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globalization..현실이 된 탈세계화
최근 개봉한 ‘탑건2’는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낸 히트작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두고 이런저런 해석이 많다. 톰 크루즈가 입은 항공 점퍼 뒤에 타이완의 ‘청천백일만지홍기’가 그려져 있다. 영화에서 냉전 시대 태평양에서 복무했던 아버지가 남긴 유품을 입는다는 설정이다. 중국과 타이완의 민감한 관계를 고려하면 이 같은 장면을 넣기가 쉽지 않다. 바꿔 말해, 미국 할리우드가 세계 2위 영화 시장인 중국을 의식하지 않고 ‘내 갈 길 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공교롭게 중국에서는 ‘탑건’ 속편이 아직 개봉되지 않았다.
탑건2의 사례는 지난 30년간의 국제 정세를 지배했던 ‘세계화(Globali zation)’ 흐름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세계화가 약해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끝났다’는 말까지 나온다.
세계화가 무너져가는 장면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미국 맥도날드는 세계화의 상징으로 불렸다. 전 세계 120개국에 4만개의 점포를 열었다. 전 세계 여행객은 타국에서 맥도날드를 발견하며 위안을 얻기도 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86년 맥도날드 햄버거 가격으로 각국 통화 구매력이나 환율 수준을 측정하는 ‘맥도날드 빅맥지수’를 만들었다. 맥도날드가 전 세계 사방팔방 퍼져 있기에 가능한 얘기였다. 심지어 맥도날드가 입점해 있는 나라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이론까지 등장했다. 북한에 ‘맥도날드 평양점’을 내야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주장은 이런 논리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빅맥지수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맥도날드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1990년 모스크바 시내 푸시킨 광장에 문을 열었던 맥도날드가 3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맥도날드와 함께 또 다른 세계화의 상징인 ‘스타벅스’와 ‘코카콜라’ ‘나이키’도 문을 닫았다.
▷브릭스·나토 회의로 ‘따로따로’
세계 경제 지도자들이 모여 지난 5월 열린 다보스포럼은 ‘탈세계화’에 대한 관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보스포럼에서는 ‘냉전 2.0’ ‘경제적 철의 장막’ ‘블록화’ 등 탈세계화 추세를 보여주는 용어들이 등장했다.
탈세계화 흐름은 대체로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받아들여진다. 국가 간 신뢰를 토대로 형성됐던 탄탄한 글로벌 공급망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어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싸고 좋은 제품을 살 기회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 세계 초인플레이션을 초래하며 글로벌 경제를 흔들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 경제가 아마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시험대에 직면했다고 한 것도 이런 현실에 근간을 둔다. IMF는 2019년 무역 정책 불확실성만으로도 세계 GDP가 거의 1% 감소했는데, 이후 경제 단절로 막대한 글로벌 경제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 우려한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코로나19 영향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경제 회복에 부담을 주고, 식량과 에너지 가격 급등은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금융 시장의 급격한 변동성은 물론 기후변화에 따른 지속적인 위협과 함께 세계가 ‘잠재적인 재난 합류’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또 다른 결과로, 무역·기술표준·보안에 대한 긴장이 수년 동안 증가해 글로벌 경제 체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제조업 공급망에 금융도 블록화
▷무형자산 기반 경제는 세계화 여전
기업에서 온쇼어링(Onshoring), 리쇼어링(Reshoring), 니어쇼어링(Nearshor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도 탈세계화의 한 조짐이다. 온쇼어링은 자국에 생산시설을, 리쇼어링은 생산비와 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긴 기업들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니어쇼어링은 본국으로 이전하는 리쇼어링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 통제 가능한 인접 국가로 아웃소싱하는 개념이다. 데이터 분석 업체 센티에오에 따르면, 최근 기업 실적 발표 등에서 니어쇼어링, 온쇼어링, 리쇼어링에 대한 언급은 지난 2005년 이후 최고 수준에 달했다.
탈세계화는 자원 무기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한국 역시 자유롭지 않았다. 2019년 일본이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무역 보복의 일환으로 3대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단행한 것이 그 예다. 중국도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한한령을 암암리에 시행했다.
이 같은 지역 블록화 현상은 제조업을 넘어 금융까지 확산하는 추세다. 한 국내 주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는 “세계화 추세에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던 국경이 유의미해졌을 뿐 아니라 더 높아지는 추세”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 자본이 해외 투자에 나서는 등 ‘머니 무브’에 있어서도 제약을 느낀다는 점을 표현한 얘기다.
향후 국제 정세는 탈세계화를 넘어 ‘신냉전’으로 흘러갈 수 있다. 최근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13개 개도국을 초청하며 세몰이에 나섰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리끼리’ 경제권을 설파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서방의 대러 제재에 반대하며 개도국에 대한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과 유럽도 ‘나토 정상회의’에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을 초청하며 뚜렷한 대립 양상을 보였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6호 (2022.07.06~2022.07.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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