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빙하 붕괴' 더 잦아진다.."기후변화로 등반가들 위험"
지난 2일 세계 9위봉 낭가파르바트(8125m)를 등정한 영국 여성 산악인 아드리아나 브라운리는 정상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지만, 하강이 지옥이었다고 SNS에 소회를 남겼다. 일반적으로 8000m 정상 등정 후 폭풍우가 몰아쳐 등반가의 발목을 잡지만, 이날은 날씨가 너무 좋은 게 문제였다. 그는 "산은 용광로, 수직의 강이었다"고 했다. 고온으로 빙하가 녹아 낙석이 계속해 떨어지고, 녹은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로프의 앵커(로프를 고정하는 장비)를 느슨하게 했다. 하강시 앵커가 고정되지 않으면,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산악 전문매체 익스플로러스웹은 브라운리의 경험을 전하며, "등반가들은 (정상 등정 때) 화창하고 따뜻한 날을 갈망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이런 날씨를 무서워하게 됐다"고 전했다.
익스플로러스웹은 지난 3일 이탈리아 돌로미테지역 마르몰라다(3443m)에서 발생한 세락(거대한 얼음 기둥 또는 덩어리) 붕괴 사고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전했다. 전날 사고지역인 마르몰라다 해발 3000m의 기온은 10도를 웃돌았다. 현지 구조대에 따르면 이맘때 이 고도에서 기온은 영하권을 맴도는 게 보통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세락은 이날 2시에 무너졌고, 얼음과 돌·바위 덩어리와 함께 쏟아져 내렸다. 마르몰라다 인근 베네토주의 루카 자이아 주지사는 거대한 세락이 붕괴하며, 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실종됐다고 4일 밝혔다. 떨어져 나간 빙하의 크기는 폭 200m, 높이 80m, 깊이 60m로 추정된다고 했다. 거대한 빙하는 시속 300㎞의 속도로 쏟아졌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4개 봉우리를 오른 산악인이자 환경 운동가인 라인홀트 메스너는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가 "빙하를 먹어치우고 있다"고 말했다고 이탈리아 안사통신이 전했다. 그는 붕괴한 세락에 대해 "고층 건물과 같다"며 "(고산 지역에서) 빙하가 무너지는 곳이 더 많아지고 있다. 앞으로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세락 붕괴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알프스 지역의 폭염 등이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폭염이 세락 붕괴의 도화선이 됐을지라도, 온난화 등 점진적인 기후변화가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고층아파트 규모의 세락이 붕괴할 때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로잔대학의 자크 머레이 연구원은 "기후변화의 장기적인 영향으로 빙하가 압력을 받아 붕괴할 정도로 약화했을 것"이라며 "빙하가 녹게 되면 녹은 물은 바위 바닥까지 닿는데, 이 물이 바닥에서 흐르면서 결국 얼음 덩어리를 바위에서 떼어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무너진 마르몰라다 빙하 윗부분에 큰 틈이 있었다며, 이 틈을 통해 붕괴가 진행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탈리아 국립연구위원회 극지과학연구소의 레나토 콜루치 교수는 "3500m 이하의 대기와 기후는 우리가 등록한 '새로운' 기후로 인해 완전한 불균형에 처해 있다"며 "불행하게도 이러한 사건은 향후 몇 년 동안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빙하 전문가인 제이코포 가브리엘리는 5~6월 북부 이탈리아의 기후는 지난 20년 이래 가장 뜨거웠다며,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마르몰라다의 빙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줄어들고 있으며, 향후 25~30년 이내에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케임브리지대의 빙하학자 풀 크리스토퍼센 교수는 "마르몰라다 빙하의 붕괴는 기후 변화와 직결된 자연재해"라며 "이와 같은 재앙적인 빙하의 붕괴는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지대 빙하의 붕괴 사고는 히말라야에선 더 자주 발생한다. 지난 2월 메인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등정을 위한 마지막 캠프 자리인 사우스 콜(7906m) 빙하의 두께는 지난 25년간 54m 더 얇아졌다. 이는 지난 2000년에 걸쳐 생성된 빙하가 1990년대 이후 녹아 사라졌다는 뜻이다. 네팔의 기후변화는 에베레스트 등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익스플로러스웹에 따르면 네팔관광성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00m)를 빙하 바로 밑 지점에서 아래로 내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크 머레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산악 환경의 변화로 등반가들은 점점 더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일부 지역이 등산객이 접근하기에 너무 위험하거나 너무 어려워졌다"며 "기후 변화가 이미 등산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마르몰라다 사망자 7명 중 3명은 베테랑 산악 가이드였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혁이가 일진? 어이 없다" 남주혁 동창·담임 20명 나섰다
- 손흥민 "최고 경기는 러 월드컵 독일전, 인종차별 갚아줬다"
- 이효리·이상순 카페 7일 재오픈…"영업 땐 대표님 안 올 것"
- '고음 도장깨기' 나선 3년차 신인…'놀면 뭐하니'로 빵 터졌다
- "고통 없애준다" 꼬임 빠져 좀비 됐다...래퍼 '악몽의 3년'
- 구리 20m 깊이 싱크홀, 도로 재개통에 2년 걸렸다
- 배우 고세원 전 여친 "내 신체 영상 수십개" 추가 폭로 나왔다
- 최태원 "1빠다" 자랑한 전시...알고보니 동거인 김희영 총괄
- '떼법'에 굴복한 옥주현…그 저격한 뮤지컬계의 숨은 진실
- '성상납' 의혹 기업인 "이준석이 준 '박근혜 시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