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지분 야금야금..3대 주주 된 SM그룹
우오현 회장이 이끄는 SM그룹이 국내 대표 해운사 HMM(옛 현대상선) 지분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해운업계가 시끌시끌하다. 단순 투자 목적인지, 인수를 위한 사전 작업인지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SM그룹, HMM 지분 매입
▷5.52% 사들여 3대 주주 올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M그룹 계열사 SM상선과 우 회장을 비롯한 SM그룹 특수 관계인 18명은 6월 20일 기준 HMM 지분 5.52%(2699만7916주)를 보유했다고 공시했다. 이를 통해 산업은행(20.69%), 한국해양진흥공사(19.96%)에 이어 단숨에 3대 주주로 올라섰다.
SM그룹의 HMM 주식 매입 금액은 8350억원에 달한다. 주당 평균 매입 가격은 3만931원으로 6월 21일 종가(2만6100원)보다 20%가량 높다.
SM그룹 계열사 중에서는 SM상선 보유 주식이 1647만7790주로 가장 많다. 대한상선, SM하이플러스, 우방, STX건설, 대한해운 등 주요 계열사도 HMM 주식 매입에 나섰다. 특히 우오현 회장도 직접 381억원 사재를 털어 HMM 주식 128만7300주를 사들인 점이 눈길을 끈다. 우 회장 장남인 우기원 우방 전무도 5000주를 매입해 힘을 보탰다. SM그룹은 HMM 지분 3% 이상을 취득하면서 주주권 행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지분 3%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주주총회 소집 청구와 주주 제안, 회계장부·회의록 열람 등이 가능하다.
HMM 지분 매입 배경을 두고 SM그룹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힌다. HMM 주가가 상승하면 지분을 매각해 시세차익을 거둘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재계 시각은 다르다. 우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뿐 아니라 주요 계열사들이 주식 매입에 나선 만큼 인수전을 위한 준비 작업 아니냐는 시선이다.
실제 우 회장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 전략으로 그룹을 키워왔다. 2005년 건전지 제조업체 벡셀을 시작으로 경남모직, 남선알미늄, 티케이케미칼 등을 줄줄이 인수했다. 지난해 말 기준 SM그룹 계열사는 80여개, 그룹 전체 매출은 7조2590억원에 달한다. 2013년에는 당시 국내 해운업계 4위인 대한해운을 인수하면서 해운업에 진출했다. 2016년에는 벌크전용선사 삼선로직스(현 대한상선)까지 품에 안았다. 여세를 몰아 한진해운의 미주 노선과 자산을 인수해 SM상선까지 인수해 해운업을 키워온 만큼 HMM 인수까지 노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글로벌 해운업이 살아나면서 국적선사 HMM 가치가 높아지자 우오현 회장이 HMM 지분 인수에 나선 듯 보인다. 지분을 계속 늘리면서 인수 기회를 엿보려는 사전 작업 수순이 아닐까 싶다”고 귀띔했다.
▶HMM 인수 만만찮을 듯
▷시가총액 12조 달해…자금력이 관건
다만 SM그룹의 HMM 인수가 만만한 상황은 아니다.
수년간 적자에 시달려온 HMM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글로벌 화물 물동량이 급증하면서 실적이 날개를 달았다.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4조9187억원, 영업이익 3조1486억원, 당기순이익 3조1317억원을 기록했다. HMM 분기 영업이익이 3조원을 넘은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앞서 지난해에도 7조3775억원 영업이익을 올리며 실적이 급증했다.
HMM이 화려하게 턴어라운드한 것은 해운 시황이 개선되면서 운임이 오른 것이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해상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1분기 평균 4851로 전년 동기(2780) 대비 75%가량 상승했다. 아시아~미주, 유럽 노선 등 전 노선 운임이 오르면서 시황이 개선됐다.
증권가는 올해 HMM 영업이익이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본다. 배기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HMM은 장기 계약 비중이 높아 올해 운송할 계약 물량의 운임을 선제적으로 확보했다. 올해 영업이익은 12조4659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덕분에 HMM 주가가 급등하면서 어느새 시가총액이 12조7150억원(6월 28일 기준)으로 치솟았다. 주가 급등으로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 지분과 영구채까지 상환하려면 1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M그룹 전체 자산은 13조7000억원으로 HMM(17조8000억원)에도 못 미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우오현 회장은 ‘M&A 귀재’로 불리면서 SM그룹을 중견그룹으로 성장시켰지만 현재 자금력으로 HMM을 인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마치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격이라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HMM이 매물로 나올 경우 SM그룹이 현대차, 포스코, CJ그룹 등과 동맹을 맺어 인수전에 나설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SM그룹이 이미 3대 주주 자리에 올라 있는 만큼 여타 기업도 SM그룹을 아예 배제하고 인수하기보다는 함께 갈 수 있다는 논리다. 금융권 관계자는 “SM그룹이 단독으로 HMM을 인수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지만, 3대 주주인 만큼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은 있다”고 귀띔했다.
한편 HMM 인수 후보자로 현대차그룹이 유력하게 떠오르는 중이다. 현대글로비스는 벌크선과 자동차운반선, HMM은 컨테이너선이 핵심인 만큼 중복되는 사업이 적어 두 회사가 합치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하다. 이와 관련 현대글로비스를 이끌어온 김경배 사장이 최근 HMM 수장을 맡은 것을 두고 향후 매각 과정에서 김 사장이 모종의 역할을 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적잖다.
다만 정부는 HMM 매각을 두고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당장 HMM 민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HMM 실적이 날개를 달면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지만 매각을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얘기다. 조 장관은 “해운 산업이 회복했지만 글로벌 해운업체 간 경쟁이 심화하고 대외 불확실성이 증가해 항만 물류 경쟁력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HMM이 번 돈도 있지만 선복량 확대, 물류 터미널 확충 등 투자를 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HMM이 컨테이너선 사업으로 눈부신 실적을 냈지만 컨테이너선 실적이 꺾일 경우 성장세를 이어갈 신사업이 마땅치 않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HMM 매출의 90%가량이 컨테이너선일 정도로 컨테이너선 사업 의존도가 높다. 그럼에도 현금만 쌓아둘 뿐, 신사업 투자에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HMM의 현금성 자산은 9조5103억원에 이른다. 머스크, MSC 등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막대한 현금을 확보한 글로벌 해운사들이 불황에 대비해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는 것과 대비된다. 머스크는 최근 36억달러(약 4조6000억원)를 투자해 아시아 육상물류업체 LF로지스틱스를 인수했다. 육상, 해상 운송의 연결고리를 강화해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양지환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로 올 하반기 컨테이너 수요 전망이 불확실하다. 운임 하락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HMM은 2분기 실적을 정점으로 피크아웃에 직면할 수 있다. 내년에도 운임 반등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MM 실적이 꺾일 경우 매물 가치가 떨어지면 SM그룹이 인수전에서 손을 뗄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 없다. HMM 지분 매입으로 승부수를 던진 우 회장이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재계 이목이 쏠린다.
[김경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6호 (2022.07.06~2022.07.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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