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마저 덮친 고물가.. 밤 농사꾼들의 심각한 대화

오창경 2022. 7. 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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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 ④] 인건비, 기름값, 비룟값 다 올랐다.. 한숨만 나오는 농촌 상황

[오창경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국제 공급망이 타격을 받자 경유 가격과 비룟값 인상 등 인플레이션의 압력이 농민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2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한 농민이 주름진 손으로 장갑을 쥔 채 모내기를 지켜보는 모습.
ⓒ 연합뉴스
 
빚 쌓이는데 인건비 오르고... "큰일 났다니께"

"인건비는 오르고 그나마 외국인 일꾼들도 구하기 힘드니께 올해부터 밤농사를 줄이등가 없애버려야 할랑가벼."

밤농사를 짓는 동네 주민분의 이야기다. 알싸한 밤꽃 향내가 은은하게 시골 마을을 감싸고 눈길을 돌리는 곳마다 흐드러지게 핀 밤꽃에 기분까지 달달해지는 때인데, 올해는 밤 농가들이 나누는 대화가 심각했다. 낭만적인 밤꽃 향기와 달리, 무거운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최근, 밤꽃이 지고 본격적으로 밤 열매가 성장하는 시기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인건비 상승과 농자재 값 인상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필자가 사는 부여 지역의 경우, 대부분 산을 개간해 밤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수확할 때 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밤나무 아래 수확망을 깔거나 밤송이 수집기 등의 기계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긴 하나, 대중화는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이다. 

밤 생산비가 오르면 가격이 오르고, 소비자들은 작년보다 비싼 가격에 구매를 망설인다. 밤이 덜 팔리면 밤 농가들의 자금 상황이 어려워지고, 소비가 둔화되어 부여의 농촌 마을도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된다.

"밤농사를 접으면 뭐 해 먹고 산디야? 쌀값은 자꾸 떨어져서 벼농사로는 농기계 외상값 갚기도 벅찬데 큰일 났다니께."

비단 밤농사만 문제가 아니다. 노동 집약적인 일이 많은 농촌에서는 일꾼을 '모실 때' 고물가를 실감한다. 80% 이상 기계화가 된 벼농사의 경우 인건비는 적게 들지만, 농기계 감가상각비와 연료비, 농자재 구입 비용이 든다. 농민들이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농가들은 초기 투자 비용인 농지와 농기계 구입 등으로 빚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시설 재배 농가들은 더 심각하다. 일찌감치 유류비 절감을 위해 비닐하우스 안에 부직포를 삼중으로 치는 등의 장치를 마련한 곳도 있다.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해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서 들이는 비용은 끝이 없다. 거기에 기름값이 오르면 농산물 생산에 드는 모든 비용도 함께 오른다. 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쌀밥 이외에 먹을 것이 많아져 쌀 소비량은 해마다 감소하고 쌀값은 하락하고 있다. 그런데 고물가까지 겹치니, 농민들 입에선 한숨이 나올 수밖에. 

"상추 더 달라 하기도 눈치 보이고..."
 
 농축산물 등 재료비 인상으로 식비지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 한 식당에 가격 인상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날 통계청 데이터 마이크로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4인 가족 식비는 월평균 106만6천902원으로 작년(97만2천286원)보다 9.7% 증가했으며 이 중 외식비는 1년 전보다 17% 올랐다.
ⓒ 연합뉴스
 
최근, SNS에 맛집과 음식 사진을 자주 올리는 지인의 활동이 뜸했다. 어쩌다 올리는 사진도 이전처럼 화려하지 않다. 음식의 종류도, 질도 떨어지는 것 같아서 댓글을 달았다. "요즘 올리는 음식 사진들이 이전과 달리 넉넉하고 풍성해보이지 않네요, 그 이유가 뭘까요?" 그러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가격이지요. 고기를 먹을 때 상추를 더 달라고 하기에도 눈치가 보이고. 불판에서 지글지글하는 그림은 역시 삼겹이 최곤데..."

그는 요즘 식당에서 생삼겹살을 먹기가 부담스러워서 족발이나 부속 고기를 먹는다고 했다. 포만감은 비슷한데,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체품을 찾는다는 거였다. 고기를 먹으며 친목을 다지는 비용이 전과 같지 않아서 모임의 횟수를 줄이고 있다도 했다. 뿐만 아니라 기름값 때문에 맛집을 찾아 먼곳에 다녀오기도 힘들어서, '가성비 맛집'만 올리고 있단다. 고공 행진하는 물가가 지인들의 SNS 업로드 풍경까지 바꿔놓았다. 

시골마을 식당가에선 삼겹살 대신 김치찌개만 먹고 가는 사람들만 늘었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전염병의 시간이 지나면 모임과 회식 손님이 늘길 기대했는데, 고물가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겪어냈건만, 산 너머 산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요즈음이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단련이 되어있는 시골 사람들은 물가가 오르면 안 쓰고 안 먹는 모드로 전환하고 적응해나간다. 요즘 우리 동네에선 중고거래가 인기를 끌고 있다. 내 지인들은 주로 야생화를 심고 가꾸는 취미 생활을 즐기느라 비용을 지출하고 중고 거래 앱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 중고거래마저도 물건을 직접 사러 가는 시간, 비용, 수고 등을 생각하면 결코 저렴하게 느껴지지 않는 요즘이다. 

시골 마을에서 산과 들만 바라보고 살다가 시내에 나가 커피 한 잔을 샀는데, 그 컵이 작은 컵으로 바뀌어버렸을 때부터 야금야금 오르는 물가를 체감했다. 풍부하지는 않아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던 시골에서도 고물가의 역습은 피할 수가 없다. 코로나가 잠잠해지자 찾아온 이 고난은, 또 언제쯤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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