종 무용론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번지게 했다. 대체 육군 관계자는 무슨 이유로 기자들에게 사실관계를 비틀었던 것일까. 잘 모르고 실수한 것일까?
변사사건 수사기록 중에는 보도가 이루어지기 하루 전인 2020년 8월 24일, 6사단 군사경찰대대가 작성하여 군검사가 지휘한 '변사체 발견 보고 및 시체처리 지휘요청서'가 있다. 이 문서에는 제초작업을 한 날짜가 '2020. 8. 10.~8. 12. 어간'으로 명시되어 있고, 사망원인도 사망진단서와 검시 결과를 참고해 '신증후군출혈열(한타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패혈성 쇼크'로 확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 육군은 이미 A일병의 사인을 한타바이러스 감염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으로 확정한 상황에서 감염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제초작업 날짜와 백신 접종 일정 등을 파악하여 놓고도, 사인을 감염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애매한 단서를 달아 백신 접종과 제초작업 일정 등을 왜곡하여 기자에게 전한 셈이다.
항체 형성 기간을 고려할 때 백신을 맞고 다음 날 작업에 투입되었건, 작업 중에 백신을 맞았건 이미 접종 시기가 늦었다는 점은 매한가지다. 9월에 진행된 역학조사 결과 감염 시기도 8월 10~12일의 제초작업이 아닌 7월 29일 자 야외훈련으로 확인되었다.
의혹의 실마리
그렇다고 해도 사건 초기 육군이 의도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하고자 했다는 의혹은 그대로 남는다. 의혹의 실마리는 유가족이 보도 전날인 8월 24일 국군대구병원 장례식장에서 6사단 군사경찰대대에 변사사건 수사와 관련해 진술한 내용에 담겨있다.
진술조서에 따르면 유가족은 사망 직후부터 군의 부실한 의료 후송체계와 안일한 진료로 죽지 않을 사람이 죽은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백신 접종에 대해서도 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정말 접종을 제대로 한 게 맞냐는 질문도 던졌다.
▲ 2017. 7. 군인권센터가 입수한 육군의 현안업무 점검회의 결과 내용 |
ⓒ 군인권센터 |
(2017년 7월에는 육군 22사단에서 병사가 자살한 사건 직후 육군참모차장 주관으로 진행된 '현안업무 점검회의 결과 보고'가 폭로된 바 있는데, 사망사건에 대한 군 지휘부의 대응 태도를 여실히 잘 보여준 사례다. 폭로된 문건에는 사건 관련 공보대응에 대한 평가와 향후 확산 가능성 점검, 선제적 대응 미비에 대한 육군참모차장의 책망 등이 담겨 있다.)
이 사건도 유가족이 구체적으로 사망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자 육군이 선제적으로 언론에 사건을 흘려 미리 짜놓은 프레임대로 여론을 형성하려고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야외작업을 하다 말고 중간에 백신을 접종한 것과 백신을 접종하고 야외작업을 내보낸 것이 만들어내는 사건 스케치는 당연히 다르다.
게다가 보도 이후 군이 보인 태도는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유가족은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확인한 뒤 사단장에게 사실관계를 바로 잡아 줄 것을 요청했다. 돌아온 답은 "보도 정정은 사건이 마무리되면 그때 해도 늦지 않습니다"였다고 한다.
해당 사단장이 이임하고 새로 취임한 사단장에게도 보도 정정을 요청했지만 논의 후 답을 주겠다는 말 외에는 답변을 받은 바가 없었다고 한다. 유가족은 최초로 단독 보도한 기자에게도 기사를 정정해달라는 메일을 보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단순한 실수로 오보가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다.
A일병의 사망은 초기 진료를 맡았던 군의관의 안일한 태도, 열악한 군 의료시설 등을 이유로 조기에 감염 여부를 진단하지 못하고 열이 38도에서 40도를 오가는 환자를 해열제만 처방하며 50시간이나 방치한 탓이 크다.
군의관은 지침상 반드시 확인하게 되어 있는 야외활동력도 확인하지 않았고, 사단 의무대는 혈액검사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장비가 고장 났다는 이유로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후송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뒀다.
상태가 나빠져 50시간이 지나서야 후송된 국군포천병원에서는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한타바이러스 감염을 의심하고 관련한 조치를 취했다. 사단 의무대에서 초기 진료만 제대로 했더라면 건강한 청년이 바이러스 감염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어이없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건은 부실한 군 의료체계가 빚어낸 인재(人災)다. 주기적으로 군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의 전형이기도 하다.
여론 포화에서 군 지킬 일에만 골몰
참사를 마주한 국방부와 군 지휘부의 역할은 유가족을 성심껏 위로하고 사망의 원인을 빈틈없이 규명하여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게끔 '대책'을 짜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군 지휘부의 '대책'은 '어떻게 하면 군을 여론의 포화로부터 보호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왜 비슷한 참사가 반복되는지 알 법한 대목이다. 군이 조직과 인력을 동원해 사실관계를 왜곡, 짜깁기하고 교묘하게 여론을 뒤트는 데 골몰하는 모습을 본 유가족은 국가로부터 깊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2022년 7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설치된 '군인권보호관'은 한타바이러스 감염 병사 사망 사건을 '1호 진정 사건'으로 접수했다. 진정을 제기한 군인권센터는 부실 의료로 인한 사망에 따른 국가의 책임 규명을 주된 진정 사유로 하는 한편, 사망 직후 이루어진 왜곡 보도에 대해서도 진상을 규명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군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조작, 왜곡, 은폐의 허물을 벗겨내자면 이참에 사건·사고 대응을 바라보는 군의 관점을 전면 재설정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군은 늘 과도한 대군 불신 정서에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불신은 저절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군 스스로 쌓아왔고, 쌓아가는 불신이 오늘에 이르렀을 뿐이다.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로 더 나은 병영을 모색하려는 노력보다는, 당장의 비난과 문책을 피하는 데 급급한 비겁한 태도로는 당당한 국민의 군대가 될 수 없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은 어쩌다 전 세계 '큰 손'이 됐나... 기만적인 거래
- 국정원, 박지원 고발 헛발질? 군 "원본 남아 있다"
- "윤석열보다 노태우 데드크로스 더 빨라" 보도는 '대체로 거짓'
- 박지원·서훈 고발... 국정원 2인자는 '김건희 주가 조작 의혹' 변호인
- "저는 감시받고 있습니다"... 50년간 묻어둔 아버지의 고백
- 윤 대통령 '출근길 문답', '기네스북 등재' 도전하라는 언론
- 생방송 중 "낙태했어요", 폭탄 발언한 앵커
- 사업상 중국인과 만났을 때, 말 아끼는 게 좋은 이유
- 맨홀작업 중 차에 치여도... "목숨 달렸는데 단돈 150원 아깝나"
- "민주당 대구시당 지선 진 이유? 공천 실패로 유권자 지지 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