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연극의 표상' 연출가 피터 브룩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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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연출가' 피터 브룩이 타계했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2일(현지시간) 연극·오페라 연출가 겸 영화감독인 브룩이 오랫동안 거주해온 프랑스에서 별세했다고 일제히 전했다.
브룩은 1950~60년대 RSC를 중심으로 '리어왕' '한여름 밤의 꿈' 등 고전 작품부터 '마라/ 사드' 등 현대 희곡까지 혁신적인 연출로 세계 연극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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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연출가’ 피터 브룩이 타계했다. 향년 97세.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2일(현지시간) 연극·오페라 연출가 겸 영화감독인 브룩이 오랫동안 거주해온 프랑스에서 별세했다고 일제히 전했다. 영국 출신 브룩은 현대 공연계의 혁명 같은 존재로 약 70년간 100편에 가까운 작품을 연출했다. 관습적 재현을 거부한 브룩의 연출 철학은 후배 창작자들에게 더욱 대담하고 실험적으로 작업하도록 영감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트비아 출신의 유대계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1925년 태어난 브룩은 옥스퍼드 대학 재학 시절인 1943년 ‘닥터 파우스투스’ 연출로 데뷔했다. 그리고 20대 초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 조연출을 거쳐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상임 연출가로서 오페라를 연출하기도 했다.
브룩은 1950~60년대 RSC를 중심으로 ‘리어왕’ ‘한여름 밤의 꿈’ 등 고전 작품부터 ‘마라/ 사드’ 등 현대 희곡까지 혁신적인 연출로 세계 연극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전형적인 연출을 선보이던 연극계에서 그는 현대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희고 빈 무대에서 연기하도록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연극의 본질을 찾도록 했다. 베트남전쟁 중인 1966년에는 전쟁을 비판하는 연극 ‘US’에서 즉흥적인 토론극이라는 참신한 형식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가 1968년 자신의 연출철학에 대해 쓴 ‘빈 공간’은 전 세계 연출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1970년 성공의 정점에서 프랑스 파리로 거점을 옮긴 그는 철거위기에 놓인 뮤직홀을 파리에서 가장 혁신적인 공연장인 뷔페 뒤 노르 극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서구문화에 대한 회의와 문제점을 극복하려 했던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극’의 영향을 받은 그는 1971년 국제연극연구소(CIRT)를 설립한 뒤 다국적 배우들과 함께 그간 탐구했던 연극의 사회적 의미를 넘어 인류학적인 영향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탐구했다.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문화와 서사에 관심을 가진 그는 인도 산스크리트어로 된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16개국 25명이 출연하는 공연으로 만들어 1985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9시간에 걸쳐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50년간 파리에 있는 자신의 극장에서 활동하면서 전 세계에서 투어 공연을 가졌는데, 한국에는 LG아트센터의 초청으로 두 차례 공연을 선보였다. 바로 2010년 아프리카 수피즘 지도자인 티에노 보카의 생애를 모티브로 쓰고 연출한 ‘11 그리고 12’와 2012년 모차르트 동명 오페라를 자신만의 버전으로 만든 ‘마술피리’다.
브룩은 여배우 나타샤 패리(1930~2015)와 결혼해 프로듀서 겸 연출가 이리나 브룩, 다큐멘터리 감독 시몬 브룩의 1남1녀를 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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