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블스 정은혜 "연기? 타고난 실력이죠"
다큐 영화 <니 얼굴> 제작 이야기와 함께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6월 30일 서울 안국역 근처 커피숍에서 정은혜 캐리커처 작가와 함께 그의 어머니인 장차현실 작가 그리고 정 작가의 아버지로 <니 얼굴> 연출한 서동일 감독을 만났다.
“드라마 끝나고 바빠졌죠”
-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와 다큐 영화 <니얼굴> 개봉으로 바쁘실 것 같은데 요즘 어떠신가요?
정은혜 작가(이하 정): “드라마 끝나고 맨날 인터뷰 하고 바빠졌어요.”
- 인터뷰하면 어때요
정: “재밌죠. 별로 힘들지 않고요.”
- 어머님은 어떠세요?
장차현실 작가(이하 장): “힘들어 죽겠어요(웃음).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아요. 은혜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아주 사소한 궁금함부터 ‘은혜 씨 뭘 좋아해요?’, ‘은혜 씨 뭐 하는 게 좋아요?’라는 걸 물어주고 그걸 또 귀담아들어 주고 그런 것 자체가 참 기분 좋아요. 물론 저희가 은혜 씨 데리고 맨날 로드 매니저 하느라고 힘들긴 하지만요.”
- 드라마 출연 전에도 작가님 좀 알려지지 않았나요?
장: “알려지긴 했어도 기복이 있죠. 지속해서 관심이 있는 존재로 여겨지는 게 아니라 때로는 굉장히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하고 또 ‘저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나 전철을 타고 집에 가는데 ‘길 잃어버린 거 아니야’라는 시선들이 은혜를 마음을 힘들게 했던 것 같아요.”
- 지금은 그런 시선이 없을까요?
장: “은혜 씨는 발달장애가 있는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언어적 표현 ‘나는 힘들어. 나는 사람들이 날 보는 게 싫어’ 또는 ‘나한테 왜 그렇게 말하지’라는 방식의 대화가 가능하지 않은 부분이 있죠. 그런데 언어 표현이 힘든, 발달장애가 있는 은혜 씨가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걸 제가 알게 되었어요. 틱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라고요. 처음에는 말을 더듬더라고요. 그다음에 이를 갈아요. 그러더니 시선 강박증이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 어머님이 힘드셨어요?
장: “많이 힘들었죠. 저희는 은혜가 학령기를 받을 때까지도 굉장히 다양한 교육을 제공했다고 생각하고 또 정보력도 있으니까 어린이집서부터 가장 좋은 어린이집을 찾기도 하고 장애 통합 곡교어린이집이라고 장애 비장애 통합이 국공립에서 처음 생긴 곳이에요. 또 학교도 일반 학교 다니다가 시골 작은 학교도 다니고 홈스쿨도 해보고 대안학교도 다니고 여러 가지 과정을 하면서 나름대로 또 치료도 하고요, 그런데 얘가 청년기 되어 갑자기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어지고 자기 방에서 처박히기 시작하면서 퇴행이 오기 시작한 거예요.”
- 그러면 어떻게 하셨어요?
장: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시선 강박감이 깊어지면서 조현병의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선배 엄마들은 이제 약을 쓸 때가 됐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사회적 관계의 단절 다운증후군의 사람들은 관계성이 있어요. 관계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사람을 좋아해요. 그러나 그게 비장애인이 가진 사회성과 같지는 않죠. 그 욕구가 차단됐을 때 이 사람이 몸으로 그런 증상들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그게 좋아지기 시작했던 거예요.”
- 영화 개봉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서동일 감독:(이하 서): “관객과의 대화하면 뜨거워요. 마치 은혜 씨의 팬 미팅 장을 방불케 하는 굉장히 뜨거운 열기인데 그게 왜 일반 극장으로는 연결이 안 되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 영화는 어떻게 만들게 되셨어요?
서: “다 큰 딸이 뜨개질하면서 집 안에만 있는 모습 보기가 너무 암담하고 슬펐죠. 타고난 외모와 언어적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죠. 그래서 사회적 관계 형성이 잘 안되던 때에 은혜 씨 스스로 자기만의 소통 방법을 찾아낸 거죠. 그게 그림이었던 것이에요. 그림을 통해서 비로소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름의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간 거죠. 그런 모습을 보며 그동안 외면했던 딸의 다른 면을 보게 됐고 그래서 그 마음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림 그리는 과정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 다큐는 어느 정도 객관화시켜야잖아요. 그러나 감독님은 가족이라 객관화가 어렵진 않으셨어요?
