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린, 최효, 정성용의 안부를 묻는 하루 [김용균재단이 바라본 세상]

김건수 2022. 7. 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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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노동자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싸움에, '안녕'을 묻다

[김건수]

 쿠팡에서 계약 종료 통보를 받은 정성용씨가 "나, 왜 잘랐니?"라는 팻말을 걸고 발언 하는 중
ⓒ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지회
 
지난 6월 말, 뜨거운 여름과 함께 긴 장마가 시작됐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 노동자들은 사장을 만나기 위해 6월 23일 잠실 본사에 농성장을 차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터에 제대로 된 냉난방기가 없다고 지적해왔고, 최근 노조는 혹서기를 맞이해 냉난방기 설치 등을 주장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런데 이 같은 활동에 동참하던 노동자 두 명이 '근로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   

지난 5월 말, 쿠팡의 물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는 인천물류센터 노조 정성용 분회장과 최효 부분회장에게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명목상 '계약기간 종료'를 내걸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시 정 분회장은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고, 최 부분회장은 1년 계약 연장을 하는 시점이었다. 

쿠팡 측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업무 평가기준 미달로 인해 (계약이) 갱신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업무를 해태한 적이 없으며 근무평가 기준과 내용도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재계약 거부는 노조 탄압 목적의 부당 해고"라는 게 당사자들과 노조 측의 입장이다. 쿠팡 본사 점거 농성은,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시작됐다. 

바로 그 옆 양재동에는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이 사회적 합의 이행과 부당노동행위 중단을 요구하며 53일간 단식을 한 농성장이 있다. 그곳에서 임종린은 53일간의 단식을 했지만 회사는 교섭에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 결국 시민들이 나서 SPC제품 불매운동을 시작하고 있고, 아직도 노동자들은 그곳의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 spc본사앞 농성장 시민문화제를 진행하기 전 농성장 주변에서 피켓팅 진행
ⓒ 권미정
 
노동조합에 가입한 청년노동자들

이 세 명의 노동자를 호명한 건 농성장 거리가 가까워서가 아니다. 이들은 모두 노동조합에 가입한 청년노동자다. 실제로 파리바게뜨와 쿠팡 모두 청년노동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인데, 두 노동조합의 주요 요구는 휴식시간과 노동조합 활동 보장이다. 임종린, 최효, 정성용의 싸움에서 오늘날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을 떠올리는 게 어렵지 않다. 

모두가 입을 모아 청년의 꿈을 응원하는 시대, 정부는 주식투자와 같은 투기열망을 꿈으로 포장할 뿐이다. 그러나 정말로 청년에게 필요한 건 정당한 땀의 대가를 지킬 수 있는 노동조합이다. 한국사회는 연일 노동조합에게 구시대적 존재라는 오명을 씌우기 위해 청년과 거리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로 살아가는 청년에게 노동조합은 절실한 삶의 문제이다.

공교롭게도 SPC와 쿠팡은 MZ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잘 쫓는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특히 SPC는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ESG경영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청년세대의 소비심리를 쫓으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청년세대의 지향과 맞닿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전히 노동조합은 청년세대와의 거리가 먼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보수언론들은 투쟁만 일삼는 노동조합은 청년세대에게 외면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소비심리를 겨냥해 수익을 올리는 기업들이, 동시에 청년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조합할 권리를 탄압하는 양면적 모습에서 우리는 과연 누가 노동조합과 청년의 거리를 멀게 했는지 되물어야 한다. 청년과 노동조합의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기업이 청년의 노조할 권리를 막고 있는 건 아닌가?

물론 최근 능력주의 담론이 부각되며, 일부 청년들 사이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일부'의 사례에 불과하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당사자들은 결국 노동조합을 통해 제 권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누구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사회가 노동조합과 노동하는 청년의 존재를 지우고 있는 동안, 서울에서 가장 부유한 곳으로 꼽히는 한 가운데에서 이 세 명의 청년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농성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 싸움에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 정직하게 땀을 흘리는 청년들의 꿈이 담겨 있다면 과장일까.

노동하는 청년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으려면 
 
 쿠팡 본사에 노동자들의 현실을 담아 노조에서 세워 둔 신발모형
ⓒ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지회
 
지금,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임종린의 안부를 묻는다. 점심시간에는 쉬게 해달라고 노동조합에 가입한 또래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의 안부를 묻는다. 성별임금격차 등과 같은 불평등에 맞서 싸우며, 노동조합으로 틔운 평등의 꿈이 아직 잘 있느냐고 묻는다.

잠실 본사 로비에서 잠을 청하는 최효와 정성용의 안부를 묻는다. 비정규직 저임금 착취의 설계도로 지어진 물류센터에서 노동조합을 시작한 청년노동자의 꿈과 희망에 안부를 묻는다.

그 희망이 계속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 또래 청년들이 연대에 나섰다. 지난 6월 13일, 전국의 63개 청년단체가 모여 SPC제품 불매에 동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또래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청년들이 연대의 발걸음을 시작하고 있다. 일하는 노동자의 땀을 부당하게 빼앗는 사회에서는 더 이상 미래를 꿈을 꿀 수 없다며 이 지독한 반노동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마음을 모았다.

변화의 시작, 그 속에 임종린, 최효, 정성용의 싸움이 있다. 7월 4일부터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는 파리바게뜨 노동자 5명이 임종린에 이어 집단단식에 돌입한다. 쿠팡은 한번의 교섭 끝에 계약 종료 철회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에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청년공동행동을 꾸린 청년학생단체들은 매일 돌아가며 릴레이 동조단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청년노동자만이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제의 조선하청 노동자들은 그동안 삭감된 임금 30%의 보전 등을 요구하며 파업 중이다. 한 노동자는 1미터 남짓의 철제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농성 중이다.

힘든 싸움들이 계속되지만, 홀로 두지 않겠다는 이들의 연대가 전국에서 시작되고 있다. 청년들이 또래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며 각자의 경계선을 넘어 연대의 장으로 모였듯, 세대를 넘은 연대로 오늘의 부당한 현실을 바꿔내기 위한 싸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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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김용균재단 회원이자 청년학생노동운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김건수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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