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유발한 웨딩케이크.. 막내딸이 전통을 견디는 법
[김순천 기자]
▲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표지 티타는 자신의 한과 슬픔, 기쁨과 희열을 모두 요리에 담았다. |
ⓒ 민음사 |
그러나 불과 100여 년 전에 태어난 어머니의 어머니들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내와 결혼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아프리카의 할례 의식에, 아랍 여인들의 부르카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티타는 33개 언어로 번역되고, 전 세계적으로 450만 부 이상 판매된 멕시코 소설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베스트셀러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주인공이다. 소설은 남미 특유의 강렬한 열정이 요리라는 행위와 절묘하게 배합되어 에로틱하면서도 마법과도 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마 엘레나는 자신의 노후 보장을 위해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딸의 삶을 일찌감치 착취한다. 심지어 티타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줄까 두려워 그녀에게 들어온 페드로의 청혼을 거절하고 대신 페드로에게 큰 딸과 결혼하라고 권한다. 티타 가족이 전통을 어기지 않을 것임을 잘 아는 페드로는 티타와 평생 함께 하기 위해 그녀의 형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비극은 그렇게 잘못 낀 첫 번째 단추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결혼식에서 '구토의 강'이 흐르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절이었던 멕시코에서 규모가 큰 농장을 운영해 나가고 수많은 일꾼들을 부리고 혁명군이 자신의 농장에 쳐들어와 곡식과 비둘기 등을 탈탈 털어갈 때도 딸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엽총을 치마 속에 숨기는 여장부이지만 엘레나는 막내딸 티타에게만큼은 유독 냉혹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큰 사위와 막내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봐 두 사람을 끊임없이 감시하는 모습에서는 그녀의 두려움마저 엿보인다. 욕망이란 그것을 가지지 못할 때 더욱 커진다는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랑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사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를 엘레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더욱 티타를 말렸는지도 모른다.
티타 가족의 이런 잔인한 전통과 억압으로 불행하게 살아야 했던 딸들(여성들)의 고통과 분노를 작가는 여성들의 고유한 공간인 부엌에서 요리로 분출하도록 만든다. 음식을 만든 사람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음식은 그것을 먹는 사람들에게 신기하게도 마법을 발휘한다. 큰 언니의 결혼식 날, 티타의 눈물과 슬픔이 재료가 된 웨딩케이크를 먹고 사람들은 모두 커다란 슬픔에 휩싸여 결혼식은 갑자기 눈물바다가 된다. 하객들은 결국 구토를 하게 되고, 구토는 마당에서 흘러넘쳐 작은 강을 이룬다. 티타가 눈물로 수 놓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구토를 밟아 미끄러지고 오물을 뒤집어쓴다.
행복한 결혼식에서 작가는 왜 구토의 강을 만들었을까. 티타의 불행을 발판 삼아 만들어진 다른 가족의 행복은 결국 구토를 유발하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티타 가족의 몰염치한 태도를 방관하고 결혼식 파티에 동참한 모든 하객들은 티타가 만든 환상적인 음식을 먹고 결국 오물을 생산한다. 개인의 불행으로 만든 다수의 행복을 누리는 것은 오물과 다름없으며 그에 동참한 이들까지 오물의 강에 던져 놓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쾌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비록 구토 사건이 헤프닝으로 끝나지만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신은(작가는) 티타의 옆에 서 있다는 안도감으로 소설을 끝까지 읽어나갈 용기가 샘 솟게 된다.
갑갑한 전통에 보다 적극적으로 저항한 인물은 엘레나의 둘째딸 헤르투르디스이다. 페드로에 대한 티타의 욕정이 담긴 요리를 먹은 헤르투르디스는 끓어오르는 욕망의 에너지를 참지 못하고 벌거벗은 채로 들판으로 뛰어나가 버린다. 집안에서 얌전히 처녀로 지내다가 적당한 집안의 남자와 결혼했어야 하는 여자의 가축적인(=수동적인) 삶에 대하여 택할 수 있는 것은 복종 아니면 도망이다. 도망가지 못한 티타는 멍에를 감당하다가 결국 우울증에 걸려 말을 잃는다. 도망친 헤르투르디스는 훗날 혁명군의 대장이 되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도 한 후 당당히 금의환향한다.
"아시다시피 우리 몸 안에도 인을 생산할 수 있는 물질이 있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댕길 수 없다고 하셨죠...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125쪽)
22년간 사랑했으나 언제나 불완전 연소만을 했던 미완의 사랑에 대하여 작가가 그린 결말은 무엇일까. 페드로와 티타는 마마 엘레나의 죽음과 큰 언니와의 합의 덕분에 결국 맺어진다. 그러나 둘은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형부와 처제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사랑해야 했다.
큰언니가 죽고 페드로와 그녀의 딸 에스페란사가 결혼하던 날 페드로와 티타는 오랜 기간 자신들을 옭아맸던 의무와 속박에서 드디어 벗어났음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불완전 연소만 해야 했던 사랑의 에너지를 침대에서 분출하게 되고 절정의 순간 페드로는 죽게 되고, 성냥을 삼킨 티타는 스스로 성냥이 되어 불꽃을 일으켜 자신을, 페드로를, 그리고 농장 전체를 활활 불태운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사랑의 절정에서 끝이 난다. 두 사람은 두 사람을 사랑의 제단에 바치고 제 스스로 온전한 사랑의 요리가 되었다. 이는 일평생 가슴에 불꽃을 품고 살았으나 잘못된 전통의 희생양으로 온전하게 삶을 누리지 못한 티타에게 선물한 작가의 최고의 결론이 아니었을까.
'인생은 아이러니'라는 문장으로 쓰인 소설
티타에게 생명을 주었지만 일평생 불행의 원흉이었고 극복의 대상이었던 마마 엘레나. 그녀는 마치 생과 고통을 동시에 부여하는 운명의 여신같다. 생은 그저 어느날 갑자기 주어진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의지뿐이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 자신의 생으로부터 한 발짝도 떨어질 수 없다. 벗어날 수 없어서 생은 내 모체이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할 수 있기에 생은 내 자녀이다. 그래서 인생은 아이러니라는 수많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한 권의 소설을 닮았다.
비록 티타 자신은 부조리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생애 내내 비극 속에서 살아야 했지만 자신의 세대에서 이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전통을 끝내리라 마음먹고 결국은 헤내고 만다. 소설의 앞부분은 자신의 결혼식이었어야 했던 큰언니의 결혼식을 묘사하지만 끝 부분에서는 티타와 같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티타 덕분에 전통을 깬 에스페란사의 결혼식을 배치한다. 티타는 부조리를 받아들였으나 부조리를 파괴하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이 끝나던 날 그녀는 장렬하게 빛을 뿜으며 제 스스로 제물이 된다.
이 소설은 원래 영화 시나리오로 구상했으나 영화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어 1989년 소설로 먼저 출간되었다. 이후 소설의 큰 인기에 힘입어, 1992년에 작가의 남편이자 영화감독인 알폰소 아라우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되어 멕시코와 미국에서 역시 흥행에 성공했고, 전미 비평가 협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원작인 소설 역시 1994년 미국 출판인 협회에서 수여하는 에비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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