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릴레이 삭발, 사상 초유 '경란'?.."검란과 다르다" 이유 셋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추진에 대한 경찰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관가와 정치권은 사상 초유의 ‘경란(警亂)’ 발생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관기 충북 흥덕경찰서 직장협의회 대표 등 4명의 경찰관은 4일 경찰청(서울 서대문구 소재) 앞에서 삭발식을 진행하고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호소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호소문에는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직접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경찰은 자연스럽게 정권의 눈치를 보게 되고, 개별 수사에도 정권의 입김이 미칠 우려가 매우 커진다”는 내용이 담긴다. 지난달 30일 류창민 일산동부경찰서 직장협의회 대표가 경기북부경찰청 앞에서 삭발 1인 시위에 나선 이래, 일선 경찰서 직장협의회 대표들이 릴레이 삭발 투쟁이 번지는 양상이다. 5일에는 인천 삼산서, 충북 상당서, 경남 김해중부서 직장협의회 대표 등이 세종시 행안부 청사 앞에서 삭발식을 진행할 계획이다.
‘폴넷’에 오른 ‘대응 전략’ 문건이 시발
지난 5월 말부터 행안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의 경찰국 신설 논의가 보도되면서 경찰 내부망인 ‘폴넷’엔 격한 반대 주장이 들끓었다. 이 중 지난달 28일 전남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 올린 ‘경찰 민주·중립·독립성 말살 정책에 대한 대응 전략’ 글은 큰 화제가 됐다. 이 경찰관은 30쪽에 달하는 글에서 “행안부는 경찰국 설치를 시작으로 13만 경찰을 정권의 시녀로 두기 위한 경찰 통제장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의 노조 격인 직장협의회를 콘트롤 타워로 두거나 윤석열 대통령의 ‘경찰청장 장관급 격상’ 공약 이행 촉구 요구, 1인 시위 메시지 전파 등을 대응 방안으로 제시했다. 해당 글엔 ‘피가 끓어오른다’ ‘적극적인 행동만이 우리 의지를 관철할 것’과 같은 지지 댓글이 이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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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란까지 이어질까?…내부서도 ‘회의적’ 전망
일선 경찰의 집단행동 조짐이 짙어지고 있지만 전면적 집단행동인 ‘경란(警亂)’으로 번질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다는 게 경찰 내부의 전망이다. 지난 4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국면에서 검찰 내부에서 직급별 검사회의가 열리고 검찰 간부들의 입장문 발표가 이어지는 등 조직적 반발에 나섰던 ‘검란(檢亂)’때와는 상황과 여건이 다르다는 것이다.
행안부에 맞서던 김창룡 청장 사의 표명으로 저항의 탄력이 사라졌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된다. 김 청장은 지난달 27일 행안부가 경찰제도 개선 자문위원회 권고안을 받아들여 경찰국 신설 등을 발표하기 직전에 사의를 표명했다. 아직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지만, 경찰은 당분간 윤희근 경찰청 차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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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만 경찰공무원, 출신도 다양…“단합 안 돼”
검찰과 달리 인원수(약 13만 명)는 많지만 출신과 및 배경이 다양하다는 점도 집단 행동이 어려운 이유다. 경찰대·간부후보·순경 등 출신에 따라 각각의 이해관계나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한 예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선 경찰국 신설 이슈를 두고도 경찰대·비(非)경찰대 등 출신에 따라 상대방의 주장을 폄훼하는 댓글이 달린다고 한다.
한 일선서 간부는 “출신에 따라 서로 갈라치는 듯한 내부 분위기가 있어 현안을 두고 통일된 하나의 입장을 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현 상황에 분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관조하는 듯한 입장도 꽤 있다”고 전했다.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선 “이 와중에 정권 눈치만 보고 있는 사람(경찰)이 없을 것 같나”는 자조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직접 행동에 먼저 나선 직장협의회의 대표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간부후보 출신 한 경위는 “수사부서 등에서 일하는 일선 경찰관들은 자기 일에 바빠 의견을 내거나 들을 틈도 없다. 직협이 이들의 의견까지 수렴했다고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면서 “성명 등은 직협의 의견일 뿐, 경찰 전체의 의견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현재 경찰 상황은 지리멸렬(支離滅裂) 상태”라며 “소신과 강단을 갖고, 내부 혼란을 수습해 치안 공백을 최소화하는 게 차기 청장의 과제”라고 말했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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