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줄을 쓰는 순간, 아이들은 시인이 됐다
[양윤미 기자]
초등학생들과 함께 울산의 예술 창작소 갤러리에서 디카시 수업을 한 지 두 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남은 3회의 수업 동안 학생들의 작품을 퇴고하여 액자로 꾸밀 예정인데 조금 빠듯할 것 같기도 하다. 8월에는 2주간 자신들의 작품이 갤러리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하니 뿌듯한 듯 부끄러운 듯 아이들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문학 수업이라는 게 마냥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은 아니다. 세상과 사물, 사람이나 대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무언가'를 표현하려면 그것을 알아채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했다. 그들 중에는 마음 들여다보기를 어려워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사실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영감'의 몸을 잡든, 머리카락을 잡든, 이미 다 지나가고만 '영감'의 뒷모습만 쳐다보든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느낀 '무언가'로 서툰 첫 줄을 적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미 준비된 예술가들
세상을 바라보는 학생들 개개인의 '시선'이 어떤 모양일지 궁금했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했다. 정답을 찾는 시간이 아니니까, 자유롭게 얼마든지 적어보도록 했다. 하지만 수업을 시작한 날로부터 하나둘씩 결석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인원이 저조한 탓에 의욕이 저하되었지만, 함께하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은 뒤로 하고, 매주 꾸준히 성실하게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더 집중했다. 예술 창작소가 조금 외진 곳에 있어서, 꼬박꼬박 강의실로 태워다주시는 부모님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연습용으로 디카시를 여러 번 적어본 날이 있었다. 내가 찍어온 일상 속 사진들로 자유롭게 아이스 브레이킹도 하고, 판타지와 호러를 오가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해보면서 아이들의 순수한 창의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날 나는 오골계알 사진도 보여주었는데, 닭장에서 닭이 방금 낳은 알을 만져보았던 이야기를 하며 따스했던 알의 온기에 대해 말해주었다.
▲ 디카시 해 |
ⓒ 황보제성 |
즐거웠던 추억이 해빵이라는 밝은 기억으로 남았노라고 고백하는 작품을 통해 내 마음도 덩달아 밝아지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는 고학년 친구의 이야기가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디카시 돌은 제빵사 |
ⓒ 주시현 |
돌멩이 사진으로 "돌은 제빵사"라는 작품을 뚝딱 완성하더니 배시시 웃는 학생의 상상력이 재미있었다. 찬찬히 읽다 보니 왠지 모르게 어디선가 빵 굽는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강물이 돌멩이에 자리를 내어주었다는 표현에서 다정함도 느껴졌다. 서로 다른 모습과 성격을 가진 우리들이 서로에게 베푸는 작은 배려들이 바로 오늘의 선물이 되는 법이다.
예술가는 마음속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한다. 그러니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예술의 시작이다. 마음을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첫 시작을 함께 하며 수많은 첫 줄을 적어낸 학생들이 대견스럽고 감사하다.
갓 태어난 어린 예술가들의 따뜻한 시선이 아름답다. 앞으로도 계속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하며 예술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길 응원한다. 스스로의 내면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삶, 그런 인생은 얼마나 예술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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