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시장에도 'R'의 먹구름

최은경 2022. 7. 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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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메모리

“운전하다가 갑자기 어린이 보호구역이나 터널 같은 급감속 구간을 만난 것 같다. 최근 들어 메모리반도체 사업의 속도를 줄이는 게 심상치 않다. 대외적으로 비상경영을 선포하지는 않겠지만, 내부 분위기가 ‘긴장 모드’로 바뀐 것은 맞다.”

6일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의 한 임원이 중앙일보에 전한 말이다. 메모리반도체 시장 세계 1위인 삼성전자 내부에서조차 ‘잿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경기 침체 우려가 반도체 시장까지 덮쳤다. 공급망 대란과 고금리, 물가상승에 이어 수요 감소 및 납품 연기, 재고 급증, 설비 반입 연기 등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게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D램 업계의 풍향계’로 불리는 세계 3위 메모리반도체 기업 미국 마이크론이 최근 실적 전망치를 낮추고, 설비 투자 계획을 바꾼다고 발표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마이크론은 올 3~5월 매출 86억4000만 달러(약 11조3000만원), 순이익 26억3000만 달러(약 3조4000억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와 51% 증가했지만, 6~8월 매출 전망은 전문가 예상치인 91억4000만 달러(약 11조9000억원)에 못 미치는 72억 달러(약 9조4000억원)로 낮춰 잡았다. 또 오는 9월부터는 설비 구매 등 시설 투자액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지난 5일엔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비관적인 예상을 내놨다. 3분기 D램 가격이 2분기 대비 최고 10%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당초 가격 하락률을 3~8%로 예상했지만, 낙폭 예상치가 커졌다. 트렌드포스 측은 “일부 D램 업체들이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격 인하 의사를 보인다”며 업체 간 경쟁이 일어나면 가격이 더 내려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분야별 예상 하락률은 PC용·서버용은 5~10%, 모바일용은 8~13%, 그래픽용 3~8% 등이다.

또 다른 메모리반도체인 낸드플래시 가격 역시 내림세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메모리 카드와 USB용 낸드플래시 범용제품(128Gb 16Gx8 MLC)의 지난달 고정거래 가격은 4.67달러로 5월(4.81달러)보다 3.01% 내렸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4.81달러를 유지하다 지난달 들어 하락한 것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애플·중국 업체 등의 모바일 수요가 급감한 데다가, PC 역시 코로나19 특수가 끝나면서 수요가 줄었다”며 “서버 부문에서도 인텔의 차세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인 사파이어 래피즈 출시가 늦어지면서 하반기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전망도 업계 체감도와 비슷하다. 가트너는 최근 올해 PC 출하량이 지난해 3억4200만대에서 올해 3억1000만대, 태블릿이 1억5600만대에서 1억4200만대, 휴대폰이 15억6700만대에서 14억5600만대로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 예상치가 더 낮다. 전년보다 3% 줄어든 13억5700만대로 내다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반도체 주가 역시 힘을 못 쓰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전날보다 1.4% 하락한 5만6400원에 마감했다. 지난 4일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장중 한때 각각 5만5700원, 8만6300원까지 떨어지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메모리 업계 침체는 예상하면서도 시장이 꽁꽁 얼어붙는 극단적인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로 저가 제품 위주의 수요 침체가 있지만 이미 시장에 알려진 사실이라 수요가 20~30%까지 급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반기 아이폰14 등 프리미엄 제품 출시도 예정돼 있어 반도체 빙하기로 들어가는 극단적 상황이 닥칠 가능성은 작다”고 덧붙였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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