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 한일재계회의에 4대 그룹 '첫' 총출동..무비자 교류 등 논의(종합)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문채석 기자] "2019년 이후 3년 만이죠?" "반갑습니다. 이렇게 만나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오하이오 (고자이마스)."(4일 한일재계회의 VIP 접견장)
코로나19 여파로 열리지 않았던 한일재계회의가 3년 만에 개최됐다. 특히 이번 회의에는 이례적으로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 그룹이 총출동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경색된 한·일 관계를 한국 경제계가 앞장서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4대 그룹 ‘첫’ 총출동 한일재계회의4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일본 기업인 단체인 경단련과 함께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제29회 한일재계회의를 개최했다. 두 단체가 직접 만나 머리를 맞댄 것은 3년 만이다.
특히 이번 회의에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면서 전경련을 탈퇴한 4대 그룹 등 대기업 사장들이 대거 참석했다. 2009년 한·일 정상회담 연계 신년 재계간담회 때 4대 그룹 회장단이 한데 모인 적은 있지만 양국 민간 고위 경제인협력채널인 한일재계회의에서 이들 그룹이 모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4대그룹에서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조주완 LG전자 사장, 이용욱 SK 머티리얼즈 사장이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전중선 포스코홀딩스 사장 등 주요 기업 오너 및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했다.
회의 시작에 앞서 만난 한·일 재계 주요 인사들은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소재·부품·장비’ ‘화이트리스트’ 등 민감한 단어는 피하고 악수와 안부인사, 협력 기대 같은 희망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양국 경제단체장은 개회사에서 재계를 넘어 양국 정상과 정부 간 조속한 대화 회복을 촉구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한·일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려 상호 수출규제 폐지, 한일 통화스왑 재개, 한국의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등 현안이 한꺼번에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도쿠라 마사카즈 경단련 회장도 "한·일 관계가 어려울수록 1998년 ‘한일파트너십 선언’의 정신을 존중하고, 양국이 미래를 지향하면서 함께 전진하는 것이 소중하다"며 "일본 경제계에서도 양국 정상과 각료 간의 대화가 조기에 재개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3년 만에 머리 맞대는 韓日 재계...현안은 무엇?
전경련과 경단련은 1982년 양국 경제계의 상호 이해 증진과 친목 도모를 위해 한일재계회의를 만들고 이듬해인 1983년부터 정례적으로 개최해 왔다. 하지만 2019년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 판결 이후 양국의 관계가 악화된 데다 2020년과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회의가 열리지 못했다. 매년 9~11월이었던 회의 개최 시기를 올해 특별히 7월로 당긴 것은 오랫동안 열리지 못했던 만큼 조속히 만나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본격적인 관계 개선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이날 회의 주요 의제는 ▲양국 경제동향 및 전망 ▲지속가능사회 실현을 위한 한일 협력 ▲새로운 세계질서와 국제관계 등 크게 세 가지다. 구체적으로 ▲상호 수출규제 폐지 ▲인적교류 확대를 위한 상호 무비자 입국제도 부활 ▲한국의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필요성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발전을 위한 한일 공동협력 ▲한·미·일 비즈니스 서밋 구성 등 한일 간 관심사에 대한 다양한 제안과 논의가 이뤄졌다.
특히 상호 수출규제 폐지의 경우 양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안정적인 공급망 연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나왔다. 일본은 2019년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종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 경제 보복 조치를 취했지만 실질적으로 양국에 실익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산 후 중단된 상호 무비자 입국제도를 부활해 인적교류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에도 양측 참석자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민간교류 정상화를 위해서는 비자면제 프로그램 부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2020년 3월 한·일 간 상호 무비자 입국제도가 중단되면서 2018년 1050만명 수준이었던 한일 상호 방문객은 지난해 기준 3만4000명으로 급감한 상태다.
한국 측 참석자들은 한국의 CPTPP 가입 필요성을 강조하며 일본의 지지를 요청했고, 미국 바이든 행정부 주도로 5월에 출범한 IPEF에서의 한일 간 협력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한국과 일본의 최대 우방인 미국과의 3국 협력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며 경제분야에서의 3국 간 실질협력 강화를 위한 한·미·일 비즈니스 서밋 구성 및 정기적인 회의 필요성에 대한 제안도 있었다.
한편 전경련과 경단련은 1998년 ‘한일 공동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파트너십’(일명, 김대중-오부치 선언) 정신 존중 및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 민간교류 정상화를 위한 비자면제 프로그램 부활 필요성 확인 등을 내용으로 하는 8개 항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공동선언문에는 국제정세가 불안정해지는 가운데 민주주의·시장경제라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한일의 양호한 관계를 유지·발전시키는것은 매우 중요하고, 이는 양국의 발전 뿐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도 기여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두 단체는 2023년의 적절한 시기에 제30회 한일재계회의를 도쿄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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