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누구를 위한 축포였는가
축포는 환호 속에서 화려하게 터졌다. 지난해 8월 대형 플랫폼 사업자의 인앱결제 강제를 금지하는 이른바 ‘구글 갑질 방지법’이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 국회를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일부 국민들은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법이 한국에서 시행된 데 대해 속된 말로 ‘국뽕이 차오른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해외에서도 우리나라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빅테크 기업들이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세계 시장을 좌우하고 있던 터라 이들을 막을 ‘브레이크’의 필요성이 제기되던 때였다. 우리나라는 ‘골리앗을 향해 돌진하는 다윗’처럼 여겨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구글과 애플 사업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킬 선례가 됐다”고 평가했다. CNN은 “세계적으로 앱 생태계에 새로운 규정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는 흐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언급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다윗은 어디로 갔는가. 험한 표정의 ‘종이호랑이’가 플랫폼 생태계 입구에 입간판처럼 세워져 있을 뿐이다. 종이호랑이는 당장이라도 살점을 물어뜯을 표정이지만 실제론 움직임도 없고, 으르렁대는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종이호랑이와 함께 ‘경고! 구글 갑질 방지법을 어기면 가만두지 않겠다’라는 경고문도 붙었지만, 누구도 이를 보고 겁을 먹지 않는다. 구글 갑질 방지법은 입법 1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 어떤 실익도 거두지 못하고 표류 중이다.
구글 갑질 방지법 통과 이후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3월 법 시행령과 관련 고시를 확정했다. 하지만 구글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달부터 구글플레이에서 외부 결제용 아웃링크를 넣은 앱의 업데이트를 금지했다. 이를 따르지 않은 앱은 플레이스토어에서 삭제한다는 ‘인앱결제 강제’를 시행했다. 구글은 “제3자 결제방식은 허용한다”면서 법망을 우회했다.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특정한 결제방식을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에 따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업계에서는 ‘구글의 꼼수’라고 외치며 규제 당국인 방통위를 바라봤다. 방통위는 구글의 이런 조치 이후 한 달 넘도록 실태 점검 타령만 이어가고 있다. 구글의 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본 뒤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엄포’는 놨지만, 실태 점검 결과가 나오는 시점조차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구글은 제재안이 나오기까지 수개월 혹은 수년이 걸린다는 점을 이미 간파한 것 같다. 실태점검은 제재를 위한 발판을 다지는 단계에 불과하다. 사실 조사, 위법성 검토, 과징금 부과 여부 판단까지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설사 방통위가 불법 요소가 있다고 판단하더라도 구글이 이에 불복한 뒤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최종 결과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다. 시간은 방통위 편이 아니다.
그사이 또 다른 빅테크 기업인 애플이 한 단계 진화한 ‘꼼수’로 종이호랑이를 비웃었다. 애플은 한국의 구글 갑질 방지법에 따라 제3자 결제를 허용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뒤로는 “3자 결제 시스템은 안전하지 않다”는 내용의 경고창을 띄웠다. 이용자의 구매를 유도해야 하는 개발자 입장에서 이런 경고 문구는 제약이 될 수밖에 없다. 개발자들은 이용자들의 불편함을 유도하는 제3자 결제 시스템을 한국 시장에서만 굳이 도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혹자는 ‘애플이 한국에 백기 투항했다’고 말하지만, ‘애플이 한국을 비웃었다’는 표현이 오히려 더 적확해 보인다.
방통위는 애플의 방식이 개발자 입장에서 차별행위인지 점검해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법과 제도는 유리창과 같아서 언제든 깨질 수 있고 구멍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보수하는 것은 집행기관의 의지다. 축포에 맞춰 걸음을 나아가든, 춤을 추든 작은 움직임이라도 보여야 할 때다. 먼 훗날, 우리나라가 터뜨렸던 축포가 동굴 속에 갇힌 호랑이의 외로운 울부짖음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내려지지 않길 바란다.
전성필 산업부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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