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계화 시대 K수출기업은?.. '안미경중→안미경세' 트렌드 올라타야

박수호 2022. 7. 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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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빠진 제조 강국 코리아

# 하이니켈 양극재 개발 성공으로 전 세계 2차전지 업체들로부터 주문이 쇄도하고 있는 에코프로그룹. 이 회사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시절부터 불거진 미중 무역 분쟁으로 공급망 차질이 우려되자, 4년 전 공장 설립 전략을 바꿨다.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중국, 동남아 진출을 모색해야 했다. 하지만 보다 안전한 공급을 위해 국내 생산 확대와 더불어 미국과 유럽에 생산거점을 마련하는 내용으로 계획을 확정했다. 이후 포항에 약 2조원을 들여 10만평 부지에 대형 공장, 일명 에코프로 포항캠퍼스를 최근 완공했다. 전구체 생산(에코프로머티리얼즈), 리튬 제조(에코프로이노베이션), 배터리 리사이클(에코프로씨엔지) 관련 계열사를 모두 한곳에 모았다. 더불어 현 포항공장 바로 옆에 붙은 땅 약 5만평을 확보, 신규 설비(CAM5N, CAM7)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 해외 공장 건설도 본격 진행 중이다. 올해 초 발표한 ‘2022 에코프로 미래성장 계획’에 따르면 2026년까지 양극재 생산 규모를 국내 23만t, 유럽 14만t, 북미 18만t, 총 55만t으로 늘린다는 청사진이다.

회사 관계자는 “2차전지 부품 강국인 중국 경쟁 업체에 대항하면서 미국, 유럽 중심 2차전지 공급망 전선에 동참한다는 밑그림 아래 미국과 유럽(헝가리)에 공장 부지를 확보해 차근차근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미중 무역 분쟁이 글로벌 공급망 전쟁으로 옮겨붙었다. 사실 그동안도 무역 관련해서는 ‘영원한 같은 편’은 없다는 게 정설이었다. 한일 관계가 경색되면서 일본이 반도체, 소부장 부품 수출 제한 카드를 꺼내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도 ‘노노 재팬’ 운동을 하며 맞불을 놨다. 이처럼 한 치 앞도 가늠하기 힘든 무역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요즘, 이와 관련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전과 같은 세계화, 자유무역 시대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과거 냉전 시대처럼 극단적인 대립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 분야에서 동맹국 간 협력이 강화되고 지역, 이념 중심 블록 경제로 전환되는 추세다. 정부와 기업의 발 빠른 대응책이 필요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서 삼성전자를 방문해 화제다. 최근 윤 대통령은 나토 회의에 참석, ‘프렌드쇼어링’이 현실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승환 기자)
▶정부 대응은

▷韓, 미국 주도 IPEF 창립 멤버

한국은 전통적으로 제조업 수출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수출 비중이 국내총생산의 2배에 달하는 만큼 어떤 스탠스에 서는 게 가장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인 셈이다. 우리 정부 고민이 클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윤석열정부는 출범 후 종전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기조를 ‘안미경세(安美經世·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세계와)’로 바꿨다.

이후 미국 주도 새 경제 협력체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IPEF는 경제통상협력체의 준말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총 13개국이 창립 멤버에 이름을 올렸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229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IPEF는 향후 참여국을 늘려가며 아태 지역의 핵심적 경제 협력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협상 과정에서 창설 멤버로서 주도적인 ‘룰 메이커(Rule Maker)’ 역할을 수행해 공급망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기회를 보다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전문용어로 프렌드쇼어링이라 할 수 있다. 지나 레이몬도(Gina Rai mondo) 미국 상무부 장관이 주창한 용어. 같은 가치관에 기초한 동맹국(Allies) 내에서 제조, 교역을 하는 개념이다. ‘얼라이쇼어링(Allyshoring)’이라고도 한다.

우리 정부는 프렌드쇼어링과 더불어 리쇼어링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인건비 등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는 현상을 오프쇼어링이라 한다. 리쇼어링은 이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미 한국 정부는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명 ‘유턴 기업 장려법’을 운영하고 있다. 유턴 기업(국내 복귀 기업)으로 인정받으면 투자 보조금, 법인세 등 세제 감면, 고용 창출 장려금 등 각종 지원 대상이 된다.

여기에 더해 최근 개정안은 해외 진출 기업이라 할지라도 국내 기존 공장·사업장 내 유휴 공간에 설비를 신규·추가 도입할 때도 유턴 기업과 동일한 대우를 해주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어떤 산업부터 움직이나

▷반도체, 태양광 이미 프렌드쇼어링

“효율성을 위주로 자리 잡은 국제 경제 시스템이 자국 또는 자국이 속한 블록 경제 영역으로 축소되며 많은 비효율성이 야기될 것이다. 애플, 테슬라, 현대차·기아와 같은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는 글로벌 기업은 위기를 기회로 맞이할 수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것이다. 결국 글로벌 기업 지형의 판도가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정석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진단이다.

