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해결할 건가" 또 단식 내몰린 파리바게뜨 제빵사들
[김성욱 기자]
▲ 파리바게뜨 제빵 노동자 김예린(36)씨가 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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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린(38세) : "제가 (이전에) 단식할 때 며칠만 더 버텼더라면, 지금 노동자들이 이 더운 날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었나… 그런 생각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김예린(36세) : "지회장님이 저렇게 말씀 하시는 걸 들으면 마음이 아프죠. 혼자 짊어질 짐도 아닌데. 혼자 좋자고 하신 것도 아니고 다 같이 좋자고 대표로 힘들게 단식하셨던 거잖아요. 우리에게 미안할 주체는 회사이지, 지회장님이 아니니까."
4일, 32도의 폭염 속에 파리바게뜨 제빵 노동자 5명이 한꺼번에 단식에 들어갔다. 앞서 지난 3월 28일부터 5월 19일까지 임종린 민주노총 파리바게뜨 노조 지회장이 무려 53일간의 단식투쟁을 마무리한 지 불과 46일만이다. 임 지회장의 오랜 단식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여전히 노조탄압 중단, 임금·승진차별 철폐, 휴식시간 보장 등 기본적인 노동권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파리바게뜨 사태, 그 총체적 난국의 원인은 http://omn.kr/1zl6z ).
건강 악화로 단식을 중단한 뒤 병가를 내고 '복식' 기간 중인 임 지회장은, 무더위 속에 '단식 1일차' 팻말을 목에 건 5명 노동자들에게 말없이 생수를 가져다 날랐다. 단식에 돌입한 김예린(36)씨는 "누군가는 이어가야 할 싸움"이라며 "임 지회장이 우리에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 임종린(38, 왼쪽) 파리바게뜨 노조 지회장이 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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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사옥 앞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간 5명의 제빵 노동자는 최유경(41)·나은경(42)·박수호(44)·서정숙(42)·김예린(36)씨다. 이들은 파리바게뜨를 포함해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파리크라상, 파스꾸찌 등 유명 먹거리 브랜드를 다수 거느리고 있는 SPC 측을 향해 "정말 누구 하나는 죽어야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것이냐"라고 입을 모았다.
카페·제빵기사로 SPC에서 일한 지 10년 됐다는 서정숙씨는 현재 갑상선 약을 매일 복용하는 중이라고 했다. 만류할 게 뻔해 담당 의사에게도 단식 계획을 알리지 않았다. 그는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까지 시대에 역행하는 사업장은 SPC가 거의 유일한 것 같다. 무리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노조할 권리 등 법에 보장된 가장 기본적 노동권을 지키라는 건데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고 했다.
▲ 파리바게뜨 제빵 노동자 5명이 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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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연차와 보건휴가는 물론 점심 한 시간도 챙기지 못하고 있다"라며 "기사들은 휴가는커녕 휴무를 반납해가며 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SPC가 2018년 어렵게 성사된 사회적 합의를 뭉개버리고 민주노조를 없애버리려 하고 있다"라며 "가족·친구들이 걱정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올 수 없는 시간이기에 걱정을 뒤로 하고 단식에 돌입한다"고 했다. 이들은 "특히 임종린 지회장의 단식이 5월 19일 종료된 이후 노사간 협의도 중단됐다"고 덧붙였다.
임 지회장은 "회사는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제빵기사들은 뜨거운 곳에서 일하며 휴식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참담하다"고 했다. 그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제가 단식할 때보다 힘들 것 같아서 걱정이다. 단식하는 노동자 중에는 집에 아이가 있는 분도 있고, 몸이 좋지 않아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분도 있다"면서도 "긴 투쟁을 승리로 끝내겠다"고 말했다.
신환섭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먹거리 체인을 가진 SPC에서 노동자들이 또다시 밥을 굶는 상황이 됐다는 게 참 서글프다"고 했다. 박영준 화섬노조 수도권 지부장은 "SPC 노동자의 처우 문제는 국민 먹거리와도 직결된다"라며 "허영인 SPC 회장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휴식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노조활동까지 방해 받으며 만들어지는 '포켓몬빵'의 진실을 안다면, 시민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파리바게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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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여명에 이르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의 노동권 문제는 지난 2017년 회사 측의 불법 파견과 비인간적으로 긴 노동시간, 연장노동수당 미지급 등이 논란이 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회적 비판이 커지자 그 해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의 불법 파견을 공식 인정, 회사가 제빵기사들을 직접고용하라고 시정명령하면서 500억 이상의 과태료를 부과했다(관련 기사: 파리바게뜨 불법파견에 철퇴, 박근혜 때와 달랐다 http://omn.kr/opcv ).
이듬해인 2018년 노조와 사측, 시민사회, 정당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SPC가 별도의 자회사(PB파트너즈)를 설립해 제빵기사들을 고용키로 하면서 과태료는 유예된 상태다. 이때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의 문제를 처음 제기한 당사자가 임종린 지회장이 있는 민주노총 노조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 이후 SPC는 민주노총 노조에 속한 제빵 노동자들에게 승진 차별을 가하는 등 노조 파괴 공작을 벌였고, 대신 중간관리자 위주로 구성된 한국노총 노조에 가입하도록 회유했다. 그 결과 한때 700명이 넘던 민주노조 노조원은 현재 200명대로 줄어들었고, 한국노총 노조원은 4000명에 이르렀다.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사측의 이같은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한 상태다.
그럼에도 사측은 민주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사회적 합의 3년 이내에 모든 제빵기사들에게 본사 직원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기로 했던 사측 약속이 지켜졌는지 확인해달라는 노조의 요구에도, 사측은 응답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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