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업→개인으로 세계화 진화했지만..보호무역·자원 무기화에 탈세계화로

김경민 2022. 7. 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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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본 세계화와 탈세계화

글로벌 경제를 지탱해온 핵심 패러다임 ‘탈세계화’는 어떤 배경에서 등장했을까. 탈세계화 흐름을 살펴보기에 앞서 세계화 개념, 역사부터 짚어보자.

▶갈수록 진화하는 세계화

▷냉전 시대 종언 이후 기업 해외 진출 속도

세계화는 말 그대로 상품, 서비스, 기술, 투자, 정보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 경제, 문화 간 상호 의존성이 높아지는 현상이다. 21세기 초 ‘골디락스’ 시대의 기반이 된 패러다임으로 시장 개방, 자유무역, 글로벌 분업을 통해 세계 경제에 풍요로운 성장을 가져다줬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세계화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1914년 이전의 ‘세계화 1.0’부터 시작됐다. 증기기관과 운송수단 발달로 제국주의 열강들이 앞다퉈 식민지로 진출하는 형태로 세계화를 진전시켰다. 자유방임 경제 체제와 제국주의 아래 식민지에서 벌어진 독재정치는 세계에 미친 파장이 컸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대공황, 공산주의와 파시즘 등장으로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으며 막을 내렸다.

‘세계화 2.0’은 제국주의와 자유방임 자본주의가 주축인 ‘세계화 1.0’의 대안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주도의 세계화 즉, 상품 무역 중심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책을 통해 세계화를 번영과 부, 첨단 기술을 상징하는 ‘렉서스’, 고유한 전통문화를 의미하는 ‘올리브나무’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봤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1991년 소련의 해체를 계기로 글로벌 경제는 ‘세계화 3.0’이라는 새 타이틀을 맞게 됐다. 세계화 3.0은 냉전 시대 종언을 통해 등장한 만큼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장벽 없이 연결되는 진정한 세계화 개념이다.

세계화 3.0의 핵심은 기업 공장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다. 선진국 첨단 기술과 자본이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력과 만나 새로운 제조업 생태계를 창출했다. 글로벌 공급망에 의한 분업, 협업으로 전 세계 소비자들이 더 싸고 좋은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를 두고 ‘초세계화’ ‘글로벌 가치사슬 혁명’ ‘오프쇼어링(해외 생산기지 이전)’으로 부르기도 한다.

1990년대 들어 인터넷 등 정보통신(IT)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국제기구까지 설립되면서 세계화는 더욱 속도를 냈다. 1947년 출범한 ‘관세·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통해 세계 각국은 무역장벽을 없애려 힘썼고, 1995년 등장한 WTO 체제에서 세계 무역 질서가 하나의 규범 아래 움직이면서 세계 경제는 하나로 똘똘 뭉쳐갔다.

세계화 물결 덕분에 기업들은 저마다 자국을 벗어나 생산 효율성을 높일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어느 국가든 관계없이 인건비나 부대비용이 저렴하면서 효율적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곳에 공장을 지었다.

특히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낸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한 것이 세계화의 최절정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은 이후 미국과 맞먹는 ‘G2’ 국가로 성장하면서 전 세계 이목을 끌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기업들이 앞다퉈 중국으로 달려가 공장을 짓고 제품 대량 생산에 나섰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을 통해 세계화를 명확히 구분했다. 세계화 1.0은 대항해 시대에 기반한 국가의 세계화고, 세계화 2.0은 해외 진출이 활발해진 기업의 세계화, 그리고 세계화 3.0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개인의 세계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화가 국가에서 기업, 개인으로 점차 촘촘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화 4.0 시대 도래

▷디지털 기술 발달로 지리적 한계 극복

세계화 3.0에 이어 이제는 서비스업 중심의 세계화 4.0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세계화 4.0은 첨단 통신 기술, 디지털 기술 발달로 서비스업의 지리적 한계가 상당 부분 극복되는 단계를 말한다. 즉 신흥국의 서비스 산업이 원격으로 선진국에서 활용되는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일례로 세계 어디에서든 재택근무가 가능한 ‘원격이민(Telemigration)’ 개념이 도입됐다. 회사에 출근할 필요 없이 미국, 유럽에서 생활하면서도 얼마든지 국내 기업 직원으로 일할 수 있다. 업워크, 태스크래빗, 파이버 같은 글로벌 프리랜싱(Freelancing) 일자리 연결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임금 기반 차익 거래가 가능해졌다.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세상이 재편되는 ‘사람 중심의 세계화’ 시대가 비로소 시작됐다는 의미다.

