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피난민의 걱정 "서유럽행 고민, 못 가는 이유는.."

고두환 2022. 7. 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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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도바 현지에서②] 난민 50만명 수용한 몰도바.. 휘청이는 국내 경제, 난민의 고달픈 삶

[고두환 기자]

 물자 배급을 받기 위해 피난소에 난민 등록을 하는 사람들.
ⓒ 고두환
 
전쟁 4개월, 매달 15%씩 물가 상승... 연료비는 2배 뛰어

2022년 6월 현재, 우크라이나 인접국가인 몰도바에 유입된 우크라이나 난민의 수는 50만을 훌쩍 넘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남부 거점도시 미콜라이우(Миколаїв)로 진격 중이다. 만약 미콜라이우가 함락된다면, 몰도바 국경까지 거리는 150km 남짓이다. 개전 이후, 가능성조차 거론되지 않던 몰도바 침공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몰도바 수도 키시나우시와 (재)피스윈즈코리아가 운영하는 '우크라이나 난민 피난소'엔 지난 주에만 400세대(약 2000명)가 새로 등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몰도바의 연료비는 2배가량 인상됐다. 외환보유고 30억 달러 수준의 몰도바는 러시아의 국영에너지 회사 Gazprom(Moldovagaz)에 지고 있는 채무가 62억 달러다. 가격도 수급도 모두 불안한 상황. 물가는 매달 15%씩 인상됐다. 전쟁의 위협이 높아진 상황에서 몰도바는 인플레이션을 넘어 스테그플레이션의 나락에 빠지고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요원해진 상황이고, 국내총생산(GDP) 16%를 담당하던 해외이주노동자 송금은 어려워진 상황이다. 70%가량의 노동자들이 러시아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몰도바의 민생경제는 파탄 지경으로 이르고 있다. 밀, 옥수수, 설탕 등 주요 작물 수출 역시 일시 중단됐다. 먹거리 물가라도 최소한으로 유지하겠다는 고육지책이자 침공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전쟁 전야, 극대화된 친러-친서방의 대립
 
 몰도바 수도 키시나우시에서 정당 '쇼르'가 주도한 시위. 이 시위엔 4만 명이 참여했다.
ⓒ 고두환
 
지난 6월 23일, 몰도바는 우크라이나 함께 유럽연합(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부여받았다. 몰도바 역사상 최초 친서방 성향 마이아 산두 대통령이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동시에 친러시아 성향 이고로 도돈 전임 대통령이 국가반역 및 비리 혐의로 가택 구금된 채 전격적인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러시아에서 만든 뉴스쇼, 시사해설 프로그램, 군사 영화 등 허위 프로파간다를 퍼트리면 7년 간 방송 면허를 상실시키는 '러시아 뉴스 방송 금지법'도 지난 6월 20일 통과됐다.

2014년 은행권에서 10억 달러가 사라진 희대의 부정부패를 주도했던 일란 쇼르의 정당 '쇼르'에서 주도한 시위엔 4만 명의 군중이 모이기도 했다. 'DOWN WITH SANDU(다운 위드 산두)'라는 슬로건으로 인플레이션 등 국가 위기를 주도한 마이아 산두 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이른바 '어용 시위'란 비난을 받은 이 시위대는 1시간 남짓 거리를 점거했다가 순식 간에 사라졌다.

전쟁 전야, 몰도바는 친러-친서방의 극한 대립에 빠져있다. 로타루(26)씨는 "젊은 세대는 대체적으로 친서방 성향을, 기성세대는 대체적으로 친러시아 성향을 갖고 있다"며 "어느 순간부터 대화가 어렵고, 세대마다 정치적 선택이 극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몰도바는 소비에트연방 시절, 500만 명이 살 수 있게 설계된 계획지구였다. 모든 것이 계획된 채 생계와 분쟁의 걱정없이 살아가던 시절을 그리워 하던 기성세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소비에트연방의 몰락은 계획사회의 실패를 천명했고,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로의 발전을 이룩했다는 자신만만한 젊은 세대는 대체적으로 마이아 산두 대통령에 대한 호감이 높은 편이었다.

개전 이후, 몰도바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친러-친서방의 대립을 저마다 겪고 있다.

