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원자력=녹색"..자금길 열린 韓 원전 수출 '파란불'

정종훈 2022. 7. 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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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의 신한울 1·2호기.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원자력 발전을 그린 에너지로 분류하면서 정부가 개정 중인 K-택소노미(한국형 녹색분류체계)도 원전 포함이 확실시된다. 국내·외 택소노미 체계가 바뀌면서 한국 원전 업계의 자금 길이 더 열리게 됐다. 체코·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도 자본 확보가 수월해지면서 대(對)유럽 원전 수출이 탄력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의회는 6일(현지시간) 본회의를 열어 원자력 발전·천연가스를 포함한 '그린 택소노미' 안을 통과시켰다. 11일까지 EU 이사회 27개국 중 20개국 이상이 반대하지 않으면 내년 1월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택소노미(Taxonomy)는 탄소중립이나 친환경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경제활동을 나누는 체계다. 기업과 투자자 등이 활용하는 '녹색금융' 지침서이기 때문에, 자금 조달과 투자 등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U로선 온실가스 발생량이 적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 원전이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그린 에너지'라고 인정해준 것이다.

녹색분류체계 논의를 선도한 유럽이 원전을 친환경으로 판단하면서 한국과 미국·일본 등 택소노미를 검토 중인 다른 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특히 환경부가 진행 중인 K-택소노미 보완 작업에서 원전이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원전 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말 발표한 첫 가이드라인엔 원전은 빠지고, 액화천연가스(LNG)만 포함됐다. 이를 바탕으로 한 시범 사업이 진행 중인데, 윤석열 정부가 K-택소노미 개정을 내세우면서 원전 포함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새로운 수정안이 마련되면 내년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EU 논의를 참고하기로 한 만큼 원전이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될 가능성은 당연히 매우 커졌다"면서 "이달 말~다음 달 초 새로운 초안을 내놓고 의견수렴을 거치게 된다. 최종 발표는 다음 달 이후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해외 모두에서 '파란불'이 들어오면서 원전 업계는 기대를 표하고 있다. 특히 체코·폴란드 등 유럽 수출문이 열렸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 원전을 수출하려면 자기 돈 갖고 가서 짓는 형태다. 녹색 체계 안에 들어야 은행에서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다"라면서 "이번 EU 결정으로 유럽 수출할 때 파이낸싱(자금 조달)이 굉장히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 들어선 원전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나오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유럽 국가들의 원전 산업이 이전보다 활기를 띨 것이란 점도 호재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원전 수출을 추진하고 있는 체코, 폴란드 같은 동유럽 국가들이 원전 정책을 뒷받침할 자금을 확보하기 쉬워지게 된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는 목표를 내건 윤석열 정부에게도 더 큰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체코, 폴란드 등의 자금 상황이 풀리면 원전 사업을 확실히 추진하게 되고, 결국 수출하려는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동유럽에선 루마니아, 헝가리 등도 원전을 세우려고 하는데 택소노미로 이자 비용 등이 줄면 수출 기회가 더 많아질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도 "원전 사업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만큼 동유럽 정부 측 자금 조달에 숨통이 트이는 데 기대를 갖고 있다. 수출하는 쪽과 수주하는 쪽에 모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대감에 7일 한국 증시에서 두산에너빌리티가 전날보다 7.16% 급등하는 등 원전 관련주들이 일제히 상승세를 나타냈다.

영국에 들어선 송전탑.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일각에선 '녹색 원전' 투자 확대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란 지적도 나온다. EU에서 원전 안전 조건으로 내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사고 저항성 핵연료 사용 등을 충족하기 까다롭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동욱 교수는 "두 조건은 원전 발목잡기라기보단 해당 이슈를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개념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EU 차원의 조건도 중요하지만, 수출 대상국 상황에 맞춰 그쪽 정부와 논의해 문제를 풀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K-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되면 EU보다 완화된 안전 조건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원전 안전을 담보할 기준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등은 공론화가 안 돼 있기 때문에 달성하기 쉽지 않다. 국토 이용률이 이미 높고 빈 땅도 적으니 EU와 다른 우리만의 모델로 갈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세종=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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