실제 기업들은 작금의 변화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사활을 건다. 한국CXO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국내 76개 그룹 해외법인 통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의 미국 해외법인 수는 1169곳으로 지난해 885곳 대비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른바 ‘프렌드쇼어링’이 본격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반도체 업계가 대표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해 가장 먼저 찾아간 국내 기업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일 정도로 반도체는 한미 공조의 상징과도 같은 산업이다. 이에 화답하듯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미국에 대대적인 공장 증설,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국내 중견·중소 반도체 부품 업체 역시 최근 미국 현지법인을 개설하며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태양광 산업 분야에서도 ‘프렌드쇼어링’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태양광 부품 소재 중 잉곳과 웨이퍼 시장점유율은 90% 이상을 중국 업체가 차지한다. 이 와중에 미국은 올해 연초 중국 신장 위구르산 태양광 원자재 사용 제품의 미국 수입을 금지시켰다. 사실상 중국 주도 글로벌 태양광 산업 생태계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사건이다. 태양광 부품 소재 산업에서 선두권에 있었다가 중국 공세로 주춤했던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호재일 수 있다.

당장 한화그룹은 태양광 기초 재료인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는 미국의 ‘REC 실리콘’을 인수하고 미국에 1.4GW 규모의 태양광 모듈 공장을 2000억원을 들여 짓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중소기업 솔라파크코리아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솔라파크코리아는 한때 매출 4200억원, 3억불 수출탑을 받았던 중견기업. 하지만 중국 공세로 지난해 매출액 600억원대로 사세가 위축돼 있었다. 솔라파크코리아는 최근 미국의 공급망 재편 바람을 타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전량 미국 수출을 전제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잉곳, 웨이퍼 공장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청사진을 그린다. 관계사 ‘글로벌웨이퍼’를 만들고 썬앤월 등 연합군도 꾸렸다. 이를 바탕으로 90% 이상을 수력 발전에서 조달해 안정적인 전기공급이 가능하고 노동력이 싸면서 중국과는 거리를 두는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에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박현우 글로벌웨이퍼 회장은 “탈세계화 바람을 타고 선제적으로 움직이면 비(非)중국 태양광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봐서 과감하게 투자에 나섰다. 타지키스탄 공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했고 미국 납품 수요 약 5억달러 규모(약 6000억원)에 맞춰 빠른 시일 내 공장을 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에코프로그룹은 전략적으로 국내 공장 확장, 미국·유럽 진출을 꾀하고 있다. 사진은 에코프로 포항공장. (에코프로그룹 제공)
▶리쇼어링도 기지개

▷효성, 울산에 아라미드 공장 증설

‘리쇼어링’도 본격 시작되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기업이 효성그룹이다.

효성은 베트남에 지을 예정이었던 아라미드 생산라인 건설 계획을 철회했다. 대신 울산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베트남 사업은 매출만 1조원을 넘기며 승승장구해왔지만 중장기 관점에서 보면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공급망 차질 우려가 없는 한국에 공장을 두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 효성 경영진 판단이다. 아라미드는 철보다 5배 이상 강한 소재로 방탄복 등에 활용되는 첨단 소재다. 종전 울산 아라미드 공장 생산능력은 1200t, 추가 증설 규모는 2500t에 달한다.

리쇼어링을 고려하는 기업도 확연히 증가세다. 올해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진행한 매출 500대 기업 대상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27.8%가 ‘리쇼어링을 검토 중’이라 답했다. ‘향후 검토할 수 있다’고 대답한 기업도 29.2%다. 2020년 5월 설문에서 ‘리쇼어링 검토 중’이라는 기업은 3%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최근 보고서(해외 직접 투자 경영 분석)에 따르면 해외 진출 제조 기업이 국내에 복귀할 경우 8만6000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탈중국’ 현상 뚜렷

▷지난해만 中 진출 현지법인 34개 줄어

한편 사드 사태, 미중 무역 분쟁 등으로 국내 기업의 ‘탈중국’ 현상은 뚜렷하다. 코로나19 심화 당시 상하이 봉쇄로 현지 진출 제조 업체 타격이 극심했던 점도 무시할 수 없다. CXO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올해 중국 소재 해외법인(주요 76개 그룹)은 840개로 지난해 874개 대비 34개가 줄었다. 홍콩법인 역시 전년 대비 9개가 적은 154개로 집계됐다.

김기찬 교수는 “미국과 비교적 가까운 동아시아 국가 등을 제2의 전초기지로 두고 제조 공장을 기획하는 국내 기업이 많아질 것이다. 한국과 가깝고 원활한 물류 수송이 가능한 동남아 지역으로 공장을 옮기는 이른바 니어쇼어링 현상도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다만 국익 차원에서 지나치게 탈세계화 현상에 동조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IPEF의 주요 내용과 우리의 역할’이라는 보고서에는 “역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은 핵심적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새로운 기회일 수 있으나 반도체·배터리 등의 생산기지 이전, 중간재 수급처 선택 등의 문제에서 중국 의존도를 기존보다 낮추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생산비용 상승과 추가적 거래비용 발생 등에 대한 대응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박수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6호 (2022.07.06~2022.07.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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