각양각색, 우크라 난민의 처지와 현실
 
 우크라이나 난민 마리나(44)씨가 피스윈즈코리아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 고두환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마리나(44)씨는 5명의 아이들과 몰도바로 피난왔다. 개전 후, 폭격을 눈 앞에서 본 뒤 살기 위해 갑작스럽게 국경을 넘었다.

"서유럽으로 피난도 고민해 봤지만, 아직 여권조차 만들지 못한 아이들이 난민 신분으로 계속 국경을 넘으면 전쟁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에서 살아가는 데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해서 주저하고 있다. 종전이 되면 5명의 아이들과 함께 미콜라이우 농장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마리나씨의 남자 형제들은 모두 징집돼 미콜라이우 외곽에서 참전 중이다. 마리나씨와 대화를 하기 1시간 전, 러시아군의 대규모 폭격이 미콜라이우 지역에 있었다. 그를 비롯한 피난민 전체가 우크라이나 내 친지들로부터 오는 문자메시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난민 이리나(40)씨가 피스윈즈코리아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 고두환
 
오데사에서 피난 온 이리나(40)씨는 4살된 아들과 몰도바로 피난왔다. 올해 18살이 된 아들은 징집돼 함께 올 수 없었다. 야간 폭격이 시작된 날, 소리소문 없이 4살된 아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무작정 피난길에 올랐다.

"넉 달 간, 피난소 한 켠에 우두커니 앉아만 있는 4살된 아들을 보면서 어떻게든 직업을 구하고 유치원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자격을 가진 전문요리사다. 자격이 있어도 난민 신분이라 직업을 구해도 월급은 적다. 유치원 비용으로 번 돈을 모두 쓴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일을 시작할 생각이다."

이리나씨는 종전된 후에도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일단 징집됐던 18세 아들을 몰도바로 피난시키고 서유럽으로 갈 요량이다. 유고슬로비아 내전 후, 거리에 남은 무기와 불안했던 치안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그녀는 더이상 우크라이나에서 사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우크라이나 여성과 결혼한 몰도바 사람 블라드미르(33)씨는 어머니가 이탈리아에서 해외이주노동을 하고 있다. 아내와 2살된 아들은 이탈리아로 피난 보냈지만, 처가 식구들은 여전히 오데사 외곽 마을에서 살고 있다. 처가 남자들은 징집돼 복무 중이고, 마을을 폭격 지역이다.

"미콜라이우가 함락당한다면, 지체없이 이탈리아로 피난 갈 생각이다."

그의 가족들은 당분간 이탈리아, 몰도바,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생활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여성과 결혼한 몰도바 사람 블라드미르(33)씨가 피스윈즈코리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 고두환
 
자국민 복지도 어려운 국가 상황...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일상회복 시도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피난 간 국가의 도움을 받아 은행 계좌를 열거나 임시의료보험증을 발급받는 게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어렵다. 특히 몰도바나 조지아처럼 자국민에게도 경제적 여건상 해당 서비스 제공이 쉽지 않은 나라의 경우는 더욱 어렵다.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무작정 피난 생활을 유지할 수만은 없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일상회복을 시도한다. 자신은 직업을 구하고,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하려고 한다. 그러나 몰도바는 이미 자국민의 일자리와 교육 시스템도 유지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는 NGO NCUM(National Congress of Ukrainians in Moldova)은 몰도바 정부,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 NGO, 몰도바 국민, 우크라이나 난민을 모아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공생'이 가능한지를 모색하는 토론회를 매주 몰도바 TV 프로그램으로 송출할 예정이다.

"몰도바가 버텨야 우크라이나 난민도 살길이 있다"고 NCUM의 키릴씨는 말했다.

[관련 기사]
"함께 싸운다" 우크라 난민 40만명 받은 유럽 최빈국 http://omn.kr/1y8l8
 
 몰도바에서 독일로 피난길에 오르는 우크라이나 난민들.
ⓒ 고두환
 
 몰도바에서 물자를 조달하는 (재)피스윈즈코리아 물자보급차량.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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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재단법인 피스윈즈코리아 상임이사입니다. 긴급 구호 관련 활동은 홈페이지(https://peacewindskorea.or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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