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통시장 혁신 현장 가다] 동네 위인 축제·상인 연극단..시설 현대화보다 특성화에 방점
지난 6월 15일 도쿄도 스미다구. 도쿄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른 ‘도쿄 스카이트리’에서 골목으로 약 20분간 걸어 들어가다 보면 ‘무코지마 타치바나 상점가(쇼텐가이)’가 나온다. ‘상점가’라지만 규모는 매우 협소하다. 인근에 위치한 아사쿠사, 스카이트리 타워 근처 거대 상권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점포 역시 인근에 사는 주민들을 위한 주류 판매점, 빵집, 식료품점, 잡화점 등이 전부다. 그 흔한 편의점이나 대형 프랜차이즈 가게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도쿄 그랑프리 1등 찍고 ‘부흥’ 시동
평범한 동네 상권에 불과하던 이 상점가가 일본에서 화제가 된 건 최근 일이다. 도쿄도에서 주최하는 ‘쇼텐가이 그랑프리 대회’에서 최우수상(1등상)을 받은 것. 도쿄도 내에서 활발히 혁신하고 도전하는 상점가에 주는 상이다. 비결이 뭘까. 이를 알려면 먼저 100년 가까이 된 상점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무코지마 타치바나 상점가는 1927년 처음 형성됐다. 당시 도쿄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했고, 스미다구 역시 사람들로 붐볐다. 상점가도 우후죽순 늘어났다. 평범한 상점가 중 하나에 불과했던 타치바나는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급성장한다. 미국의 도쿄 대공습 당시 주변 상점가가 모두 폭격으로 파괴되고 타치바나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 전쟁이 끝나고 유일하게 건물이 남아 있던 이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후 스미다구의 대표적인 골목 상권으로 자리 잡으며 점포 수가 100개를 넘어설 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타치바나 상점가도 2000년대 들어 급속도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 제정된 ‘마치즈쿠리 3법’이 발단이 됐다. 도시계획법, 대점입지법, 중심시가지 활성화법으로 구성된 이 3법은 도쿄도 근처에 대형 유통 업체가 들어올 수 있도록 규제를 대거 완화했다. 출점 족쇄가 사라지자 대형 쇼핑센터가 도쿄 곳곳에 들어섰고, 타치바나 상점가 같은 골목 상점 이용객은 급감했다. 2012년 스미다구에 들어선 도쿄 스카이트리는 상점가 몰락에 쐐기를 박았다. 타워를 중심으로 재개발이 대거 이뤄지며 대형 상권이 새로 들어섰다. 그나마 남아 있던 고객도 이탈하기 시작했다. 한때 150여개에 달했던 점포 수는 어느새 60여개로 반 토막 났다. 공실이 늘자 상권이 침체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역사성 강조하고 외국인 가게 유치
쓰러져가던 상점가를 되살린 건 바로 상점 주인들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상점가를 부흥시키겠다는 일념하에 스스로 혁신에 나섰다. 주안점을 둔 것은 두 가지, 스토리텔링과 개방이다.
우선 상점가만의 스토리와 콘텐츠 개발에 집중했다. 오오와 카즈미치 사무국장을 중심으로 상점가를 다시 북적이게 할 콘텐츠를 계속 만들었다. 스미다구 지역 출신 인물 중 우키요에(에도시대 중후기 유행한 판화) 화가로 유명한 가쓰시카 호쿠사이를 주제로 마츠리(축제)를 기획했다. 도쿄 대공습에도 살아남은 타치바나 상점가만의 극적인 이야기도 콘텐츠로 선보였다. 1950~1960년대 일본 골목의 정취를 살린 점포를 내세워 타치바나 상점가의 오래된 역사를 강조하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는 가족 단위 고객이 즐길 만한 자체 연극도 기획했다.
결과는 대성공. 과거의 ‘힙’함을 간직한 상점가로 젊은이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과거 일본 골목을 보며 ‘레트로’ 감성을 느끼려는 손님이 몰려들었다.
다음으로 상점가를 외부에 개방했다. 대형 프랜차이즈를 비롯, 다양한 유통업체를 상점가 안에 유치했다. 물론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일부 상인이 격렬하게 반발했다. 여기서 오오와 사무국장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그는 “불편한 상점가는 지속성이 없다. 처음에 재미를 찾아서 왔다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다시는 상점가를 찾지 않는다. 우리 가게뿐 아니라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대기업 가게도 유치해야 한다”는 논리로 반대파를 설득했다.
이어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빈 공실을 싼값에 빌려주며 가게를 열도록 했다. 그러자 프랑스인이 와인을 팔고 미국인이 햄버거를 파는 ‘글로벌한 상권’으로 거듭나게 됐다. 상점가에 이국적인 풍경이 더해지자 ‘화제의 상권’으로 떠올랐다. 타치바나 상점가는 잡지와 신문사에서 연이어 취재해갈 만큼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인터뷰 | 오오와 카즈미치 무코지마 타치바나 협동조합 사무국장
변화 거부 않고 받아들이는 게 장수 상권 비결
Q 코로나19 사태로 상점가의 타격이 컸다. 타치바나 상점가는 어땠는지.
A 영향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른 상권에 비하면 선방했다. 외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높지 않았던 덕분이다. 골목상권에 위치한 타치바나 상점가는 고객 대다수가 도쿄에 사는 일본인이다. 상점가의 콘텐츠나 점포 유형도 인근 주택가에 사는 주민을 비롯해 일본인이 즐길 거리가 대부분이다. 애초에 아사쿠사, 스카이트리같이 관광객에 의존하는 상권과는 유형이 아예 다르다. 외국인 방문을 기대하기 힘든 골목상권은 내국인을 최대한 유치하는 데 집중한다. 타치바나 상점가의 변화도 처음에는 주변 주택가에 사는 주민들을 최대한 모으기 위해 시작했다.
Q 주민을 모으기 위해 어떤 변화를 줬나.
A 외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연 것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인이 와인을 파는 가게가 우리 상점가에 있다. 만약 서양 관광객이 오면 이 가게를 매력적이라 생각할까. 그렇지 않다. 프랑스 와인을 마시고 싶다면 파리를 가지 않겠나. 그런데 일본 젊은이들은 이를 신기하게 생각한다. 특히 젊은 고객들은 1950~1960년대 도쿄 분위기의 골목에 프랑스인이 와인을 파는 가게가 있다는 것에 열광한다.
Q 상점가에서 연극단을 운영한다는데.
A 결국 재미를 위해서다. 타치바나 상점가는 역에서 멀고 차량을 끌고 오기도 힘들다. 시장에 즐길 만한 놀이가 많아야 한다. 절박하게 만들었다. 연극단 이전에는 아이돌 ‘아라사(アラサ-)’까지 만들었다(웃음). ‘어라운드 써티(around 30)’의 줄임말로, 상점가 내 30대 전후 직원을 모아 가수처럼 노래 부르고 춤까지 췄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최종적으로 연극단 형태가 자리 잡았다. 연극을 보러 오는 손님이 가게로 오는 경우도 있고, 가게를 찾아온 가족이 연극을 보기도 한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A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위기다. 가장 큰 문제는 고령화로 인해 공실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가게 주인이 대부분 건물주인데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게를 물려받을 자녀가 없어서다. 상가 임대도 힘들다. 상점 가게 대부분이 ‘1층은 가게, 2층은 집’ 형태다. 문제는 옛날 건물이라 1층을 거치지 않고서는 2층으로 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2층에 거주하는 건물주들이 세를 주지 않는다. 현재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도쿄 = 노승욱·반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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