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연구팀 표절 논란에도 '깜깜이'?..대학, '연구부정' 공개 기준 마련해야
“회의 오늘 열려요?” “어디서 하죠?”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연진위)가 서울대 AI연구팀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본조사에 착수한 지난달 27일, 기자들은 회의 현장을 찾기 위해 허둥댔지만 허사였다. 이날 연진위가 첫 회의를 열고 조사를 개시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지만, 위원 명단과 회의 장소, 조사 절차 모두를 비공개한 탓이다.
‘깜깜이’ 조사는 서울대 내부 규정에 따른 것이다. 서울대 연진위 규정은 회의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제보·조사·심의·의결 및 건의조치 등 관련된 일체의 사항’을 비밀유지 의무의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연진위 위원과 제보자, 피조사자 역시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의 누설이 금지된다. “조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부당한 비난이나 무고성 제보 등으로부터 피조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서울대 측의 설명이다.
AI연구팀 논문 표절 의혹, 조사 결과 공개될까
하지만 서울대는 AI연구팀 논문 표절 의혹 사건의 조사 결과를 예외적으로 공개하는 걸 검토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장을 맡았던 윤성로 서울대 공대 교수가 연루된 데다 이종호 신임 과학기술부 장관의 아들이 논문에 공저자로 참여했다는 이유 등으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음을 고려해 ‘예외’ 인정을 고민 중이라는 것이다. 예외 인정의 근거는 ‘공개의 정당한 필요성이 있는 경우’ 의결을 통해 조사 내용의 공개를 결정할 수 있다는 연진위 규정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산발적 취재가 너무 많이 이뤄지고 있고, SNS를 통해 근거 없는 주장이 떠돌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이 있다”며 “공식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연진위는 ‘황우석 사태’를 계기로 2006년 발족했지만, 서울대는 그간 연진위에 접수된 사건이 총 몇 건인지, 어떤 수위의 징계가 몇 건이나 내려졌는지조차도 공개하지 않아 왔다. 정보공개 청구나 국회의 자료요구에도 비공개의 불가피성을 들어 맞서왔다. 실제로 올해 초 기자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에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 주요 대학에 연구윤리위원회 개최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각 대학의 연구환경에 관한 경영 또는 내부 관리에 속하는 사항”이라 비공개라는 답이 돌아왔다.
연구 부정 일어나도 깜깜이…“학습 효과 없다”
연구 부정 조사에 대한 비밀주의는 서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형사 처벌에 이르지 않는다면 대학 차원의 조사 결과는 공개되지 않는 게 학계 일반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같은 비밀주의가 연구 부정이 반복 재발되는 이유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연구윤리협의회장인 엄창섭 고려대 의대 교수는 “비슷한 환경이면 유사한 연구 부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비공개되니) 학습 효과가 생기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엄 교수는 “미국은 연구 결과물에 대한 부정행위가 드러나면, 대부분 소속 학교명과 이름 등을 모두 공개한다”며 “하지만 국내에선 개인 정보 등이 노출되면 학교가 명예훼손으로 역공격을 당할 수 있어, 법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실제 2017년경 연구진실성 관련 보도로 서울대가 연구 부정 의혹을 받은 연구자와의 소송에서 패소한 뒤, 비밀유지 규정이 보다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부정 사건 공개 기준 마련해야
어쩌다 언론이나 내부고발자가 폭로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최소한의 결과를 공개하는 게 기준이라면 그 비밀주의 정당성을 어떤 국민이 수용할 수 있겠는가. 서울대가 특별히 믿을 구석이 있다면 서울대 연진위가 다른 대학들보다 강도 높은 조사를 한다는 세평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의혹을 들여다보고 대학이 책임을 질 것”이라는 서울대 관계자의 호언장담 정도다. ‘검증 불가’의 조건에서 막연한 믿음을 강변하기보다는 조사 및 징계 양정 과정과 처분 사유의 사후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그 범위에 대한 상세한 기준을 마련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서울대는 AI 연구팀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조사 결과의 공개할까 말까 고민하기에 앞서 먼저 원칙과 기준부터 고민해 봤으면 한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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