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출근길 문답', '기네스북 등재' 도전하라는 언론
[민주언론시민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50여 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청와대를 '구중궁궐'이라 표현하며 국민과의 소통을 늘리겠다는 의지로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출근길 문답을 통해 의견을 전하고 있습니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현안에 문답하는 모습은 신선하면서도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1분 남짓한 '출근길 문답'을 '도어스테핑(Door-stepping 약식 회견)'이라며 굳이 영어로 표현하는 것도 의문인 데다 언론이 이를 제대로 국민에게 전하는지도 살펴야 하는데요.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출근길 문답' 보도의 문제를 살펴봤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의 ‘민변 출신 인사’ 발언에 관한 채널A(6/8)와 오마이뉴스(6/9)의 보도 차이 |
ⓒ 민주언론시민연합 |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은 대통령의 생각이 가감 없이 국민에게 전해진다는 장점도 있지만,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인한 논란도 적지 않습니다. 언론의 보도 태도도 차이가 있는데요.
채널A <'검사 편중' 작심 반박 "미국도 폭넓게 진출">(6월 8일 노은지 기자)은 6월 8일 출근길에 '검찰 편중 인사'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윤 대통령이 "과거에 민변 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를 하지 않았습니까? 미국 같은 나라를 보면 거번먼트 어토니(검사) 경험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습니다.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답한 발언을 전하며 "작심한 듯 검찰 편중 인사 비판을 과거 정부 사례로 반박하고 나섰"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데요. 오마이뉴스 <"민변 출신 도배" 윤 대통령 주장, 실제와 비교해 보니>(6월 9일 김시연 기자)는 6월 8일 당시 윤석열 정부의 "주요 인사들 가운데 검찰 출신(검찰 공무원 출신 3명 포함) 인사는 모두 15명"이며 "반면 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 구성 당시 검찰 출신 인사는 3명에 그쳤"고, "초대 내각과 대통령비서실에서 민변 출신 주요 인사는 3명으로 검찰 출신 숫자와 큰 차이가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채널A가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 발언을 그대로 전한 것과 달리 사실관계를 파악한 후 보도한 것입니다.
▲ 윤석열 대통령 출근길 문답을 기네스에 등재하라는 데일리안(6/12) |
ⓒ 데일리안 |
윤 대통령 출근길 문답의 사실 여부 등이 논란이 되었지만 '취임 후 가장 잘한 일', '능숙한 도어스테핑' 등으로 평가하며 지나치게 미화한 보도도 있습니다.
데일리안 <윤석열 도어스테핑, 기네스북 등재까지 계속하라>(6월 12일 정기수 자유기고가)는 "전임 대통령들이 전혀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이 즉석 문답"은 "윤석열의 브랜드가 되어버렸"다며 "간간이 하게 될 정식 기자회견들까지 더하면 1000회는 쉽게 넘어갈 것이"기 때문에 "내친김에 기네스북 등재도 도전해보라"고 제안했는데요.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정곡을 찌르는 답변"으로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문제에 대해 요점만 답하느라 1분 안팎 회견을 하는 것"이라고 옹호하며 "한마디만 던지고 말거나 아주 곤란한 질문일 때는 어물쩍 넘어가 버리는 것도" 일부러 "구사하는 전략"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더불어 "윤석열의 도어스테핑은 청와대 개방이라는 실외 개혁에 이은 실내 개혁 조치로서, '취임 후 가장 잘한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뉴스1 역시 <각본 없는 질의응답…윤석열 능숙한 도어스테핑 이유 있었다>(6월 14일 이호승 기자)에서 "도어스테핑 횟수가 10차례를 넘기면서 윤 대통령도 발언에 자신감을 붙이고 있다"고 호평했습니다. 뉴스1은 "취임 한 달쯤이 되자 네다섯 개의 질문을 받고 각각의 질문에 대한 답변시간도 크게 길어지고 있다"며 "윤 대통령이 취임 한 달 만에 국정 운영에 자신감을 붙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윤 대통령은 검찰 재직 시절 기자들에게 직접 수사 브리핑을 하면서 일찌감치 언론 대응에 익숙해졌다는 관측도 있다", "일각에서는 '달변'인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자신감을 붙이면서 도어스테핑 횟수나 질문답변 시간도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시아투데이 <칼럼/도어스테핑, 그 '신선한 선물'>(6월 20일 이경욱 대기자)은 출근길 문답이 "국민에게는 분명 '신선한 선물'"이라며 "최정점 리더로부터 거의 매일 아침 그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듣는 것만으로도 국민이 느끼는 민주주의 성숙도는 최고"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더 나아가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듣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생각지 못"했지만 "당당한 모습으로 정국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진정한 리더십"이라고까지 평가했습니다.
'꿈보다 해몽'에 나선 언론
윤 대통령의 출근길 발언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중앙일보 <"윤 대통령 거의 종일 경제 얘기만"…위기대응 진두지휘>(6월 16일 현일훈 기자)는 6월 15일 "도어스테핑을 위해 기다리는 기자들에게 걸어온 윤 대통령은 먼저 '비가 좀 많이 와야 될 텐데 어젯밤에 조금 내리다 말았죠'라고"했는데 "최근 전국적인 가뭄으로 농작물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부터 걱정한 발언이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어 "화물연대 협상 타결에 대한 입장을 (기자가) 묻자" 윤 대통령은 "'글쎄 뭐 조마조마하다'며 '전 세계적으로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경제 위기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데 우리가 다 함께 전체를 생각해 잘 협력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는데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경제 위기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데 방점을 뒀다"고 설명했습니다.
