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에 스며든 범죄③] "트렌드도 좋지만, 잔혹성·흥미 치중한 전개 지양해야"
경각심을 깨우고 사회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범죄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부작용도 잇따른다. 처음 의도와 달리 방송가에선 ‘누가 더 잔혹한 범죄를 다루는가’ ‘누가 더 자극적인 타이틀을 내세웠는가’를 경쟁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때문에 범죄 관련 프로그램에 예능적인 요소를 첨가한 것을 탐탁지 않게 보는 시청자도 있다.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흥미 위주로 소비해버릴 수 있다는 지적에서다. 일부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엔 패널들의 태도가 진지하지 못하다는 글이 종종 올라오기도 한다.
범죄 예능이 의미와 가치를 지니려면, 다루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그에 따라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확립돼야 한다. 범죄 자체의 잔혹성에 흥미에 주목하기 보다는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 예방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지상파 예능 작가는 “우후죽순 늘어나는 범죄 심리 예능은 실제 발생한 사건을 다루는 만큼 자극만 좇거나, 단순히 사건을 재구성하고 전달하는 데만 그쳐서는 안 된다”면서 “사건과 관련해 아픈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 만큼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전개하는 것은 2차 가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대표적인 범죄 예능인 ‘꼬꼬무’의 경우 1980년대 벌어진 서진룸살롱 사건과 사형수 고금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서진룸살롱 사건은 1986년 8월 14일 서울 강남에서 조폭들의 칼부림이 벌어지면서 4명이 살해된 잔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가해자 고금석은 사형수가 됐다.
그런데 방송에선 고금석이 교도소 생활을 하던 중 만난 스님의 이야기와, 그가 죽기 직전 남긴 편지 등을 공개하면서 ‘극악무도한 살인사건의 가해자였지만, 아이들에겐 키다리 아저씨였다’고 소개했다. 고금석의 편지를 읽던 장성규 등 출연진도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청자들은 극악무도한 살인자를 키다리 아저씨로 미화했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범죄 사건을 다룰 때의 방식도 중요하다. 자극적이고 공포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진짜 알아야 할 내용들로 구성해야 한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현직 형사들은 범죄 방식이 구체적으로 노출되면서, 정작 예방과 경각심을 주는 덴 흐지부지한 방송 형식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트렌드에 발을 맞추되, 명확한 의도와 파생되는 여러 가지 효과를 진지하게 살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파주경찰서 형사과에서 근무 중인 서영진 경위는 “민감하고 모방성이 강한 사건의 경우 범죄 방식을 노출하는데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프로그램에서 단순히 자극적인 범죄 과정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이 범죄를 통해 구체적인 처벌 수위를 다루면 더 좋을 것”이라며 “많은 프로그램들이 자극적인 면만 부각되고 뒷마무리는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서 경위는 범죄 방식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면서 파생되는 부작용을 실제로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어떤 아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공갈이나 협박, 폭행을 해도 미성년자는 처벌을 받지 않냐’고 말하는 경우를 봤다. TV에서 보고 학습한 내용이었다. 조사 과정에서 ‘TV를 보고 모방을 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모방 범죄의 우려가 있는 사건들을 다루면서는 더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프로그램에 나오는 수사방식, 사건처리 방식이 정답이 아닌데 간혹 경찰관들의 사건처리 방식에 불만을 품고 ‘TV에서는 이렇게 처리 안하던데 왜 이러냐’고 말하는 분들도 생각보다 많다”면서 “사건처리는 형사들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사건의 경중에 따라 다르다. 정답은 없다.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방식들이 일률적으로 적용된다고 착각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이 같은 부분도 세심하게 신경 썼으면 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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