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계 106개국 도입했는데, 우리만 없는 재정준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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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나랏빚 400조 급증, 재정 건전성 훼손
실효성 있는 재정준칙 법제화로 악화 막아야
정부가 과도한 돈 풀기를 중단하고 나라 살림을 정상화하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튼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르면 이번 주 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건전재정으로 정책 전환을 선언할 전망이다. 지난 5년간 재정지출과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면서 재정 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전임 정부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재정확장 기조를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국민 1인당 갚아야 할 나랏빚은 이미 2000만원을 넘어섰다.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국가채무 총액은 1069조원에 이른다. 지난 5년간 400조원 넘게 불어났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불가피하게 재정지출을 늘렸던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핑계로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는 선심성 지출도 적지 않았다. ‘세금 주도 일자리’라는 비판을 받았던 공공 일자리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적 돈 풀기는 물가 상승세를 자극해 서민 생활의 고통을 가중한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긴축에 나선 한국은행과의 정책 엇박자도 문제였다.
그러는 사이 국가채무 비율은 급속히 높아졌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1차 추경을 기준으로 50%를 넘어섰다. 재정당국이 한때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기준(40%)을 훨씬 초과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6년에는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67%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에선 외국과 비교하면 아직 양호한 수준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다. 앞으로 노인 복지비용 등으로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다. 국가 재정이 튼튼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가 이런 부담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재정준칙의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2020년 재정준칙 도입을 골자로 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국가채무 비율 등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법제화한다는 의미는 있지만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시행 시기도 당장이 아니라 2025년으로 미뤘다. 그나마 국회의 법안 심의에는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IMF에 따르면 세계 106개국이 재정준칙을 도입해 시행 중이다. 한국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재정준칙을 포함한 재정혁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번 기회에 실효성과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을 만들고 시행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재정 건전성 확보는 여야를 떠나 국가의 미래가 달린 과제다. 세금을 더 거둘 게 아니라면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정치권에선 지역사업 예산 등으로 건전재정 기조를 훼손하는 요구를 멈춰야 한다. 한정된 재원을 꼭 필요한 곳에만 아껴 쓰겠다는 각오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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