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부캐] 손바느질과 재봉틀, 둘 다 해 본 사람의 결론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최혜선 기자]
14년째 바느질을 하고 있지만 나는 손재주가 좋은 편은 아니다. 학창 시절 가사 실습으로 블라우스를 만들 때 배워본 후 '아, 나는 바느질을 못하는구나' 깨닫고 '내가 잘 못하는 일' 이름표를 붙여 망각의 방으로 가는 기차칸에 태워보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바느질을 하기 전, '내가 이걸 시작해도 될까',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에 남편 파자마를 손으로 만들어 보았다.
▲ 언젠가는 눈에 드러나는 바늘땀이 내가 봐도 감탄이 나오도록 손바느질을 잘 해보고 싶어졌다. |
ⓒ Unsplash |
박음질로 한 땀 한 땀 바짓가랑이를 기워갈 때의 감각이 기억난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땀이 고르지도 못한 바느질이었다. 하지만 손바느질로 10센티미터, 20센티미터를 꿰매갈 때는 재봉틀로 빠르고 예쁘게 박을 때와는 또 다른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박아온 흔적을 자꾸 되돌아보게 되었다.
시접이 풀리지 않도록 할 때 사용하는 오버로크라는 기계가 있다. 손바느질을 할 때는 대신에 감침질을 한다. 시접을 마감할 천을 두 손으로 세워잡고 바늘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계방향으로 찌르기를 대여섯 번 반복한 후 한 번에 천을 통과시킬 때 쾌감이 느껴진다.
손바느질은 한 땀 한 땀 나아가는 일이라면 재봉틀 바느질은 밟는 대로 박아지는 일이다. 바느질이 끝나야 할 곳에서 잘 멈추는 것이 능력이다. 가정용 재봉틀도 그렇지만 패턴을 그려서 옷을 하나 완성해 보는 학원에서 공업용 재봉틀을 다룰 때 그걸 느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대량 생산을 하기에 최적화된 공업용 재봉틀은 조금만 밟아도 우다다다 속도를 냈다. 처음 써보는 무릎 페달이 익숙하지 않아 '아 이건 잘 멈추는 게 능력인 일이구나' 생각했다.
재봉틀 바느질은 박기는 쉽지만, 틀렸을 때 뜯으려면 몇 배나 더 시간이 걸리는 아이러니도 함께 가지고 있다. 생각없이 박다가 박아야 할 곳을 넘겨 박아 하염없이 땀을 뜯고 있다 보면 이런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박자, 박아지는 대로 박지 말고.'
인생으로 치환해보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살아지는 대로 살지 말고 정도 되려나.
서로 다른 뇌를 쓴다는 것
몇 년 전 엄마가 자꾸 깜빡깜빡 한다며 이러다 치매 걸리는 거 아닌가 싶다고 농담을 하실 때 손을 좀 써보시라고 색년필과 색칠공부 책을 사서 보내드린 일이 있다.
손바느질과 재봉틀 바느질 중에서 고르자면 손을 움직여 한 땀 한 땀 박아가는 손바느질이 더 치매 예방 효과가 크겠지? 싶기도 하지만 재봉틀을 사용할 때는 다른 지능을 쓰게 되는 것 같다.
재봉틀로 바느질을 할 때는 저녁 9시 이후에는 재봉틀을 돌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기 때문에 재봉틀 하는 시간은 끝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낮에 재봉틀을 돌리는 시간에는 최대한 효율을 생각하며 움직여야 한다.
▲ 재봉틀을 사용할 때는 다른 지능을 쓰게 되는 것 같다. |
ⓒ Unsplash |
새발뜨기로 마무리해야 하는 밑단은 밤에 조용히 할 수 있으니 미완으로 남겨둔다. 뒷일은 손바느질을 하는 나에게 맡기는 것이다. 일의 순서를 잘 조절해서 짧은 시간 안에 옷을 완성하게 되면 스스로를 칭찬해준다. '잘 했네. 덕분에 빠르게 완성했으니 내일부터 새 옷 입겠네~'.
손바느질은 느리지만 재봉틀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다 완성한 가방의 지퍼를 열어보다 내가 지퍼를 연결하면서 주머니 내부 공간이 되어야 할 부분까지 다 눌러 박아 버린 것을 발견했다.
이럴 때는 다 분해해서 다시 만들지 않는 이상 거기에 재봉틀로 바느질 할 방법이 없다. 지퍼가 연결될 천 한 겹만 뜨려고 조심해 가며 손바느질로 마무리 해야 한다. 재봉틀로 바느질을 할 때도 손바느질 과정을 한 번 더 거치면 더 완성도 높은 옷을 만들 수 있다.
바느질 하는 사람 중에는 손바느질 하는 구간을 최대한 줄이려고 궁리를 하는 사람이 있고 조용히 손을 움직이는 것이 좋아서 손바느질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전자다. 손바느질은 내가 잘 못하는 일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거나 재봉틀로 박을 수 없는 곳에만 한다.
바늘 땀을 채우듯 살고 싶다
얼마 전 바느질 친구들과 떠난 여행에서 누빔 장인의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다. 천을 누빈 바늘 땀이 1밀리미터 정도로 가지런히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천이라는 공간 위에 눈에 보이는 모양을 가지고 펼쳐져 있었지만 동시에 만든 이의 시간이 깃들어 있는 작업이었다.
손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은, 답답한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 숨쉴 구멍을 뚫고 그 구멍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그 숨 쉴 구멍을 붙잡고서 만들어낸 작품을 볼 때 느끼는 감동이 있다.
옷을 만들어 입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느리게 사는 방식이겠지만 그 작품을 보고 나서는 내가 효율을 추구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눈에 드러나는 바늘땀이 내가 봐도 감탄이 나오도록 손바느질을 잘 해보고 싶어졌다.
'아이고 바늘땀이 참 곱네. 중학생 때 못하던 바느질을 이 나이에 이렇게 잘 하게 되었네' 하고 나를 칭찬해 줄 무언가를 손바느질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루하루는 위로 한 번 아래로 한 번 천을 통과시켜 반듯한 바늘 땀을 만들어가듯 차분하게 흔적을 만들어 가되 인생의 큰 그림에서는 멈추어야 하는 곳에서 잘 멈출 줄 아는 능력을 길러가고 싶다.
그러나 아직 나는 멈추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당분간은 위로 한 번 아래로 한 번 반듯한 삶의 흔적을 남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잘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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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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