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미 대사 “中, 러시아 거짓말 그만 퍼뜨려라”…칭화대 설전

신경진 2022. 7. 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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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칭화대 포럼에서 안보리 4개국 대사 설전
러 대사 “모친도 우크라人…누구보다 고통받아”
영 대사 “中, 국제질서 바꾸려면 기존체제 헌신을”
프 대사 “러의 우크라 국경 침범만 유일하게 확실”
中교수 “국내 정치 압력에도 지도자 지혜 발휘를”
4일 중국 칭화대가 개최한 제10회 국제평화포럼 ‘유엔과 국제질서’에 참석한 4개국 대사와 중국 사회자가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드레이 데니소프 주중 러시아 대사, 자칭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 니컬러스 번스 주중 미국 대사, 캐롤라인 윌슨 주중 영국 대사, 로랑 빌리 주중 프랑스 대사. [로이터=연합뉴스]

4일 중국 칭화(淸華)대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한 니컬러스 번스 주중 미국 대사가 중국 외교부를 향해 “러시아의 ‘선전’을 반복하지 말라”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을 둘러싼 공방에서 나온 말로 주재국 대사가 이 같은 직설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번스 대사의 발언은 이날 칭화대와 중국인민외교학회가 공동 주최한 제10회 세계 평화포럼의 ‘유엔과 국제질서’ 세션에서 나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중국이 이 국제 위기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에 존재하지 않는 미국의 바이오 무기 실험실에 대한 거짓말을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때문에 터졌다는 러시아 '거짓 선전'을 그대로 옮겨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 세션에서는 중국 사회자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 4개국 주중 대사가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고 중국 차이신(財新)이 전했다. 마치 거부권을 가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회의를 방불케 했다.

설전의 포문은 지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나토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한 번스 대사가 열었다. 그는 “러시아가 아무 ‘도발’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무력으로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많은 민간인 사상을 초래했다”며 “또 많은 국가의 농산물 유통을 막아 식량 위기를 가져왔다”고 비난했다. 그는 “현재 국제질서가 직면한 최대 위협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이라며 “이 전쟁을 즉시 끝내는 것이 유엔 총회에서 군사행동에 반대표를 행사한 141개 국가 모두의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관계에 대해 번스 대사는 “양국은 현재 무역·첨단기술·안보·가치관 등 분야에서 매우 복잡한 경쟁 관계”라고 정의한 뒤 “경쟁에도 무의미한 충돌은 가능한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4일 중국 칭화대가 개최한 국제평화포럼에 참석한 니컬러스 번스(오른쪽) 주중 미국 대사가 자칭궈(오른쪽 두번째)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대사는 지도자 지지율로 자국의 우위를 주장했다. 안드레이 데니소프 주중 러시아 대사는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국내 지지율은 91%인데 반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은 36%에 불과하다”면서 “러시아 국민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잘 알고 있다”고 받아쳤다.

데니소프 대사 역시 전쟁의 아픔을 호소했다.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자신은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며 “어머니 역시 우크라이나인으로 어떤 누구보다도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번스 대사의 발언을 겨냥해서는 “러시아가 ‘도발’당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영국 대사 “상임이사국이 주권국 침범 안 돼”


캐롤라인 윌슨 영국 대사는 미국을 지원 사격했다. 그는 “만일 안보리 상임이사국 모두가 다른 주권국가를 침입한다면 어떻게 국제질서가 존재하겠냐”며 러시아의 침공을 강하게 비난했다. 윌슨 대사는 국제질서 개혁을 요구하는 중국을 향해서는 고전 『맹자』의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바르게 수양하고, 뜻을 얻으면 천하 만민을 구제한다(窮則獨善其身 達則兼濟天下·궁즉독선기신달즉겸제천하)”를 인용하며 “중국이 국제 체제를 바꾸고 싶다면 기존 체제에 진정으로 헌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일갈했다.

로랑 빌리 주중 프랑스 대사는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냉전 이후의 국제 질서를 위반한 것이 불확실성 가운데 유일하게 확실한 사실”이라며 미국과 영국을 거들었다.

중국은 외교관 대신 학자가 나섰다. 국정 자문기구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인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학자답게 완곡한 표현으로 미국을 비난했다. 자 원장은 “권력의 정점에 오른 미국이 세계질서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타국에 강요하며, 진정한 자유로운 국제질서라고 주장한다”고 했다. 그는 “미·중 양국은 상대의 시각으로 생각하고, 지도자가 국내 정치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지혜와 비전,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며 갈등 해소를 위한 해법을 제시했다.

한편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번스 대사의 발언과 관련해 “가짜 정보를 퍼뜨리는 쪽은 미국이지 중국이 아니다”며 반박했다. 현직 대사와 주재국 외교부가 같은 날 공개 비난을 주고받은 것은 외교적으로 이례적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지적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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