세계화가 속도를 내면서 국경 없는 가상 국가 즉 ‘비트네이션(Bit Nation)’ 개념까지 등장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이름, 이메일 주소 등의 정보만 제공하면 누구나 비트네이션 국민으로 행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차익 거래 기회는 서비스 부문 노동 시장과 임금이다. 국가별로 서비스업 임금 격차가 최대 10배에 달하는데 지금까지는 기술적인 한계로 격차를 조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 발달로 타국 재택근무가 가능해 자유근로계약 플랫폼으로 새로운 임금 기반 차익 거래를 할 수 있게 됐다. 전 세계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세계화 도전과 기회에 노출된 것이다.”

리처드 발드윈 스위스 제네바국제경제대학원 교수가 다보스포럼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영국 국민이 ‘브렉시트(EU 탈퇴)’를 결정하는 등 전 세계 곳곳에 탈세계화 바람이 불고 있다(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주요 국가들이 ‘자원의 무기화’에 나서면서 논란이 뜨겁다(아래). (EPA, AP)

▶‘탈세계화’ 속도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양극화 심화

하지만 세계화의 이면에는 암초가 도사리고 있었다.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누리며 세계화의 과실을 따먹는 듯싶었지만 부작용도 적잖았다. 세계화에 적응한 일부 계층만 부를 축적하고, 저임금 근로 계층은 오히려 일자리를 빼앗기면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공장이 신흥국으로 빠져나가면서 선진국 저임금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빈곤층이 늘어나는 등 ‘불평등’이 커져갔다. 국가 개입 대신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가 세계화와 맞물려 득세하면서 영국 국민들은 ‘브렉시트(EU 탈퇴)’라는 초강수를 두는 등 세계 곳곳에 탈세계화 바람이 불어닥쳤다.

특히 ‘뉴칼라’ 계급이 새로 등장한 것이 탈세계화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블루칼라(육체 노동자), 화이트칼라(사무직 노동자)도 아닌 뉴칼라는 학력과 상관없이 창의적이고 연구개발(R&D) 능력이 뛰어난 새로운 노동 계급을 말한다. 뉴칼라가 세계화 시대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프레카리아트’ 계층이 쏟아져나오는 부작용도 낳았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프레카리오’와 노동자 계급을 의미하는 ‘프로레타리아트’를 합성한 말이다. 저임금, 저숙련, 비정규직, 파견직, 실업자 등 평생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처한 노동자를 지칭한 신조어다.

영국 ‘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앞세운 ‘미국우선주의’를 통해 세계화는 점차 쇠퇴해갔다. 뉴욕타임스는 “브렉시트가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세계 질서를 뒤흔들었다”고 분석했다. 그 중심에 세계화에 대한 반감이 자리 잡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화에 회의적인 인식은 계속 심화됐다.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어가며 피해를 본 미국 ‘러스트벨트’는 전통적 지지 기반인 민주당을 버리고 공화당 트럼프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이를 등에 업은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아메리칸 퍼스트’ 즉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무역장벽을 높였다.

미국, 중국 등 ‘G2’ 주도로 글로벌 무역전쟁이 확산되는 가운데 2020년 갑작스레 등장한 코로나19 팬데믹은 탈세계화에 더욱 불을 지폈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세계화의 핵심인 글로벌 공급망에 치명적인 균열이 생기면서 저마다 각자도생 해법을 찾는 데 급급했다.

팬데믹이 끝나나 싶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세계화는 더 큰 위기를 맞았다. 전쟁 여파로 각국은 식량과 자원을 무기화하는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에 나섰다. 전 세계 밀 수출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파종을 못하면서 헝가리, 세르비아 등 인근 생산국들은 ‘식량 안보’를 이유로 밀, 옥수수 등 농작물들이 해외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우크라이나의 흑해산 해바라기씨유 수출이 막히면서는 글로벌 식용유 대란이 발발하기도 했다. 러시아도 가만있지 않았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경제 제재에 나서자 미국, 유럽에 원유를 공급하는 카스피 송유관을 차단하는 등 ‘천연가스 무기화’에 돌입하면서 유럽 내 가스, 전기 가격이 치솟았다.

티격태격하는 미국-중국과 탈세계화 흐름 속 국제 통상 질서는 ‘합종연횡’이 한창이다. 중국 주도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이 올해 발효됐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이 출범을 앞뒀다. 이를 통해 미국 주도의 WTO 힘이 빠지고 중국 입김이 거세지자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로 반격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자국우선주의가 심화되면 체력이 약한 신흥국들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 분열된 사회는 왜 위험한가’라는 저서에서 “세계화는 미국, 유럽을 비롯한 많은 국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세계화로 이득을 보는 승자는 상위 계층이고, 손해를 보는 패자는 대부분 하위 계층이다. 세계화가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관리되지 않으면 보호무역주의 혹은 이웃 나라 궁핍화 같은 부작용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고 분석한다.

[김경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6호 (2022.07.06~2022.07.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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