TV조선 <뉴스야?!/"윤 도어스테핑이 무덤"?>(6월 19일 황정민 기자)은 "지난 정부 때는 대통령이 적극적인 소통을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청와대 브리핑도 "'청와대 관계자'발로 기사화"돼 "국민들은 이게 누구 뜻인지 좀 애매"했지만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현안에 대해 설명하면서 오해나 곡해의 여지"가 분명하게 줄어들었다고 강조했는데요.
"너무 세부적인 것까지 언급하게 되면 정부 조직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그만큼 좁혀질 수 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배려해 발언에 "'여지'를 남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윤 대통령 발언의 숨은 의도까지 찾아내 칭찬한 것인데요. 그러나 윤 대통령의 출근길 발언 이후 대통령실이 반복해 발언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 오해나 곡해가 정말 줄어들고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윤 대통령의 계속되는 즉흥적인 발언은 솔직할 뿐, 고민이 담겼다고 보긴 힘듭니다. 이쯤 되면 대통령실 해석이 필요한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요. 서울경제 <기자들과의 '편한 동거'>(5월 18일 김남균 기자)는 "소통의 질이 선진화된 형식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 <윤통이 자랑한 '출근길 문답' 성비위 측근 질문엔 왜 딴말?>(6월 11일 김미나 기자)은 지난 한 달간 기자들이 "△△△를 임명하실 건가요?"란 질문을 가장 많이 했으나 그때마다 윤 대통령 답변은 성실하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이 대통령을 자주 만나 현안에 대한 생각을 물어볼 수 있는 '출근길 문답'은 지속돼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은 짧지만, 기자와의 소통을 늘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형식 이상의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답변하는 대통령'과 '질문하는 기자' 모두가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부정적 취재방식 '도어스테핑', 소통방식일까
특히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에 대해 다수 언론이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이라고 표현하며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데 대해서는 의아하기까지 합니다. 'Door-stepping'을 번역하면 기자 등이 문 앞에서 대기하다 질문하는, 즉 공개된 장소에서 이뤄지는 문답을 의미합니다.
기자들이 취재원의 대답이나 정보를 얻기 위해 일정 조율 없이 상대방의 문 앞에서 기다리는 행위로 취재뿐 아니라 방문판매원·자선단체의 기부권유 등 초대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방문이란 뜻도 포함합니다. 출근길 윤석열 대통령과 기자들의 문답은 약속된 취재라는 의미에서 '도어스테핑'으로 부르는 것은 애초 뜻과도 다르고, 적절한 표현도 아닙니다. 1분 남짓의 짧은 시간을 봤을 땐 '약식 회견'으로 부르기에도 부족해 보입니다. 이처럼 원어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되는 도어스테핑 문제를 제대로 짚은 언론은 TBS <정준희의 해시태그 라이브>와 오마이뉴스를 빼곤 거의 없습니다.
오마이뉴스 <아침 윤 대통령이 한다는 '도어스테핑', 영국선 뜻이 좀 다르다>(7월 1일 박성우 기자)는 "실제 영국 언론에서의 쓰임 및 지침에 따르면 도어스테핑은 약식 기자회견이라기보다는 한국식 기자용어로 치자면 '뻗치기'"와 같이 기습 질문하는 방식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며 "부정적인 취재방식의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는데요. 영국 공영방송 BBC 안전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모든 도어스테핑은 상급 관리자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할 만큼 되도록 지양하는 인터뷰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TBS <정준희의 해시태그 라이브>(6월 17일)에서 정준희 진행자는 "도어스테핑의 주어는 대통령이 아닌 기자"라며 "유럽 저널리스트가 (한국 언론이 쓰는 도어스테핑 개념을) 보면 이상한 말을 쓰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소통의 방식과는 거리가 먼 취재방식"으로 "당사자들에겐 불쾌한 방법이란 걸 알아야 한다"며 "도어스테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언론보도도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부정확한 외래어 남용하는 언론
한편 '도어스테핑'이라는 표현은 영어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선뜻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국어를 두고 외래어를 남용하는 것은 의사소통의 단절과 정보 소외 현상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기피해야 하죠. <국어기본법> 제15조(국어문화의 확산) 2항은 "신문ㆍ방송ㆍ잡지ㆍ인터넷 등의 대중매체는 국민의 올바른 국어사용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 약식 회견 신문 지면·방송사 저녁종합뉴스 언론사별 표기 |
ⓒ 민주언론시민연합 |
언론은 '도어스테핑' 관련 보도에서는 아주 쉽게 외래어를 사용하거나 남용하는 대상에 대한 비판 의식이 낮았습니다. 이런 사례는 또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10일 국민의힘 지도부를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초청한 자리에서 집무실 주변 시민공원 조성 계획을 소개하며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로 이름을 지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영어로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라고 하면 멋있는데 국립추모공원이라고 하면 멋이 없어서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은 이에 대해 비판 없이 인용하는 데 그쳤습니다. 국민일보 <윤 대통령 "용산공원,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로…동상도 건립">(6월 10일 김성훈 기자)은 이날 국민의힘 지도부와 윤석열 대통령 오찬 회동에서 오간 발언이 나열될 뿐이었고, 동아일보, 조선비즈 등의 관련 보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론은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막중한 역할을 하는 만큼, 외래어를 자제하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외래어를 동원한 정치권 발언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거나 말을 포장하기보다는 권력을 견제·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6월 9일~6월 20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서울경제, 한국경제 지면, 2022년 6월 9~10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7>(평일)/<뉴스센터>(주말), 2022년 6월 9일~6월 20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도어스테핑'·'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로 검색 후 관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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