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별로 구역 나눠 기도·후원.. 섬마을 목회 어려움 '선교'로 돌파
부산 도심을 뒤로 하고 바다 위에 세워진 남항대교 을숙도대교 신호대교 가덕대교를 차례로 지나 50여분을 달리면 도달하는 곳. 부산광역시에서 가장 큰 섬 가덕도다. 최근 방문한 이곳에서 117년 전 호주 선교사가 뿌리내린 복음의 숨결을 만날 수 있었다. 가덕교회(이성수 목사)는 이 섬의 터줏대감이자 주민들의 사랑방이다.
고령화된 주민들, 섬을 떠나 육지로 향하는 젊은 세대, 후임 청빙이 어려워 흔들리는 강단. 대부분의 섬마을 목회 현장이 당면하는 어려움을 가덕교회도 피할 순 없었다. 하지만 가덕교회는 이 어려움을 ‘선교’라는 키워드로 거뜬히 해결해 내고 있었다. 출발점은 14년 전 이성수(54) 목사가 20년 동안의 부목사 생활을 마치고 가덕교회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2008년 11월에 가덕교회로 올 때만 해도 가덕대교가 없었지요. 호주 선교사님 때처럼 저도 나루터에서 배 타고 들어왔습니다. 하하.”
섬교회를 담임하게 된 이 목사에게 형편상 많은 것을 해줄 수 없었던 성도들은 목회를 위해 가장 원하는 것 한 가지를 물었고 그는 ‘선교관’을 떠올렸다. 이 목사는 “부목사 시절 해외 선교사님들을 만날 때마다 열악한 환경 가운데 사역하시다가 고국을 찾았는데도 정작 갈 데가 없어 막막해하던 모습이 생각났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교회 옆에 있던 낡은 집 하나를 정돈해 선교사 한 가정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성도들이 십시일반 손을 보태 살림살이를 장만하자 아담한 선교관이 세워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선교관 하나는 가덕교회와 가덕도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밀알이 됐다. 이 목사는 “선교사 가정이 선교관에 들어와 가족처럼 생활하면서 가덕교회 성도들에겐 해외에서 온 아들 딸 손주 삼촌 이모 친구가 생긴 셈”이라고 설명했다.
무엇이 그들을 진짜 가족처럼 대하게 했을까. 이 목사는 그 핵심을 ‘쉼’이라고 했다. 선교관을 무료로 이용한다고 해서 대가를 받듯 교회 사역의 일부를 맡기거나 은연 중에 고정된 모임과 집회에 참석하길 강권하지 않았다. 그저 안식을 위해 고국을 찾은 이들을 오랜 만에 고향에 쉬러 온 가족을 대하듯 맞이했을 뿐이었다.
2010년을 시작으로 네 번째 가덕교회 선교관을 찾은 박미정(72) 선교사는 “세 아이와 함께 가덕도에 올 때마다 아이들끼리는 국경을 넘어 친구가 되고 우리 부부에겐 친정 엄마 아빠가 생긴다”고 전했다. 그는 “어부 집사님은 문고리에 생선을 걸어두시고 어느 날엔 현관 앞에 수박이 놓여있기도 한다”며 “온 맘으로 가족이라 여겨주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1채로 시작된 선교관은 이제 교회 주변 8채로 확대됐다. 지금까지 38개국에서 88명의 선교사 가정이 이곳에 머물다 선교지로 돌아갔다. 교단, 나이, 가족구성, 선교지역, 머무는 기간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서로를 가족의 울타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가덕교회 사람들’이란 제목이 새겨진 주보엔 매주 선교사들 소식이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교회 마당카페에서 성도들과 교제 나누는 모습, 1년 동안 머물다 선교지로 돌아간 선교사 가정의 가족사진 등이 채워진다. 주보 안쪽 안내면의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것도 선교지 소식이다. 운동회날 하늘을 수놓는 만국기처럼 38개국 국기와 각국의 선교사들 이름, 각 선교관에 머물고 있는 선교사와 앞으로 선교관을 찾을 선교사 가정의 정보가 면을 가득 채운다.
교회 앞마당, 선교관, ‘이야기 창고’란 이름의 교회카페 등에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선교사들과 일상적 교제가 이뤄진다. 전 세계의 문화권 이야기, 인생관, 학업과 취업, 인간관계, 연애와 결혼 등 대화 주제에 한계가 없다. 가덕도에서 나고 자란 홍보람(31)씨는 “초임 간호사 시절, 일도 대인관계도 모두 힘들어서 울면서 무작정 선교사님 찾아갔을 때 위로와 도전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덕도 청년들이 삶 전체를 보고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넓은 시야로 살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선교사님들”이라면서 “가덕도에서 만난 선교사님들의 선교지로만 세계일주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홍씨와 같이 유년 시절부터 선교사들을 이모 삼촌 선배 삼아 지냈던 청년들 중엔 수도권에서의 취업 대신 가덕도에 남아 인근 지역으로 출퇴근하며 생활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일반적으로 농어촌 도서지역 교회의 세대 분포는 역피라미드형이지만 가덕교회는 원통형인 이유다. 이 목사는 “부임 당시엔 60~80대 성도 40여명이었던 교회가 지금은 유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 장년부, 노년부가 각각 40여명인 200명 규모의 공동체로 변모했다”고 전했다.
2년 전 부산에서 가덕도로 생활터전을 옮긴 서미영·유재홍(43) 집사 부부도 ‘선교사 마을’ 같은 가덕교회의 매력에 푹 빠졌다. 서 집사는 “팔순을 넘긴 권사님 집사님들이 페루 모잠비크 라오스 등 내게도 생소한 해외 선교지와 선교사님들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덕교회 성도들이 선교사역 자체를 가슴 깊이 품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가덕교회는 구역모임 구분도 선교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 구역 성도들이 정해진 선교지의 선교사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해당 지역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도 한다. 이 목사는 “가덕교회는 개교회로만 보면 작은 섬마을 공동체일뿐이지만 선교사님들과의 네트워크로 보면 전 세계가 연결된 거대한 공동체인 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가덕교회가 추구하는 영적 네트워크가 지구촌을 섬기며 더 많은 공동체를 연결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하는 게 선교적 교회로서의 지향점”이라고 덧붙였다.
부산=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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