서: “뉴스는 객관성과 중립성이 중요하죠, 또 다큐멘터리도 일반적으로 그런 관점들이 있는 것 같은데 저의 태도는 편에 선다고 할까요. 저는 싸움의 현장에 들어가서도 그것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 현장에서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카메라가 지원군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편에 서서 그 현장을 기록했던 것 같고 은혜 씨도 마찬가지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제가 카메라를 들었기 때문에 이거를 객관화라기보다는 편이 되어주고 그 사람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저는 카메라 드는 태도였죠. 다만 가정이 보이기보다는 은혜 씨의 존재가 조금 더 주체적으로 돋보이고 성장하는 한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은 노희경 작가님이 제의해 주셨다고 하는 데 어땠어요?
장: “처음에 (노희경 작가) 뵀을 때는 은혜 씨 섭외하려고 만난 건 아니에요. 그때가 2020년이었고 그때 은혜 씨가 서촌 근처에서 전시회도 했어요. 노 작가님이 그림 보러 오고 싶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오셨는데 오신 의중이 은혜를 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새로 드라마를 쓰는데 노희경 작가 드라마에는 다 장애인분이 한 번씩 나와요. 이번에는 다운증후군을 그 드라마에 녹여보고 싶대요. 은혜 씨가 예전에 영화에 나온 것도 그리고 유튜브 채널도 보시고 찾아오신 거죠. 그 후에도 몇 번 만나더니 아예 나중에는 출연해달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우리들의 블루스> 속의 영희는 평소 우리가 보던 은혜”
- 연기해 본 적 있나요?
장: “전혀 없어요. 그림 그리고 있었고 연예인 쪽은 전혀 생각을 안 해봤었어요.”
- 드라마 보니까 어때요?
장: “대본을 본 것과 드라마를 본 건 너무 다르더라고요. 그리고 저희는 그 전체의 대본을 본 게 아니라 은혜만 나오는 14, 15회만 본 거예요. 그리고 촬영이라는 게 1번부터 10번까지 순차적으로 촬영을 한 게 아니라 처음에 한 한 8번쯤 촬영하고 2번 촬영하고 10번 촬영해요 그러니까 이게 전체적인 플로우로 느껴지기는 어려웠었죠. 그래서 드라마 보면서 저도 울고요.”
- 드라마 속 영희와 실제 정 작가님의 차이가 없나요?
장: “없어요. 평소에 우리가 보던 은혜예요. 평소에도 뜨개질하고 그림 그리고 그 말투 사람들하고 같이 어울리는 거 좋아하고 술 마시는 거 좋아하고 그런 모습이 그냥 그대로 있더라고요.”
- 연기해보니 어때요?
정: “‘연기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실감이 났어요.”
- 대사 외워야 하는데 어렵진 않았나요?
정: “타고난 실력이죠.”
- 어떻게 준비했나요?
장: “지금 생각해 보니까 진짜 너무 준비가 없었네요(웃음). 그걸 위해서 연기 학원에 다닌다거나 그런 것도 전혀 없어요. 아빠가 대학 때 연극 동아리를 하고 혜화동에서 단역 같은 거도 했죠. 근데 노희경 작가님이 연습시키지 말라고 했어요. 그냥 생 은혜 모습이 나오기를 바라신 것 같아요. 그래서 대본이 은혜와 동떨어진 대사들이 아니었고 현장에서 게으름 피워서 대사를 다 못 외우고 갔을 때는 같은 연기하는 한지민 배우가 은혜 대사까지 다 외워 은혜가 더듬거리면 옆에서 쳐주기도 하고 그러시더라고요.”
- 배우들하고 호흡은 어땠나요?
장: “저는 거기에 있는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들까지도 사람들이 사전에 교육받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매사 굉장히 저한테 물어보는 배려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드라마상 한지민 배우가 동갑으로 나오고 김우빈 배우는 동생으로 나오잖아요. 처음부터 말을 놓았어요. 그래서 ‘어 그래 우빈’ 그리고 한지민 배우하고도 그러고요. 근데 연기를 하다가 거의 끝 무렵에 은혜 씨가 검색하다 보니 김우빈 배우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걸 아는 거예요. 그런데 시침을 뚝 떼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드라마 마지막 날 끝나고 나니까 ‘우빈 오빠’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다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웃음),”
- 왜 그랬어요?
정: “드라마상 정준이었기 때문이죠.”
- 촬영할 때 에피소드 있나요?
장: “은혜가 완전히 야행성이에요. 밤늦게 자고 아침에 절대 못 일어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감독님한테 되도록 은혜의 촬영 시간을 오후로 잡아달라고 요청할 정도로요. 근데 전체 스케줄 상 그럴 수가 없잖아요. 새벽 5시에 콜이 있어요. 근데 은혜가 일어나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일어나요. 약간 좀비 같은 형태로 일어나서 가요(웃음). 아침 촬영할 때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어요.”
