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압박한 野 "월북 번복에 안보실 개입" .."부끄럽다" 자조에 빠진 해경

심석용 2022. 7. 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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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 TF 김병주 단장과 의원들이 5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을 찾은 가운데 정봉훈 해경 청장이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5일 인천에 있는 해양경찰청엔 김병주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민주당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관련 태스크포스(TF)’ 관계자 5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정봉훈 해경청장, 김성종 수사국장 등 해경 주요 간부 7명을 불러놓고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해경의 판단이 “월북 추정”에서 “월북 증거 없다”로 뒤바뀐 과정에 윤석열 정부 국가안보실의 개입이 있었는지 캐물었다. 지난달 22일 하태경 의원 등 국민의힘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 관계자 5명이 찾은 데 이어 여·야가 번갈아 가며 해경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2시간여 동안 해경 간부들과 비공개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난 김 단장은 “윤석열 정부 국가안보실이 깊게 관여해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국가안보실 1차장 주관으로 해양경찰청장과 국방부 등 관계기관을 모아서 지난 5월 24일과 26일 두 차례 회의를 한 것으로 확인했다. 이때 해경청장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보실에서 여러 가지 관련 기관을 모아서 논의한 정황이 있는데 이건 국방부와 안보실에 가서 구체적인 어떤 논의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파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의 사건 조작 의혹과 관련해 김 단장은 2020년 9월 해경의 “어떤 외압도 확인된 것이 없다”는 답변을 공개한 뒤 “해경의 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할 당시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압력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해경이 안보실 지시로 해수부 공무원이 사살되고 시신이 훼손되던 날 엉뚱한 지역을 수색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수사결과 뒤집으면 누가 신뢰하겠나”


정치권이 돌아가면서 해경을 때리면서 해경 내부엔 깊은 자조감이 흐르고 있다. 서해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중간수사 발표 때 수사부서가 지나치게 이른 기간에 너무 단정 지어서 다들 놀랐다”며 “그런데 수사결과를 이번에 확 뒤집는 걸 보고 이러면 누가 우리를 신뢰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증거로 말하는 수사기관이 추가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수사결과를 바꾸면서 우스워졌다”며 “세월호 참사로 잃은 신뢰를 간신히 회복했는데 다시 물거품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해경 게시판에도 지휘부를 비판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블라인드 게시판엔 해당 회사나 기관 메일 주소를 인증한 사람만 글을 올릴 수 있다. 한 해경 직원은 “수사기관이 정권 교체와 맞물려 수사결과를 바꾸는 게 과연 정상적 조직인가 우려스럽다”고 적었다. “며칠 밤을 새워 불법 면세유통범을 검거하고 목숨 걸고 마약 사범을 체포하고 칼과 도끼 든 중국어선을 나포했는데 가진 수사권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수사 결과 또한 손바닥 뒤집듯이 쉬이 번복할 거라면 수사권이 무슨 필요가 있나”는 한탄도 나왔다.

'서해 피격 공무원' 사건 수사와 관련해 책임을 지고 사의하겠다고 표명한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이 지난달 24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을 나서며 퇴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봉훈 해경청장을 비롯한 최고위 간부 9명 전체가 일괄 사의를 밝힌 지난달 24일 이후론 풍파에 시달렸던 ‘흑역사’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조직 내 퍼지고 있다고 한다. 해경 간부들의 집단 사의 표명은 1953년 해경 창설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해경은 국민안전처 산하기관인 해양경비안전본부로 격하돼 수사·정보기능과 관련 인력을 경찰청에 내줬다가 2017년 7월에야 회복했다.

대통령실이 “감사원 감사 등 진상 규명 작업이 진행 중이다”라며 사의를 반려했지만, 해경 내부에선 사실상 “지휘부 공백기”란 말이 나온다. 수사파트의 한 해경 간부는 “겉으론 직원들이 평소대로 일하고 있지만 언제 지휘부가 바뀔지 모르니 업무 연속성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며 “특히 연말에 승진을 앞둔 직원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전했다.


“군은 '안보' 뒤에 숨고 해경만 동네북”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조직 내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다. 해경의 한 간부는 “이번에도 그렇듯 해상에서 큰 사건이 터지면 군은 안보를 이유로 책임과 대응에서 한발 피해가고 화살은 해경만 맞는다”며 “해경이 책임지는 치안도 중요한데 패스트푸드 세트메뉴의 감자튀김처럼 이리 넣었다. 저리 넣었다는 하는 일이 또 벌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해상 경비를 담당하는 한 경찰관은 “이번 수사결과 번복을 두고 아무도 사건의 진실을 설명해주지 않으니 현장에선 우리가 모두 잘못한 것 같은 위축감이 번지고 있다”며 “다른 사건이라고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겠냐는 자조 섞인 얘기가 많이 나온다”고 했다.

문제는 해경의 곤욕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감사원과 서울중앙지검이 이미 이 사건 관련 의혹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가운데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되풀이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해경청 소속 한 간부는 “현재로선 감사원과 검찰이 한시라도 빨리 의혹을 밝히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는 게 최선 아니겠냐”며 “어떤 결과든 빨리 이 정국이 마무리돼서 조직이 안정을 되찾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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