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씀씀이 대수술
국민 한 명당 지고 있는 나랏빚이 2000만원을 넘어섰다. 3일 국회 예산정책처의 ‘국가채무시계’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현재 국민 1인당 국가채무는 2015만6589원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시간 총국가채무액 예측치 1039조9320억원을 올해 4월 말 주민등록인구(5159만3000명)로 나눈 수치다.
1인당 나랏빚은 문재인 정부에서 늘어나는 속도가 유독 빨랐다. 2016년 말 1212만원이었던 1인당 국가채무는 올해 4월 말 1978만원으로 늘었다. 이전 16년간의 증가 속도와 비교하면 증가 속도가 대략 갑절로 빨라졌다. 2000년 237만원이었던 1인당 국가채무는 2016년에야 1200만원을 넘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가채무가 415조5000억원(62.9%)이나 증가한 여파다. 올해 문 정부가 마지막으로 편성한 예산인 1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기준으로는 1075조7000억원(연말 기준 국가채무 예상치)까지 증가해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 국가채무비율 역시 크게 상승해 한동안 ‘마지노선’으로 인식됐던 40% 선을 뚫고 50.1%까지 오르기도 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난 2월 발표한 ‘중장기 재정건전성 유지 방안’ 보고서에서 “국가채무가 해마다 평균 10%씩 늘어나면서 2017년 36.0%에서 시작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이 2022년 50%로 크게 올랐는데, 이런 증가 폭(14%포인트)은 2004년 이후 13년간 3개 정부에서 누적해 늘어난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며 재정지출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이젠 코로나19 위기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는 만큼 재정건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윤 정부의 입장이다. 실제 윤 정부에서 편성한 첫 번째 추경(올해 2차 추경)에선 초과세수 일부를 국채 상환에 쓰면서 국가채무 수준을 1068조8000억원, 국가채무비율은 49.7%로 각각 낮췄다. 한국에 앞서 주요 선진국은 코로나19 비상 상황에서 가동한 긴급 지원조치를 회수하며 재정정상화에 착수했다.
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 중 윤 대통령 주재로 첫 재정전략회의를 열고 지난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을 폐기하고, 재정을 정상화·건전화하는 방향으로 공식 전환한다고 발표할 전망이다.
정부, 국가채무비율 등 법제화 추진…각 부처에 내년 예산 고강도 긴축 요구
우선 재임 기간인 2027년까지 재정수지와 국가채무 등 주요 재정 지표 관리 목표를 수치로 명시하기로 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지출 구조조정에 착수한다. 정부는 현재 진행 중인 내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도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을 각 부처에 요구 중이다.
재정준칙도 법제화할 계획이다. 앞서 문 정부는 국가채무비율을 GDP 대비 60% 이내, 통합재정수지는 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제시한 바 있으나 법제화에는 실패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활용되는 준칙을 기준으로 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하반기 중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기존 5년 단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넘어선 ‘재정비전 2050’도 수립할 예정이다. 미래세대를 위한 30년 장기 재정관리 계획이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 이와 연동된 잠재성장률 둔화 상황에서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과 사회보험의 운용 방향을 찾아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다. 학령인구 감소 등 상황을 고려해 현재 유·초등·중등에 한정된 교육교부금 사용처를 고등교육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확장 정책이 현재 세대에는 만족을 줄지 몰라도 미래세대에는 큰 부담을 전가한다는 점에서 방향은 맞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강 교수는 이어 “다만 세수가 늘어날 요인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건전성을 강화하려면 지출을 엄격하게 줄여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선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 저소득층 지원 등 돈 쓸 곳은 늘어나고 있기에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과제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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