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감자 수확으로 기부금 토대 마련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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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향숙 기자]
올해도 텃밭효자 감자 수확에 함박꽃이 피었다. 뒤늦게 감자씨를 공수해서 심은 감자였다. 남들보다 한 십여일 늦게 심었으니 그만큼 늦게 캐면 되겠다 싶었다. 하지감자라고 꼭 하지 때 거두는 법이 있느냐면서.
지난 하지(6월 21일)에 텃밭 지인들의 빈약한 수확 양을 보면서 올 봄 내린 비의 양이 야속했다. 그래도 남편은 꿋꿋했다. 감자꽃이 피었을 때도 굳이 내가 가서 꽃들을 만나야 열매가 잘 열린다고 하기에 밭에 발걸음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밭은 꽃도 없는데 우리 밭은 꽃이 만발했다. 진짜 주인이 오길 기다렸다고 남편이 꽃을 대신해 말했다. 지인들은 끝내주는 해몽이라고 만담을 주고 받았다.
7월 초 새벽 5시, 남편이 텃밭에 가서 감자를 캐자고 했다. 요즘 새벽잠이 없어 일찍 일어나 있던 터였다. 장맛비도 다시 온다는 소식에 "그럽시다"라며 무장을 하고 나갔다. 텃밭 5년차 우리 농사의 주목적은 따로 있다. '텃밭 첫 작물판매금은 기부금으로'다.
지난번 옥수수씨를 심은 후 차로 왔다갔다 눈으로만 구경했다. 그에 비해 남편은 우렁이 각시마냥 나를 대신해서 텃밭에 공력을 들인 흔적이 가득했다. 어느새 고추 모종이 자라나 고추들이 매달려 있고, 오이, 토마토, 가지들도 지지대 틀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친정엄마가 좋아하는 호박의 지지대는 천둥벼락이 친다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첫 손따기 하라고 둥그런 호박이 기다렸다는 듯 웃고 있어서 엄마에게 드릴 선물로 거두었다.
"누가 했는데, 하늘이 무심치 않을 걸요. 작년에 너무 풍작이어서 우리 욕심이 커진 건 사실이야. 무려 3배나 감자밭으로 늘려놓고 말았으니. 자 찍사 준비합니다~."
▲ 첫감자줄기를 뽑는 남편의 손길 오로지 각시에게 웃음꽃을 주고 싶은 맘, 다 받아가라하네. |
ⓒ 박향숙 |
작년에 감자밭은 두 두덕이었다. 감자씨 70여개로 무려 10kg상자 10박스를 채우고 남았다. 동네 사람들 역시 입이 벌어질 만큼 풍작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감자 심는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시장에 감자씨가 없었다. 다행히도 남편 친구들 덕분에 가져온 감자씨가 많았다. 핑계 김에 여섯두둑인 밭이 온통 감자씨로 채워졌다. 작년 수확보다 세 배를 기대하면서.
남편이 감자 줄기를 곁가지 호미질하니 감자가 달려나왔다. 첫 물건이라 호들갑을 떠는 내 소리에 새벽을 벗어나던 새들이 깜짝 놀라 날아갈 정도였다. 이번 감자도 병충해 걸린 것 하나 없이 깨끗했다. 다만 한 줄기당 나온 감자 수가 빈약했다. 작년의 삼분의 1정도였다.
"올해도 좋네. 이 정도 양이라면 여섯두둑에 20박스는 나오겠다. 당신 상자 몇 개 준비했어요. 지인들 20여 명이 기다리고 있는데."
"당연히 당신 맘을 읽고 20개 준비했지. 가장 좋은 것은 어머니 드리고 나머지는 잘 팔아봅시다. 그래야 당신 기부금도 모아지고."
첫 두둑에서 사진 몇 장 찍은 후 남편 혼자서는 속도가 안 나겠다 싶어서 바닥에 앉았다. 맘을 먹으면 끝장을 내는 성격에 남편의 호미를 받아들고 감자를 캤다. 저 멀리 땅속에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렸을 감자알을 만지니 어찌나 사랑스럽고 이쁜지.. 욕심에 욕심에 더해지기 시작했다. '오늘 여섯 두둑을 다 끝내버려야겠다. 오늘 아니면 안돼.'
두둑을 옮겨 갈 때마다 남편의 걱정도 쌓여갔다. 천천히 해도 된다고, 오늘 다 못하면 비 온 뒤 다시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미 내 맘에는 오늘 다 판매까지 끝내야 된다는 목표가 세워졌기에 아무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냥 먹을 것 찾아 앞뒤 안 보고 땅 파는 두더지처럼 열심히 감자를 캤다. 그러기를 몇 시간 하늘이 땅이 빙빙 돌았다.
"당신 미안하지만 내년부터는 감자 심으려거든 한 두둑만 해요. 각시한테 감자꽃 보여주려다가 각시 죽겄네. 이제 꽃도 감자도 싫어질려고 하네. 오메오메."
▲ 7시간의 노동결실, 감자수확13상자 기다리던 지인들이 일거에 사주어서 기부금이 저축되었다 |
ⓒ 박향숙 |
감자는 선약을 한 지인들에게 돌아갔다. 20여 박스를 기대했던 터라 못 받아간 사람들이 생겼다. 기부금 마련에 함께 한다고 가격 불문하고 무조건 달라고 했다. 매해 감사할 뿐이다. 올해도 남편과 지인들 덕분에 감자수확으로 겨울철 취약계층을 위한 바자회기부금의 토대가 세워졌다.
오늘 아침 책방에서 보내는 '시가 있는 아침편지'에는 이렇게 썼다.
'장맛비 소식에 맘이 급해 심었던 감자 수확을 했지요. 감자꽃 피고 열매 거두면서 환히 웃을 저를 생각하며 농사를 지었다는 남편. 그 맘을 듣는 저도 미안한 맘에 새벽부터 밭에 갔지요. 남편의 지극정성 덕인지 감자가 줄줄이 나왔죠. 그때부터 과욕이 붙어, 나누어서 할 일인데도 죽기살기로 끝장을 보겠다 덤비며 감자를 캤습니다.
포장까지 무려 7시간이나 밭에서 몸을 데웠으니 온전했을까요. '하루에 천리를 가는 천리마나 느릿느릿 가는 조랑말이나 그 목표는 결국 같다'는 옛 성현의 말을 듣고서야 후회했습니다. 작고 느리게 구불거리며 가는 조랑말이 되어보면 어때요. 오늘의 시는 이준관 시인의 <구부러진 길>. - 봄날의산책 모니카'
구부러진 길 /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캐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중략)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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