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명대사㉔] 엘비스·장국영, ‘발 없는 새’의 찬란하고도 슬픈 숙명
발 없는 새 얘기 알아?
땅에 내리지 못해.
평생을 하늘에서 살지.
지치면 날개를 펴고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잠들어.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리는데
바로 죽을 때지.
영화 ‘엘비스’(감독 바즈 루어만, 수입·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2022)에 나오는 대사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영화 ‘아비정전’(감독 왕가위,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1990)에서도 보았다.
대중의 큰 사랑을 받으며 화려한 일상을 살지만,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는 영혼의 고독은 빅스타의 운명인 걸까.
백인이면서 흑인의 리듬앤블루스 음악을 하며 인종분리주의를 존재 자체로 부인하고 가교를 놓았던 전설의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하는 미모와 감성으로 은막을 아름답게 드리웠던 배우 장국영. 그들은 발 없는 새였고, 살아있는 동안 멋지게 창공을 날았지만 쉬지 못했고, 40대의 나이에 요절했고,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는 삶을 살았다는 것은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사후에나 알게 됐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했던 수많은 사람의 ‘밥’을 위해 그토록 원했던 월드투어를 떠나지 못한 채 끝없이 국내 무대에 오르다 1977년에 우리 곁을 떠났고, 그의 나이 42세였다. 그로부터 13년 뒤 장국영은 ‘아비정전’에서 아비가 되어 ‘발 없는 새’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더니 13년 뒤 스스로 땅에 착지했고, 그의 나이 47세였다. 그로부터 19년 뒤 영화 ‘엘비스’가 세상에 나와 ‘발 없는 새’의 전설을 다시 꺼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 있다. 암살설을 제기하기도 하고, 외계인설을 거론하며 잠시 지구에 왔다 그의 별로 돌아간 것일 뿐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너무 사랑해서다, 아직 보내고 싶지 않아서다. 애니메이션 ‘코코’의 상상처럼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 여전히 로큰롤 공연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게 어쩌면 가장 덜 슬프다.
영화 ‘엘비스’는 시작부터 과연 엘비스 프레슬리가 왜 죽었을까, 누가 그를 죽게 했을까의 화두를 던진다. 톰 파커 대령(톰 행크스 분)의 혹사와 착복, 그에 따른 약물과 주사, 무대에 오를수록 쌓이는 빚, 사랑하는 아내와의 이별과 자연스레 동반된 사랑스러운 딸과의 생이별 가운데 하나일지 그 전부일지 혹은 그 외의 이유인지.
영화는 전대미문의 톱스타, 가수를 보고 흥분해도 되는지의 죄의식을 일깨우고 죄의식을 깨뜨리며 여성들의 해방구를 만들었던 엘비스의 생애를 따라간다. 엘비스가 살아온 듯 전율을 일으키는 무대가 펼쳐지기도 하고 그의 인간적 고뇌와 열정, 사회적 의식이 조명되기도 한다. 자체로도 푹 빠져 볼 법한데, 실은 그 모든 이야기가 엘비스 프레슬리를 죽게 한 ‘원인’과 결부되어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그러다 영화 말미에 톰 파커의 주장을 통해 제기되는 원인은 심히 충격적이다,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는 이유여서 심적 충격이 더욱 크다.
‘무엇이 전설의 로큰롤 황제를 죽게 했을까’만 파고드는 영화라면 연출이 바즈 루어만에게 맡겨지지 않았을 것이다(재미진 다큐멘터리영화 전문가 마이클 무어 감독이었을지도^^). 영화 ‘물랑 루즈’로 음악을 영화로 다루는 천재임을 과시했고,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입지전적 인물을 어떻게 영화로 조망해내는지 일러줬고, ‘로미오와 줄리엣’ ‘오스트레일리아’를 통해 운명의 대서사시 안에서 사랑을 풀어가는 방법을 익히 보여준 바즈 루어만 아닌가. 루어만 감독은 자신의 모든 재능을 통털어 영화 ‘엘비스’를 완성했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과 인생을 펼쳐냈다.
마치 퀸의 음악, 그중에서도 프레디 머큐리의 천재적 생애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듯 영화 ‘엘비스’를 충분히 즐기노라면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어떤 연유로 흑인음악을 온몸으로 깊이 체화하게 됐고,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 필연적으로 전 세계를 뒤흔드는 스타가 됐고, 흑백분리 정책 속에 이를 반대하는 마틴 루터킹 목사가 죽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또 암살당하는 혼란 속에서 우리가 바라볼 곳이 어디이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그가 얼마나 목소리 높여 얘기하며 대중을 위로했는지.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저 다리만 요란하게 떨어대는 스타가 아니었다는 것만을 알게 되는 게 영화 ‘엘비스’의 미덕이 아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장국영, 세상이 사랑한 별들을 ‘발 없는 새’로 만드는 건 무엇이고 누구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과거가 된 죽음이 아니라 미래의 안타까운 죽음을 줄이는 방법이 얼핏 보인다. 스타나 스타를 키우는 기업뿐 아니라 스타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뒤늦은 후회’를 다시는 맞이하고 싶지 않다.
사람 엘비스가, 영화 ‘엘비스’가 우리에게 말한다.
“어린 시절, 전 몽상가였죠. 만화책을 보면 책 속 영웅이 된 것 같고, 영화를 볼 땐 영화 속 주인공이었죠. 전 꿈을 모두 이뤘습니다, 훨씬 더 근사하게요. ‘아직 내 사랑인가요?’, ‘당신 사랑이 필요해요’. 어릴 때 배웠습니다. 노래가 없으면 하루가 마무리되지 않고, 노래가 없으면 친구도 없으며, 노래가 없으면 변화도 없다. 노래가 없으면…. 그래서 계속 노래했습니다.”
“그 사람 입장에 서거나 무력하게 지켜본 적 있나요. 그동안 당신의 심장은 멈춰가요. 그러니 형제를 도와주세요, 당신을 창조한 신이 그도 창조했으니. 비탄에 잠긴 형제를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여러분, 정말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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