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욱의 야단법석(野壇法席)] 조윤선만 남았다
박 특검 사퇴로 특검 자리 공석된 채 무작정 방치..'문화계 블랙리스트' 재판 1년이나 지연
후임 특검 임명 안 한 文 전 대통령 잘못..尹정부서 새 특검 임명하든지 국회서 특검법 개정안 내야
진영의 악마적 쾌감의 희생양 '조윤선', 손발 묶여 세월만 탕진..불합리한 족쇄·억울한 굴레 벗겨줘야
지난해 7월 7일,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특검)가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가짜 수산업자’ 김 모 씨로부터 포르쉐 렌터카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박 특검은 ‘사직의 변’에서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변했는데, 이것이 뒤에 후술될 파장과 논란을 잠식할 ‘정당한 사유’였는지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든 당시 청와대는 다음날 바로 사표를 수리했고 박 전 특검은 두 달 후 검찰에 넘겨졌다. 최근에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지만 기각됐다고 한다. 특검은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박 전 특검은 지난 대선 판을 달군 ‘대장동 정국’에 더욱 화려하게 각인돼 있다. 박 전 특검의 딸이 대장동 개발 민간업체인 화천대유자산관리에 근무하며 회사에서 11억 원을 받은 의혹이 제기되고 이른바 ‘50억 클럽’에 박 전 특검이 거론됐다.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칼잡이인양 무소불위의 칼춤을 추다 포르쉐와 대장동 한 방으로 무너진 옛 특검의 노래를 부르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가 사퇴해 특검 자리가 공석(空席)이 되면서 특검팀이 기소해 법원에서 재판 중인 관련 사건이 1년이나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검사 없이는 재판이 진행될 수 없는 게 현행법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출범한 특검팀이 기소한 사건 가운데 현재 법원에 남아 있는 사건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혐의를 받는 사건이다. 서울고등법원에서 파기환송심(대법원이 2020년 1월 일부 무죄 취지로 2심 판결을 깨고 다시 돌려보냈다.)이 진행 중이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는 사건도 특검이 기소했지만 이 사건은 지난 4월 대법에서 최종 판결이 났다.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대법원에서는 검사 없이도 재판이 진행될 수 있어 가능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국정농단 특검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특별검사가 사망하거나 사퇴서를 제출하면 지체 없이 국회에 통보하고 후보자 추천을 의뢰해야 하는데 ‘특검 사임 통보’만 한 상태라는 것이다. 박 전 특검을 박근혜 정부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추천했는데, 이후 국민의당의 변심과 소멸로 후임 특검 자체를 임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처음부터 박 전 특검의 사표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여론의 관심이 쏠리고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복잡한 사건은 아예 무조건 미루고 보는 재판부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대법원에서 법리 해석을 정해주고 파기환송을 한 것이라서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심리 진행 자체를 외면했다는 힐난이었다.
특검법 자체가 특검이 있어야만 소송이 이뤄지게 돼 있고 특검만 있으면 그 권한을 검찰에게 넘겨줘 대리 재판까지도 할 수 있지만 특검이 없으면 이 모든 것이 단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혹자는 검사도 재판의 당사자인 만큼 검사가 특별한 사정으로 불출석할 경우 그냥 검사 없이 재판을 진행해 종결할 수 있는 궐석재판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지만, 단독 재판부에서 심리하는 간단하고 단순한 사건도 아니고 대통령이 임명해서 발족한 특검팀의 기소 사건인데 검사 궐석재판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1960년대에 검사 궐석으로 이뤄진 재판이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긴 하다.)
결국 방법은 3가지이다. 윤석열 정부가 새 후임 특검을 임명하든지, 국회가 기존의 특검법에 대해 ‘특검이 아닌 기존 검찰에서 공소유지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부칙 조항을 넣은 개정안을 내든지, 이도 아니면 이참에 국정농단 특검법 자체를 국회가 아예 폐지해 대등 검찰청으로 재판을 넘기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지금 와서 겨우 공소유지 하나 시키자고 새 특검을 임명하는 것은 시간과 예산 낭비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고, 눈만 뜨면 싸우느라 원구성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국회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 리 없다. 설사 눈길을 준다손 치더라도 여소야대 원내 지형에서 민주당이 흔쾌히 해줄리 만무하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맹점(盲點) 상황에서 말라가는 것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피고들이다. 검사가 없어 재판이 계류 중인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몇 년 안에 심리를 끝내야 한다는 규정도 없기 때문에 이런 상태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지속될지 알 수가 없다. 5년, 10년, 아니 20년도 갈 수 있다. 설사 인간이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나면 갱생(更生)의 삶이 주어지는 것이 법의 이치이다. 하물며 진영의 악마적 쾌감을 위해 마녀사냥식 희생양이 됐던 조윤선 전 장관은 사면도 복권도 안 된 채 50대 세월을 기약 없이 탕진만 하고 있으니 스스로도 기가 찰 것이다. 정녕 그녀를 향한 지난날의 광기는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여겨지는 선망의 대상을 낱낱이 파괴하고 갈기갈기 찢어 추락시키려는 눈 먼 자들의 희열과 배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빗줄기가 사선으로 세차게 땅 위를 치받던 날, 우연찮게 만난 그녀에게 물었다. 14개월 동안의 그 곳 생활은 어떠했냐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모처럼의 방학처럼 책과 운동을 가까이했다고 했다.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다고 했다. 다만, 마지막 두 달은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고도 물었다.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세월이 아니었다고 했다. 어지간히 다 해봐서 더는 자리 욕심도 없다고 했다. 다만, 적당한 시점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험블(humble, 겸허한)하게 봉사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고 했다. 어떤 평가와 선택을 받든 이제는 사람들의 몫이다. 불합리한 족쇄와 억울한 굴레 없이 세상과 마주하게 해주는 것이 위정자(爲政者)들의 몫이다. 조윤선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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