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어게인 2008년? 덩치 커졌지만 맷집은 약해졌다

조현숙 2022. 7. 4.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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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글로벌 경기 하방 위험의 국내 전이 가능성까지 우려해야 하는 복합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3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과장이 아니다. 경제가 흘러가는 모습이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7~2008년과 여러모로 비슷한 상황이라서다. ①위기를 극복하겠다고 펼친 금리 인하, 돈 풀기 후유증이 ②석유ㆍ가스 등 원자재 수급난과 맞물려 고물가를 촉발해 ③금융ㆍ실물 경제 동반 침체 위험을 키우는 양상이 그렇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발단이 된 위기가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란 점이 다를 뿐이다. 2000년대 중국ㆍ인도ㆍ브라질 등 신흥시장이 부상하며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렸다면 올해는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이 에너지ㆍ곡물 대란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

14~15년 전과 견줘 국내총생산(GDP)이나 무역액, 주식ㆍ외환시장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경제 규모는 커졌다. 문제는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외부 충격에 더 민감한 ‘허약 체질’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주요 거시경제 지표를 보면 우선 기재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실질 GDP 기준)을 2.6%로 전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 3.0%보다 낮은 수치다. 지난달 추 부총리는 “6월 또는 7∼8월에 6%대의 물가 상승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2008년 7월 기록한 5.9%를 웃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가 있었던 1998년 이후 처음으로 6%대 물가 상승률을 맞닥뜨릴 상황이다.

2008년 13.6%였던 수출액 증가율은 올해 한 자릿수(산업연구원 전망 9.2%)로 내려앉을 위기다.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무역수지는 적자다. 이미 역대 최대 규모로 불었다. 올 상반기(1~6월)에만 103억 달러(약 13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대(對)중국 무역에서 1994년 8월 이후 28년 만에 처음 적자를 볼 정도다.

무엇보다 위기가 왔을 때 버텨낼 ‘맷집’이 예전만 못하다. 가계와 정부의 재무 건전성 지표가 2008년에 비해 크게 악화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8년 말 723조5000억원이었던 가계부채(신용)는 올 1분기 1859조4000억원으로 2.6배 불었다. 이 기간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125.4%에서 168.9%로 나빠졌다.

국가채무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08년 297조9000억원에서 올해 1068조8000억원(기재부 전망)으로 3배 이상 덩치를 불렸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5.8%에서 49.7%로 상승했다. 가계나 정부 할 것 없이 14~15년 전보다 많은 빚을 지고 있어 금리 상승 충격에 훨씬 취약하다는 의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어려웠지만 한국은 수출ㆍ가계부채ㆍ재정 등 지표가 상대적으로 나았던 덕에 다른 신흥국에 비해 타격을 덜 받았고 경기 회복도 빨랐다”며 “그때와 비교해 경제 지표는 크게 나빠졌다”고 진단했다. 우 교수는 이어 “인플레이션(고물가)이 진행될수록 ‘가격을 통한 자원 배분’이란 민간 시장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며 “이번 충격이 외부적 요인이 큰 게 사실이지만, 정부가 물가ㆍ금리 상승에 따른 실효성 있는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외 여건은 악화일로다. 경기에 대한 전문가 진단은 상반기보다 하반기가 더 나쁘다는 쪽으로 모인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전쟁ㆍ유가ㆍ원자재의 공급 이슈가 계속되고 대외 수요가 둔화한다는 다수의 전망이 유효한 이상 무역적자는 당분간 계속된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원ㆍ달러 환율도 1300원대 공방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임혜윤 한화투자증권 연구원도 “(경제) 심리의 확연한 개선이 나타나기 어렵다면 실물 경기 둔화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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