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무기·위조지폐 이어..코인으로 2조원, 北외화벌이 트렌드

정영교 2022. 7. 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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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과학기술전당에서 학생들이 컴퓨터를 활용해 학습활동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미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속도를 늦추기 위한 '돈줄 죄기'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새로운 타깃으로 주목받는 것은 단연 암호화폐다. 관련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 5년 동안 탈취한 암호화폐의 규모는 약 16억 달러(약 2조 766억원)에 이른다.

북한의 사이버 해킹 능력이 증강한 탓도 있겠지만, 새롭게 떠오르는 암호화폐는 기존 제재망으로 옭아매지 못하는 분야기도 하다. 북한은 이처럼 기존 체제의 허점을 뚫거나 국제정세의 흐름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외화를 평양으로 조달해왔다. 최고지도자의 통치자금은 물론 핵·미사일 개발 자금의 원천으로 지목되는 북한의 외화벌이 '트렌드' 변천사를 짚어본다.


흐름 타는 외화벌이 수법


북한은 정권의 통치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마약 제조 및 거래, 무기 판매, 위조지폐 제조 등을 활용해왔다. 냉전 시기 북한은 반서방·비동맹 진영을 상대로 하는 무기 거래로 쏠쏠히 재미를 봤다. 그러나 2011년 아랍권 민주화 운동을 일컫는 '아랍의 봄' 이후로는 북부 아프리카의 마그레브(Maghreb) 독재 국가들과의 거래가 어려워졌다.
북한 만수대창작사가 만든 세네갈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상'의 모습. 높이 50m로 미국 뉴욕에 위치한 '자유의 여신상'보다 큰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포토]

낮은 임금과 우수한 기술을 토대로 하는 '노동집약형' 외화벌이도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북한은 해외 건설현장, 공장 등에 약 10만 명의 노동자(중국 5만 명, 러시아 3만 명 등)를 해외로 파견했다. 이들이 벌어들인 수입은 매년 약 5억 달러(약 5753억원)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북한은 최고의 미술 분야 집단 창작 단체인 만수대창작사를 내세워 아프리카 등 제3세계 독재자의 대형 동상과 기념비를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외화를 조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2016~2017년 대북 제재망을 촘촘히 죄면서 이런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팬데믹 시대 새로운 캐시카우는 암호화폐


이후 북한은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은 사이버 공간으로 외화벌이 활동 무대를 옮겨갔다. 북한 해커들은 초기 외국 웹사이트를 교란하거나 기업·금융기관 등을 타깃으로 삼았으며 외설·음란 사이트를 운용하기도 했다.
암호화폐를 대상으로 한 북한 해커들의 사이버 공격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중앙포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실물 경제의 위기가 커진 반면 빅테크와 암호화폐 기업이 승승장구하며 시장 주도권을 가져가자 북한 해커들은 암호화폐로 눈길을 돌렸다. 여기에는 초기 비용을 적게 들이며 익명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이버 공간의 장점도 영향을 미쳤다.

개인이나 기관을 제재 대상으로 설정하는 일반적인 제재법으로는 사방에서 뚫고 들어오는 북한 해커들의 활동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북한 입장에서 암호화폐는 각국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개인 간 금융 거래(P2P) 방식으로 운영되는 탈중앙화거래소(DeX)를 통해 거래 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졌다.


코인 폭락은 리스크


다만 암호화폐가 안정적인 외화벌이 수단으로 자리잡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시장 상황에 따라 자산 가치가 크게 변동하는 암호화폐의 특성 때문이다. 이는 정권의 안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통치자금의 특성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이더리움, 도지코인, 리플을 상징하는 토큰의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가상화폐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북한이 탈취한 암호화폐의 가치가 1억 달러(약 1300억원) 이상 감소했을 것이란 추정도 나왔다. 미국 블록체인 분석업체인 체이널리시스는 최근 북한이 자금 세탁을 하지 않고 남겨둔 가상화폐의 가치가 지난해 말 기준 1억7000만 달러(약 2201억원)였으나 최근 6500만 달러(약 841억원)로 폭락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체이널리시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이 지난해 사이버범죄를 통해 탈취한 암호화폐는 4억 달러(4958억원) 규모이며, 올해 들어 불법으로 취득한 암호화폐가 10억 달러(1조 2999억원)에 조금 못 미치는 것으로 추산했다.

정유석 IBK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연구위원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국경을 봉쇄한 북한 입장에서 가상화폐는 제재를 회피하며 외화를 획득할 수 있는 매력적인 수단"이라며 "익명성 보장은 물론 높은 수익성에 비해 물리적인 위협의 가능성도 작기 때문에 북한 해커들의 암호화폐 탈취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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