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실수, 대가 치를 것" 그래도 베르베르가 희망 거는 이유

김정연 2022. 7. 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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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이순신" 언급하는 지한파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서면 인터뷰
데뷔한 지 30년이 넘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없어도 매일 글을 쓸 것"이라며 "토끼가 계속 자라나는 앞니를 갉지 않으면 다치기 때문에 계속 뭔가를 갉아대듯, 글쓰기는 나에게 정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열린책들]


"최근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를 바탕으로 만든 미국 드라마 ‘설국열차’를 재미있게 봤고, ‘이순신 장군’에 흥미가 생겨 관련 콘텐트를 찾아보고 있어요."

'지한파' 프랑스 작가는 '한국'에 관해 물어보지 않아도 한국을 빼놓지 않고 언급했다. 지난 5월 새 소설 『행성』(1·2권)을 펴낸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1)는 서면 인터뷰에서 최근 관심을 갖고 본 콘텐트를 묻자 '설국열차'와 '이순신'을 언급하며 "새 작품을 쓸 때마다 자기 복제를 피하고,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운 과학적 소재를 찾아 공부도 부지런히 한다"고 했다.


종말적 지구, 쥐가 득세한 세상, 그에 맞서는 고양이의 지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최신작 『행성』은 폐허가 된 지구에서 범선을 타고 유럽에서 미국으로 탈출한 고양이 144마리 등의 모험을 그린다. 주인공 고양이 '바스테트'(이집트 여신의 이름), 이들이 쥐떼와 중요한 대치를 하는 자유의 여신상, 뉴욕 마천루를 상징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표지에 실었다.

소설 『행성』의 원제는 ‘고양이들의 행성’이다. 전쟁과 기후변화로 지구가 황폐해지고, 쥐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고양이가 진두지휘하는 최후의 무리가 쥐떼에 맞서 싸우는 줄거리다. 고양이 애호가인 베르베르의 최신작 ‘고양이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책에선 유럽에서 도망친 범선 ‘마지막 희망호’에 탄 고양이 144마리와 인간 12명 등이 뉴욕에 도착해, 월드트레이드센터(WTC) 2타워에 자리 잡은 다음 거대 쥐떼와 맞선다. ‘고양이 144마리’와 ‘인간 12명’은 아담과 이브가 낳은 자식 12명, 그들이 낳은 자손의 숫자인 144에서 나왔다. 베르베르는 “이전 작품들에서도 여러 번 등장시켰던 숫자인 ‘144’는 새로운 체제의 출발점이 되는 숫자"라고 설명했다.


"스스로를 지킬 힘은 필요하다"


작가는 주인공 고양이의 입을 빌려 '폭력으로 권력을 쥘 수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던지지만, 소설에서도, 현실에서도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는 힘이 필요하다”고 역설적으로 말했다.

“우리 몸을 세균으로부터 지켜주는 면역체계가 있듯, 사회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군대와 경찰 같은 장치들이 필요하다”며 “이런 장치 없이도 평화롭게 살 만큼 인간사회 모든 구성원이 성숙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지금의 세계 평화도 아이러니하게도 핵무기의 존재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갖추지 못하면 야만과 독재를 앞세운 자들에게 짓밟히고 파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류는 실수 대가 치르게 될 것", 그러나 "천재적 개인"에 희망


베르베르는 전쟁, 기후위기 등 최근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인류는 지금 저지르는 실수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면서도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 합리적으로 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 [AFP=연합뉴스]

전쟁과 기후변화로 황폐해지는 지구의 모습은 반드시 소설 속 설정만은 아니다. 베르베르는 “인류가 지금 저지르는 실수의 대가를 치르게 될 날이 분명히 올 것”이라며 “자연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고, 가장 큰 가치는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베르베르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인간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나야 보다 합리적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며 “3보 전진, 2보 후퇴, 다시 3보 전진하는 이야기를 많이 썼는데, 코로나19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은 2보 후퇴의 예지만 결국 다시 3보 전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시대에나 다른 사람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존재했고, 위기를 해결했다”며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개인의 창의성과 천재성을 믿는다”고 덧붙였다.


"16세부터 매일 규칙적으로 썼다… 무인도에서도 쓸 것"


1991년 첫 장편소설 『개미』를 출간한 이후 31년. 1961년생인 작가는 올해 61세, 예순을 넘겼다. 개미, 죽음의 세계, 과학, 동물 등 다양한 소재에 대한 소설을 써 온 그는 “30권의 책을 쓰면서, ‘전작과 다른, 새롭고 독창적인 작품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점점 커져서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시도하는 게 가장 힘든 점”이라면서도 “31년 전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건 ‘출판이 보장된다는 것'이고, 어쨌든 스트레스는 훨씬 줄었다"고 덧붙였다.

베르베르는 16세부터 지금까지 매일 규칙적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그는 “토끼는 가만히 있으면 앞니가 계속 자라 자신을 해치기 때문에 뭐든 계속 갉아야 하는데, 저에게는 글쓰기란 정신의 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꼭 해야 하는, ‘토끼가 앞니를 가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글을 읽어줄 독자도, 출판사도 없는 무인도에 있더라도 글을 쓸 것”이라며 "글쓰기는 노동이 아니라 기쁨이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점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베르베르는 최근에는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들을 위한 마스터 클래스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간 내가 쓴 소설들을 한데 모으면 거대한 또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며 “그래서 올해 초 프랑스에서 자서전 성격의 책 『개미의 회고록』을 냈다. 작가로서 이루고자 하는 바를 어느 정도 이룬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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