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러·친중이 부메랑 됐다..수출 줄어든 獨, 31년만에 무역적자
유럽 최대 경제강국 독일이 31년 만에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독일 경제의 발목을 잡은 건 러시아와 중국이다. 저렴한 러시아산 에너지와 거대한 중국 시장은 지난 20년간 독일의 성장을 이끌었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지속하면서 도리어 독일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4일(현지시간)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 5월 약 10억 유로(약 1조 3500억원)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4월엔 31억 유로, 지난해 5월엔 134억 유로의 무역흑자를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독일의 월별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것은 통일 이듬해인 1991년 이후 처음이다.
독일 경제의 ‘성공 방정식’으로 통했던 친러·친중 노선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은 1990년 통일 후 2000년대 중반까지 저성장·고실업에 시달리며 ‘유럽의 병자’라 불렸다. 하지만 제조업 경쟁력을 높여 수출을 대폭 늘리면서 유럽 최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섰다. 이를 뒷받침한 건 러시아와 중국이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의 전기 작가인 랄프 볼만은 “독일 수출 성공의 비결은 러시아로부터 값싼 가스를 사들이고, 중국에 (상품을) 수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러시아가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독일은 지난해까지 가스 공급량의 55%를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1위 국가다. 반면 독일의 대러 수출은 급감했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로 인해 수출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5월 독일의 대러 수입액은 전년 동월 대비 54.5% 늘어난 반면 대러 수출액은 같은 기간 29.8% 하락했다.
중국 시장 상황도 급변했다. 올해 초 강화된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중국 내 공장이 문을 닫으며 독일 제조업체는 부품 공급망 문제에 부딪혔다. 코로나 봉쇄 충격은 무역수지도 악화했다. 5월 기준 독일의 대중 수입액은 올해 1월보다 35% 증가했지만, 수출액은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중국은 지난해까지 6년 연속 독일의 최대 교역국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독일 시가총액 상위 15개 기업 중 10개사가 매출액의 10분의 1 이상을 중국 시장에 기대고 있다. 지크프리트 루스부름 독일산업연맹(BDI) 회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결합해 올해 (독일 경제는) ‘극도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대책 마련에 부심 중이다. 숄츠 총리는 지난 3일 현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경제가 역사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특히 수백 유로가 갑자기 오른 난방비 청구서가 사회적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숄츠 총리는 4일(현지시간) 4일 전문가, 연방은행 관계자들과 인플레이션 대응 ‘집중행동’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축소로 인한 구제금융을 요청한 유럽 최대 에너지 회사 중 하나인 독일의 유니퍼에 대해선 9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당분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컨설팅업체 판테온거시경제연구소의 클라우스 비스테센 이코노미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독일의 무역수지 악화를 상쇄할 수출의 반등 기미가 없어 무역적자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스텐 브제스키 ING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이 2분기에 감소하고 올해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장기적 경제 구조 개혁도 쉬운 일이 아니다. NYT는 “숄츠 총리는 이제 독일은 공급망과 수출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독일 노동조합과 기업체 등은 러시아산 에너지를 끊으면 경제위기가 닥칠 것을 우려하고 있어 변화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헤지펀드 대부 조지 소로스도 지난 5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친중·친러 기조는 독일을 유럽에서 가장 잘나가는 경제대국으로 만들었지만 거기엔 치러야 할 비싼 계산서가 있다”며 “독일 경제는 방향을 바꿔야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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