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년 성적표는 반쪽짜리”

사공관숙 2022. 7. 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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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30주년, 그리고 한중관계 미래' 학술회의 개최
교류보다 협력 강조했지만 한·중 간 인식의 간극 매우 커
한·중 모두 경제와 인적 교류에선 최대주의적 성과 냈으나
안보 분야에선 최소주의적 관계 유지하는데 그치고 말아
지난달 30일 ‘한중 수교 30주년, 그리고 한중 관계의 미래’ 공동학술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줌 화상회의 화면 캡처]


“지난 30년 한·중 관계는 반쪽짜리 성적표만 남겼다.”

오는 8월로 수교 30년을 맞는 한·중 관계에 대한 강준영 한국 외대 교수의 평가다. 강 교수는 지난달 30일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그리고 한중 관계의 미래’ 학술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강 교수는 한·중이 1992년 수교한 이래 지난 30년의 한·중 관계를 돌이켜보면 “경제와 인적 교류에선 ‘최대주의적’ 성과가 있었지만, 안보 분야에선 ‘최소주의적’ 관계만 유지했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성적표를 남긴 데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한중 수교 30주년, 그리고 한중 관계의 미래’ 공동학술회의가 지난달 30일 고려대학교에서 개최됐다. 사진은 두 번째 세션인 '미중전략경쟁과 한중관계 현황'의 오프라인 현장. [줌 화상회의 화면 캡처]


수교 당시 64억 달러였던 한·중 교역 규모는 지난해 말 3016억 달러로 47배 늘었고, 인적 교류도 13만 명에서 2019년 말 1037만 명으로 80배나 증가하는 등 경제와 인적 교류에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북한이 이미 핵보유국이 되는 등 한·중 수교 당시 목표로 했던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유지 측면에선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한·중이 수교 30년의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도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 해결의 시스템을 아직도 확보하지 못한 게 현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중은 상대방이 화가 났을 때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거의 모르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오해가 계속 쌓이고 한국의 경우엔 ‘친중과 반미’, ‘반중과 친미’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빠지는 걸 반복한다”고 말했다.

한·중이 갈등에 빠지게 되는 데는 북한과 북핵에 대한 구조적인 인식 차이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 교수는 진단했다.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에는 반대하지만, 북한 정권의 붕괴는 바라지 않는데 이는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미국과 일본, 나아가 한국을 견제하는 전략적 자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은 북한이 아무리 동북아의 안정을 해치는 행위를 해도 한국과 같은 편에 서서 북한을 압박하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다.

홍현익 국립외교원 원장. [중앙포토]


한·중 간의 인식 차이는 이 날 학술회의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한·중 관계 미래발전위원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홍현익 국립외교원 원장과 쉬부(徐步) 중국국제문제연구원 원장은 북핵 문제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사태, 그리고 문재인 정권의 외교정책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홍 원장은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부당한 조치가 양국의 상호 인식과 신뢰를 저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원장은 북핵 문제는 한국 국민 입장에선 단순히 중요한 문제가 아닌 사활적 문제라며 북한과 동맹 관계이자 북한 대외 교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이 북핵 해결과 관련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윤석열 정부가 대중 외교와 관련해 ‘상호 존중’을 강조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중국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는 대중 외교를 펼쳤음에도 중국이 사드 제재를 해제하지 않는 걸 보고 중국이 자기보다 힘이 약한 나라에 대해선 존중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홍 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상호 존중을 그렇게 강조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쉬부(徐步) 중국국제문제연구원 원장. [줌 화상회의 화면 캡처]


그러자 쉬부 원장은 홍 원장이 "한·중 관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비판에 나섰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홍 원장의 평가와 관련해 “설마 문 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한국의 국익을 팔아먹기라도 했느냐”고 반문했다. 쉬 원장은 “그동안 김정은 북한 지도자는 동포인 한국을 대상으로 전쟁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며 “한국이 인내를 갖고 우호정책을 견지해 나간다면 남북한 관계는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핵 문제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 한국과는 엄청난 괴리가 느껴진다.

쉬부 원장은 또 ‘상호 존중’의 문제와 관련해 세계의 큰 나라 가운데 중국처럼 이웃 국가들에 대해 우호적인 정책을 펴는 나라가 있느냐며 미국은 과연 멕시코와 쿠바 등 이웃 국가들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한국 국립외교원과 중국 국제문제연구원은 한·중 양국 외교부 산하의 대표적인 외교 싱크탱크인데 그 수장들 간의 설전에서 보이는 인식의 차이는 수교 30주년에도 불구하고 매우 크다는 걸 보여준다. 이문기 세종대 교수와 거타오(葛濤) 중국상하이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이날 한·중 간 교류는 지난 30년간 충분히 해 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협력할지에 집중할 때라고 의견을 모으기도 했지만, 홍 원장과 쉬 원장 사이에 오간 날 선 대화는 한·중 관계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박진 외교부 장관. [줌 화상회의 화면 캡처]


이날 축사에 나선 박진 외교부 장관은 “생각을 모아 이익을 더한다는 ‘집사광익(集思廣益)’이란 제갈량의 말처럼 오늘 이 자리가 한중 관계의 미래 발전을 위한 지혜와 통찰을 모으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으나 한·중 인식의 간극이 아직도 크다는 걸 확인시키는 의미가 더 컸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국정치학회,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한중사회과학학회,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등이 공동으로 개최했으며, 한·중 양국에서 74명(한국 53, 중국 21)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공관숙 중앙일보중국연구소 연구원 sakong.kwans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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