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참고 있다"는 우상호 위원장의 경고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데스크 2022. 7. 4.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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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빈으로 초대해선 홀대한 나라
중립국 선언이라도 하라는 건가
다자안보 체제는 생존 필수 요건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박홍근 원내대표가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중국이 되게 자극 받고 있는데 참고 있다. 추가적 외교 노력으로 진정시켜야 된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서 한 말이라고 한다(조선일보, 7.3).


곱씹을수록 느낌이 고약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친서방정책 선회를 두고 중국을 대신해 으름장 놓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NATO)정상회의 참석으로 중국의 심기가 크게 불편해졌다. 지금 참고 있는 상황이니까 빨리 중국 지배세력의 노여움을 풀 대안을 마련해 제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국빈으로 초대해선 홀대한 나라

아마 그런 뜻인 듯하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도 하지 않을 말을 원내 제1당의 대표자가 이처럼 당당히 할 수 있다는 게 어이없고 놀랍다. 그러니 어쩌자는 것인가. 문재인 정부 초기에 내놨던 ‘3불 정책’을 재확인시켜줘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거기에 ‘반(反) 서방정책’을 보태야 한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해줄 일이다. 그냥 ‘중국의 오해를 풀기 위한 후속 외교적 노력’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난을 위한 비난’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였던 2017년 12월에 3박4일간의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그 이전인 10월 31일 한·중은 외교협의를 통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을 봉인했다고 발표됐었다. 그때 나온 게 이른바 ‘3불 정책’이다(한국은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편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안보 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게 한다).


문 정부는 그게 논란이 되자 한·중간의 합의사항이나 대중국 약속이 아니라 우리 측의 입장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하나마나 한 소리였다. 중국에 대해 다짐을 해놓고 국민 상대로는 엉뚱한 변명을 늘어놓은 것이다. 중국은 ‘3불(不)’에 더해 ‘1한(限)’까지 요구했다. 이미 배치된 사드의 운용도 제한하라는 뜻이었다.


그 굴욕적 서약을 한 것으로 사드 문제가 풀렸으면 또 모르겠다. 중국의 홀대는 ‘국빈’에게 노골적으로 가해졌다. 문 대통령은 중국에서 가진 10끼의 식사 중 8끼를 ‘혼밥(중국 측이 대접하지 않은 식사)’으로 때워야 했다. 그쪽 인사들과 나눈 식사는 2끼에 불과했는데 한 번은 공식 국빈만찬, 그리고 또 한 번은 천민얼 충칭시 당서기와의 오찬이었다.


의도적 무시·괄시는 그 정도로 그치지도 않았다. 우리 국가원수가 국빈방문 일정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취재기자들을 중국 측 경호원들이 폭행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폭력을 휘둘러 기자에게 중상을 입힌 경호원들과 책임자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지금까지도 들은 바가 없다.

중립국 선언이라도 하라는 건가

우 위원장도 중국의 사드 보복, 3불 정책, 국빈방문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방송을 통해 “어느 한 쪽의 환심을 사려다가 어느 한쪽이 앙심을 품게 하면, 그건 외교를 잘한 게 아니다. 균형외교는 가운데에서 국익을 택하는 것”이라며 ‘오해를 풀기 위한 후속 노력’을 윤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그래서 묻고 싶다.

“문 전 대통령의 국빈방문이었는지 진사(陳謝)방문이었는지 알 수 없는 그 행보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요? 중국에 대해서는 ‘높은 산봉우리’라며 과공 과찬을 아끼지 않고, 우리 스스로는 ‘작은 나라’라고 자기비하를 주저하지 않은 결과로 한중 관계는 얼마나 발전했나요?”

‘균형외교’가 그럴듯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공허한 말 꾸밈에 불과하다. 무슨 균형을 말하는가? ‘균형’이란 상대방이 인정할 때에만 성립되는 개념이다. 각국의 요구가 다 다른데 어디서 어떤 균형을 찾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경제·정치·국방·안보 등 분야별 균형인지 총괄적 균형인지도 규정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냉전 최대 피해자로 분단된 나라인데, 신냉전 외교에서 어느 한 쪽 진영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중국이 긴장하고 있지 않느냐.”

우 위원장이 이렇게 말했다는데, 선택을 요구하는 게 ‘냉전’ 체제의 속성이다. 과거 동서 냉전체제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고 균형이든 고립이든 취할 수 있었던 나라는 중립국뿐이었다. 우리가 중립국 선언을 할 수 있는 입장인가? 그것 말고 우 위원장이 말하는 ‘신냉전 체제’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균형은 어떤 것일 수 있는가.


중국에 밉보이면 경제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런 인식을 갖는 순간 우리는 중국의 자발적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 중국이 보복을 할 수도 있고, 호혜적 관계를 이어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응전략은 우리가 세워야 한다. 중국의 선의(善意)를 구걸할수록 저들의 오만이 커진다는 것을 왜 역사에서 배우려 하지 않는지 답답하다.

다자안보 체제는 생존 필수 요건

‘시장 다변화’ 전략을 비웃듯 하는 어투도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 시장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라 세계 범위로 시장을 넓히자는 것 아닌가. 중국 시장 일변도의 교역정책으로는 우리 경제의 취약성을 키우고 만다. 중국이 바라는 바도 다르지 않다. 시장과 경협의 다변화야 말로 중국의 한국 경시(輕視) 태도를 교정하는 묘약이 될 것이다.


안보 면에서는 더더욱 ‘중국의 덫’을 피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대한 중국 측 모범답안은 언제나 ‘평화적 해결’이다.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에게도 가능하지 않다. 중국은 적극적으로 북한의 핵무장과 군비확장을 저지한 적이 없다. 하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평화적 해결’ ‘외교적 해결’을 되뇌는 동안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했다. 우리와 국제사회의 숙제는 해가 가면 가는 만큼 더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한·미·일 안보협력체제가 와해되는 경우 동북아지역의 패권은 중국에 넘어간다. 그 이후 한·중관계,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예상하긴 어렵잖다. 역사 속에서 중국 인접국가로서의 우리 처지가 어땠는지를 다들 기억한다. 현실 세계에서 다자안보체제는 필수적 생존 요건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이건 생사가 걸린 문제다. 우리의 안보 환경 하에서 ‘균형 외교’란 어떤 것일 수 있는가? 말로는 그럴듯하지만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대안 아닌 대안이다.


그래서 말인데, “중국이 참고 있다”는 따위의 생뚱맞은 위협은 당사자가 명시적으로, 당장 거둬들이는 게 좋겠다. 아무리 여야의 입장이 다르다 해도 그게 우리 대통령을 향해 원내 제1당을 대표하는 우리 국회의원이 할 말은 아니잖은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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