- 요즘 발달장애 문제가 뉴스에 나오잖아요. 주로 부모가 발달장애 아이와 극단적 선택 했다는 거죠. 그런 뉴스 어머님은 어떻게 보세요?
장: “저도 그런 감정의 기복이 많았었던 것 같아요. 은혜의 처참한 삶을 보면서 저는 감정이 어땠겠어요? 그런데 도대체 왜 이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인으로 태어나거나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두었을 때 왜 불행한지 들여다보면 충분히 그렇게 내몰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은혜가 어릴 때 국가적 지원을 받으려고 동사무소에 갔을 때 동사무소의 태도가 마치 뭔가를 얻으러 온 사람인 양 대하는 태도였어요. 그때 제가 혼자 살 때였는데요. 사람들이 많은 데서 ‘이혼했어요? 애는 말을 해요? 말 못하나?’란 말을 툭툭 내뱉어요.”
- 너무 상처가 크셨겠어요?
장: “그럼요. 그래서 제가 무슨 생각이 들겠어요? 그럴 때 드는 생각이 뭐냐면 ‘더러워서 못 살겠다. 그래 내 자식은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뒷걸음질 치게 되는 거죠. 거기다가 부양 의무제라는 게 있잖아요. 부양 의무제의 메시지는 뭐예요? ‘너의 불행은 너희 것이야 국가를 탓하지 마’라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분노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국가의 도움 필요 없어. 내 자식 내가 키울 거야’라고 제가 돈 열심히 벌어서 은혜를 키웠죠. 그런데 은혜가 20살이 됐을 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영역을 넘어가는 거예요. 거기다 저는 늙어가고요. 그래서 다시 그때는 양평에 살았으니까 면사무소를 찾았어요. 20살이 넘은 은혜에게 ‘얘는 혼자서 다 해요.’라고 여전히 그 말투는 변하지 않았더라고요. 제가 ‘은혜 씨’라는 말을 쓰게 된 것도 그래서예요. 20살이 넘었는데 애 취급해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면 ‘은혜 씨’라고 더 크게 얘기해요. ‘이 사람은 성인이에요’라고 얘기하고 싶은 거죠.”
- 공무원들이 장애를 보는 시선에 대해 말씀하셨잖아요. 지금은 어때요?
장: “조금 나아진 거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 여전하죠. 또 저희 사는 양평 지역은 속도가 더뎌요. 저희가 양평에서 부모 운동하지만, 그런 것들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그러나 싸움의 의미가 없지는 않은 것 같아요. 부모 운동을 이렇게 삭발하고 단식하고 싸우면서도 ‘언제나 바뀌겠어? 우리 애 죽은 다음에’란 생각을 예전에 했는데 요즘엔 바로 바뀌어요. 그래서 더 부모들이 가열차게 부모 운동을 하는 것 같고요. 하지만 정보에 취약한 부모들은 굉장히 어렵게 살고 있어요. 자기가 알아서 신청해야 받는 거예요. 아마 그 아이와 함께 돌아가신 분들은 어찌 보면 그 폐쇄적인 상황에서 같이 돌파구를 찾지 못한 것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세상에 나와서 더 손잡고 더 많이 열린 곳에서 함께 길을 모색한다는 게 최고로 중요해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해주세요.
서: “<니 얼굴> 영화는 언어적 소통이 어려운 은혜 씨가 그림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면서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인데요. 은혜 씨가 그렇듯이 세상에 많은 발달 장애인들이 언어적 소통의 어려움 속에 있는데 우리가 그들이 가진 비언어적 소통 방식에 우리가 좀 더 따뜻한 관심으로 들여다봐서 그들이 세상에 나와서 사람들과 소통이 좀 더 자유로워지는 것들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정: “저는 작가니까 계속 그런 걸 그리고 엄마처럼 늙어서 오래 그릴 거예요.”
장: “저희의 삶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하여튼 계속 끊임없이 깊은 파도타기였던 것 같아요. 저희 부부도 가난한 예술가고 거기다가 은혜가 또 그림을 그리게 됐고 그런데 지금의 삶들을 보면 우리가 예술을 하고 있어서 얼마나 또 다행인지 몰라요. 결국 예술이 은혜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구했다고 생각하게 돼요. 장애 가진 부모님에게 제가 무슨 조언을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사실 그분들의 삶은 가장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조금 더 바깥으로 나와서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또는 나의 아이를 포기하지 말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았으면 하는 게 저의 마음입니다.”
이영광 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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