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증 있다는 뜻"..박지원·서훈 전례없는 고발, 대통령실 속내

박태인 2022. 7. 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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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박지원 당시 국가정보원장(오른쪽)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대화를 하던 모습. 두 전직 국정원장은 6일 국정원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탈북어민 북송사건’에 대해 전직 국정원장(박지원·서훈)을 고발한 초유의 사태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7일 “반인권적, 반인륜적 국가범죄가 있었다면, 중대한 국가범죄라는 점에서 검찰 수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공무원 피격을 두고 국가가 자진월북 프레임을 씌우려 했다거나, 북한 입장을 먼저 고려해 귀순 어민의 인권을 침해했다면”이란 전제를 달았지만, 대통령실에서도 이 사건을 ‘중대한 국가범죄’로 규정하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대통령실은 야당의 '기획사정,정치보복' 의혹 반발을 의식한 듯 “국정원이 대통령에게 어떤 방식으로 보고를 드렸는지 공개하기 어렵다”며 “국정원의 보도자료를 통해 고발 사실을 알았다”고 거리를 두는 모습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틀 연속 지방 일정으로 도어스테핑을 건너뛰며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지난 6월 도어스테핑에서 윤 대통령이 했던 답변을 참고해달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6월 21일 탈북어민 강제북송 관련 질문에 “옛날부터 국민들이 많은 문제제기를 했다.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면 우리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으로 간주하는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극비리에 진행된 전례없는 고발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주장은 "국정원의 고발을 대통령실에서도 극소수 관계자를 제외하곤 몰랐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 6일 박지원·서훈 전 국정원장을 대검에 고발한 뒤 대통령실이 언급한 보도자료를 공개했다. 박 전 원장에겐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관련 보고서 무단 삭제 혐의(국정원법 위반·공용전자기록 손상죄 등)를, 서 전 원장에겐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 합동조사 조기종료 혐의(국정원법 위반·허위공문서 작성) 등을 적용했다. 국정원이 2015년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을 언급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을 고발한 사례가 있지만, 두 명의 국정원장을 동시에 고발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후 문화미래리포트(Munhwa Future Report) 2022'에 참석에 축사를 하려 연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에서 전직 국정원장들이 구속됐을 때도 국정원은 고발보다 낮은 단계인 수사 의뢰를 했고, 이후에는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파생된 별건 수사가 대부분이었다. 여권 관계자는 “특정인을 콕 집어 고발했다는 것은 그만큼 확실한 물증을 확보했다는 뜻이 아니겠냐”고 했다. 반면 박 전 원장은 이날 CBS라디오에서 “삭제를 해도 메인 서버에 남는데 왜 그런 바보짓을 하겠나”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해외에 체류 중인 서 전 원장은 입장을 내지 않았다.


대통령실 “북풍과 완전히 각도가 다른 사건”


대통령실 내부에선 두 전직 국정원장이 고발될 정도로 이 사건이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특히 야당의 ‘신 북풍 몰이’란 지적엔 상당히 불쾌하다는 분위기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북풍과는 완전히 각도가 다르다. 도대체 북쪽 어디에서 바람이 부느냐”며 “반헌법적 범죄에 가깝고, 윤 대통령이 헌법을 언급한 것 역시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군에 피샐된 고(故)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와 유족 측 김기윤 변호사가 지난 6일 검찰에 대통령기록물 압수수색 요청서를 제출하기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선 국정원의 고발이 윤석열 정부 사정 정국의 본격적인 신호탄이라 전망하고 있다. 야당에선 경제위기와 김건희 여사의 문제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전임 정부에 칼날을 들이미는 것이라 반발하고 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은 의원은 이날 BBS 인터뷰에서 “김건희 여사의 비선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 그런 부분을 덮기 위한 것이란 의구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이번 사건에 다소 거리를 두는 것도 이런 비판과 무관하진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여당의 한 재선 의원은 “너무 거칠게 몰아붙이면 중도층이 떨어져 나갈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털 건 털고 가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고 했다. 국정원 파견 경험이 있는 검찰 출신 변호사는 “국정원은 조직을 떠난 이들에겐 그 어떤 곳보다 가혹하다”며 “이번 사건이 조용히 끝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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